[세종로의 아침] K방산의 10년 전 결단이 주는 교훈

[세종로의 아침] K방산의 10년 전 결단이 주는 교훈

하종훈 기자
하종훈 기자
입력 2025-12-02 01:19
수정 2025-12-02 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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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한화 ‘방산 빅딜’ 이후
한화에어로, 글로벌 강자로
석화 산업 구조조정도 시급
정치권도 기업 살리기 나서야

10년 전 국방부를 출입했을 때의 일이다. 2015년 당시 삼성그룹은 비주력 사업이던 방위산업 계열사 삼성테크윈과 삼성탈레스를 한화그룹에 매각했다. 한화테크윈, 한화탈레스가 된 두 회사는 사명 변경과 그룹 내 조정·분할 과정을 거쳐 각각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그 자회사인 한화시스템으로 탈바꿈했다. 당시 ‘삼성맨’이었다가 한화그룹에 편입된 직원들은 뒤숭숭했다. 일부는 하루아침에 격이 낮아졌다는 자괴감을 느꼈다고 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글로벌 방산 시장의 떠오르는 강자가 됐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지상 방산 수주 잔고(계약 후 납품 대기 중인 물량)는 3분기 기준 약 31조원으로 경쟁사들에 앞선다. 한화시스템의 방산 수주 잔고는 8조원 이상이다. 안정적 성장 기반을 갖춘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인기 상품인 K9 자주포 및 ‘천무’ 다연장 로켓 등을 중심으로 한 육상 무기와 항공 엔진 등을 생산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자회사인 한화오션은 미국 필리조선소 인수를 시작으로, 미 해군 함정의 유지·보수·정비(MRO) 사업에도 뛰어들어 한미 조선 협력 프로젝트인 ‘마스가’(MASGA)의 주도 기업이 됐다. 한화시스템 역시 위성 및 감시·정찰 등 방산과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렇다면 삼성은 당시 결정을 아쉬워하고 있을까. 삼성 인사들에게 물어본 결과는 “아니다”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휴대전화와 반도체를 팔아야 하는데, 무기를 생산하는 사업체를 보유하는 것은 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빅딜’은, 열정이나 자신이 없는 사업까지 끌고 가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판단한 이재용 회장의 결단으로 성사됐다고 한다. 이후 삼성은 전자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꾸준히 재편했고, 반도체 슈퍼사이클과 인공지능(AI) 생태계 확장 등에 힘입어 내년도 영업이익이 100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실제 ‘신냉전’으로 인해 미국 등 서방과 중국·러시아 간 대립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삼성전자는 미국과 중국 가운데 어느 한쪽 편만 들 수 없는 입장이다. 반면 한화는 사업 구조상 중국과 경쟁 구도에 있기 때문에 중국과의 거래가 중단돼도 큰 문제는 없다.

K방산의 황금기를 여는 데 삼성과 한화의 산업 구조조정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불필요한 중복을 줄이고 열정과 집중이 있는 주체에 산업을 맡겼기에 가능한 성장이다. 자동차 산업 역시 구조 개편을 통해 체질을 바꿨다. 현대자동차는 기아 인수를 통해 내수 시장을 재편했고, 이후 전기차와 수소차 중심의 미래지향적 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결국 우리 기업에 필요한 것은 시장 내 역할 조정을 전제로 한 산업 통합과 핵심 설비 중심의 고도화다. 석유화학 산업도 이와 같은 결단이 필요하다. 최근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이 대산 산업단지의 나프타분해시설(NCC) 통합을 골자로 한 첫 사업재편 계획을 제출했지만, 여수와 울산 산단에서는 업체 간 이해관계로 논의가 정체돼 있다. 하지만 중국에 이어 중동 산유국까지 설비 증설에 가세해 수익성이 떨어진 상황에서 그간 기업들이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구조조정은 기업 단독으로 이끌 수 없으며, 기업이 결단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정치권에서 제기된 법인세 인상 논의는 이와 정반대의 흐름으로 보인다. 기업에는 탄소중립을 요구하고 생산 설비 전환을 독려하며 낡은 산업 구조를 스스로 재편하라고 하면서도 동시에 세금을 올리겠다고 한다면, 누가 앞장서서 위험을 감수하고 변화를 선택할 수 있을까. 산업 구조조정은 단지 정부의 재정 지원뿐 아니라 예측할 수 있는 조세 제도, 규제의 일관성, 정책에 대한 신뢰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기업에 필요한 것은 단기적 지원이 아니라 명확한 방향성과 실행할 수 있는 환경이다.

하종훈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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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훈 산업부 차장
하종훈 산업부 차장
2025-12-02 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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