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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Inside] (32) “감히 내 돈을?” 사기도박 피해자, ‘주먹’들 모아서…

[사건Inside] (32) “감히 내 돈을?” 사기도박 피해자, ‘주먹’들 모아서…

입력 2012-05-19 00:00
업데이트 2012-05-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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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몰라본 ‘타짜’팀, 사기도박 벌이다 결국

 자욱한 담배 연기 속으로 ‘선수’가 카드를 섞는다. 아무리 쳐다봐도 의심할 구석 없이 자연스럽다. 한참 카드를 섞던 ‘선수’는 모두 5명에게 각각 4장의 카드를 돌렸다. 정해진 규칙에 따라 오른쪽에서 부터 한장씩 분배한다. 20장의 카드가 돌아간 뒤 각자 돈을 배팅한다. 세 번의 카드 교환이 끝난 뒤 ‘선수’가 패를 뒤집었다. 놀랍게도 모두 다른 무늬로 A, 2, 3, 4가 나왔다. 이른바 ‘바둑이’라는 카드 게임에서 최고 패인 ‘골프’가 나온 것이다.

 단 한 판에 수백만원을 날린 권모(56)씨는 도무지 이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이런 식으로 뜯긴 돈이 벌써 2억원. 조작이 있을 것이라는 의심은 커져갔다. 하지만 도무지 입증할 방법이 없는 노릇. 일단 한번 더 참기로 했다. “아이고. 오늘도 안풀리네. 난 여기까지 할란다.”

 태연한 척 자리를 뜨는 권씨의 머릿속에는 한가지 생각만이 가득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사기도박이란 것을 밝혀내야지. 걸리기만 해봐라.’

 

 ●고향 후배라던 그 남자의 정체는 ‘선수’


 권씨가 홍모(54)씨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2월. 홍씨는 고향이 같다며 권씨를 형님으로 불렀다. 또 고향 친구라며 다른 사람들을 소개시켜주기도 했다. 모처럼 알게 된 고향 후배들과 술 한잔하며 친하게 지내는 것까지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홍씨는 권씨를 도박판으로 끌어들였다. 심심풀이 삼아 시간이나 때우자는 제안에 권씨가 넘어간 것이다.

 경기도 고양의 한 오피스텔에 모인 홍씨 일당 4명과 권씨가 한 게임은 바둑이였다. 분명하진 않지만 한국에서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온라인 게임 등을 통해 세계적으로 퍼진 변종 카드 게임이다. 일반적인 포커 게임이 카드를 한사람 당 5장 사용하는 것과는 달리 바둑이는 4장만을 사용한다. 숫자가 낮을 수록 무늬가 다를수록 높은 점수를 주는 것도 다른 점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카드 게임은 승패가 일정한 확률로 반복된다. 정해진 숫자를 이용한 확률 싸움이기 때문에 완벽한 승리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속임수가 없을 때에 한정된 이야기. ‘선수’라고 불리는 전문 도박꾼들의 손이 닿으면 일반인은 절대 이길 도리가 없다.

 대부분 노름판이 그렇듯 처음에는 따고 잃기를 반복했다. 긴장감과 재미가 높아져 갈 때쯤 홍씨 등은 판돈을 키우기 시작했다. 열기가 고조되면서 권씨도 호기를 부리기 시작했다.

 홍씨 일당은 권씨의 눈을 피해 카드를 바꿔치기 하며 승리를 따내기 시작했다. 권씨가 한눈을 파는 사이 카드 뭉치를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미리 조작한 ‘탄 카드’로 바꿨다. 이미 맞춰놓은 순서에 따라 패를 교환했기 때문에 권씨를 제외한 나머지 일당들은 서로의 패를 다 알고 있었다.

 권씨가 지난해 2월부터 올해 1월까지 26차례의 도박을 통해 잃은 돈은 2억여원. 운이 없었다고 생각했던 권씨는 자신이 사기 도박에 말려들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하지만 권씨는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개인적인 복수를 선택했다.

 

 ●사기 도박 피해자의 기막힌 복수

 또 다시 벌어진 노름판. 권씨는 오피스텔에 미리 폐쇄회로(CC)TV를 설치했다. 자신이 화장실을 가거나 물을 마시는 등 잠깐 시선을 돌린 직후 집중적으로 돈을 잃는 패턴이 반복되는 것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내내 카드만 쳤더니 소변이 마렵네.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

 권씨는 일부러 자리를 비우며 사기 도박을 유도했다. 낚시줄에 걸린 것으로 착각한 홍씨 일당은 또 카드를 바꿔치기 했고, 권씨는 돈을 잃었다.

 “오늘도 한 판 벌여볼까? 오피스텔에서 보자.” 증거를 확보한 권씨는 며칠 뒤 홍씨 일당을 불러냈다. 하지만 이번엔 도박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권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들을 ‘해결사’로 고용해 홍씨 일당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들이 감히 누구한테 사기를 쳐? 죽으려고 작정 했지?”

 건장한 남자 5명에게 둘러싸인 홍씨 일당은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 사기를 치지 않았다고 부인도 했지만 권씨가 내민 CCTV 화면을 본 뒤 그저 “잘못했습니다.”를 연발할 수 밖에 없었다.

 한참을 두들겨 맞고 축 늘어진 사기 도박단에게 권씨는 보상금을 요구했다. 당장 마련할 수 있는 1300만원과 홍씨가 타고 다니던 시가 3500만원 상당의 외제 승용차를 빼앗았다. 그래도 아직 잃은 돈을 만회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권씨는 이들에게 1억 5000만원짜리 현금 보관증을 강제로 작성하게 했다. 사기도박으로 돈을 벌면 그때 그때 뜯어가겠다는 계산이었다.

 권씨가 이미 신원을 확보한 상태라 홍씨 일당은 잠적도 불가능한 상황. 이대로 권씨의 손에 사기 도박단의 목줄이 잡힌 찰나 상황이 급변했다. 홍씨 일당의 사기 도박에 대한 첩보를 입수한 경찰이 은밀하게 수사를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홍씨 일당이 권씨에게 협박당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고 지난 2월 이들을 모두 검거했다. 사기 도박단과 해결사들은 결국 함께 철창 신세를 지게 됐다. 현재 홍씨 일당 4명은 사기 혐의로, 권씨 등 5명은 특수강도 혐의로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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