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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범’은 21년 후 ‘적’이 됐다…서로 “권총 안 쐈다”, 그러나

‘공범’은 21년 후 ‘적’이 됐다…서로 “권총 안 쐈다”, 그러나

이천열 기자
이천열 기자
입력 2022-11-19 14:00
업데이트 2022-11-1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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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만에 붙잡힌 두 대전 국민은행 권총살인강도범이 ‘동업자’에서 오랜 세월이 지나 ‘적’이 됐다.

19일 대전지법 제12형사부(재판장 나상훈)에 따르면 지난 4일 첫 공판에서 이승만(52)은 자신이 권총을 쏘지 않았다고 핵심 범행을 부인했다. 이승만은 검거 직후 경찰에서 “내가 권총을 쐈다”고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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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이 지난 9월 검찰 송치를 위해 대전동부경찰서를 나오고 있다. 그는 “언젠가 죗값을 치를 줄 알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이승만이 지난 9월 검찰 송치를 위해 대전동부경찰서를 나오고 있다. 그는 “언젠가 죗값을 치를 줄 알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4일 공판에서 이승만 측 변호인은 “권총 격발로 은행 직원이 사망한 것은 인정하지만 이승만이 권총을 들었거나 제압했다는 것은 인정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공범 이정학(51) 측 변호인은 “검찰의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한다”고 했다. 즉, 권총 발사는 ‘이승만’, 현금가방 탈취는 ‘이정학’이란 반박이다.

검찰은 “이승만은 권총으로 직원들을 제압하고, 그 사이 이정학이 현금가방을 자기네 승용차로 옮겨싣는 역할을 하기로 모의했다”며 “실제로 사건 당일 직원들이 현금수송차에서 돈가방을 내리자 이승만이 권총을 들고 ‘꼼짝 마 손들어’라고 공포탄을 쐈고, 은행 출납과장이 호신용 전기충격기로 대응하려는 자세를 취하자 실탄 3발을 쐈다. 그 사이에 이정학이 현금 3억원이 든 가방을 탈취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권총의 행방이다. 이정학은 경찰에서 “(범행 후 만난) 이승만이 ‘바다에 버렸다’고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고 진술했고, 이승만은 “대전의 한 야산에 묻었다가 개발소식에 2018년쯤 꺼내서 잘게 부순 뒤 조금씩 버렸다”고 진술했다고 경찰이 발표했다. 못 찾은 권총은 결국 이승만의 반격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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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학이 지난 9월 검찰 송치를 위해 대전 둔산경찰서를 나오고 있다. 그는 “피해자와 유족에게 죄송하다”고 했다. 연합뉴스
이정학이 지난 9월 검찰 송치를 위해 대전 둔산경찰서를 나오고 있다. 그는 “피해자와 유족에게 죄송하다”고 했다. 연합뉴스
둘은 21년 전인 2001년 12월 21일 오전 10시쯤 대전 서구 둔산동 국민은행 충청지역본부 지하주차장 1층에서 복면을 쓰고 숨어있다 청원경찰 등 2명과 함께 현금수송차량을 몰고온 이 은행 용전동지점 출납과장 김모(당시 45세)씨에게 권총으로 공포탄 1발과 실탄 3발을 쏘고 현금 3억원이 든 가방을 빼앗아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는 왼쪽 가슴과 허벅지 등에 총을 맞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이들이 사용한 38구경 권총은 국민은행 범행 두 달 전인 같은해 10월 15일 자정 대전 송촌동 골목길에서 도보순찰 중인 경찰관(당시 33세)을 절도 승용차로 들이받아 의식을 잃고 쓰러지자 빼앗은 것이다.

이승만은 경찰조사에서 “내가 차로 경찰관 들이받았고, 이정학이 경찰관의 권총을 탈취했다”고 했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런 상황에서는 권총을 누가 쏘았는지가 아니라 범행을 누가 주도했는지와 둘 간의 주종관계가 더 중요하다. 이승만이 권총 발사를 부인한다면 범행 당시 그는 무엇을 했는지를 증명해야 한다”며 “강도살인죄는 최고형이나 무기징역형인데 이승만이 범행을 주도했다면 이정학보다 형량이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세월이 오래 지났다고 해서 죄가 가벼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무거워진다”면서 “그 만큼 유가족의 고통과 피해가 크고, 피고인의 도주 기간이 길기 때문”이라고 했다.

둘은 고교 동창생으로 학교를 다닐 때도 나이가 한 살 많은 이승만이 ‘형님 노릇’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은행 범행도 결혼한 이승만이 형편이 어렵자 일정한 직업이 없고 미혼이던 이정학을 끌어들여 감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이정학은 가정이 있으나, 이승만은 범행 이후 이혼하고 혼자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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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전 대전 국민은행 권총 살인강도사건의 범인 이승만과 이정학을 재판 중인 대전지방법원. 이천열 기자
21년 전 대전 국민은행 권총 살인강도사건의 범인 이승만과 이정학을 재판 중인 대전지방법원. 이천열 기자
둘은 은행 범행 차량인 그랜저XG에서 발견된 마스크와 손수건의 유전자(DNA)가 충북 불법 게임장에 남긴 이정학의 담배꽁초 DNA와 일치하면서 꼬리가 잡혀 사건 발생 7553일 만인 지난 8월 검거됐다.

재판부는 수사과정에서 둘의 진술이 크게 엇갈리지 않아 국선변호사 1명을 지명했다 이승만이 번복하기 시작하자 변호사를 추가 지정하기 위해 공판을 미루기도 했다. 다음 공판이 오는 28일 열리는 가운데 이승만이 촉발한 ‘권총 격발자 떠넘기기’는 감형여부와 상관없이 갈수록 불꽃을 튀길 것으로 보인다.
대전 이천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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