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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노예·타이어노예·토마토노예…장애인 착취 사건 속출

축사노예·타이어노예·토마토노예…장애인 착취 사건 속출

입력 2016-12-20 09:31
업데이트 2016-12-20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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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임금 강제노역에 폭행·학대까지…지적장애인 인권유린 심각

올해 ‘○○노예’라는 말이 유행처럼 돌았다. 우리 사회의 낯부끄러운 자화상인 지적장애인 인권유린 사건을 빗댄 표현이다.

이른바 ‘장애인 노예사건’은 전국 곳곳에서 끊이지 않고 벌어졌다.

온 국민의 공분을 산 이들 범죄는 그동안 우리 사회가 장애인 인권문제에 얼마나 무관심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뒤늦게 장애인 실태 관련 전수 조사가 이뤄지는 등 정부 차원의 대책이 나오고 있지만, 근본적인 재발 방지 시스템 마련과 함께 가해자 처벌 강화 등이 뒤따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장애인 인권유린 사건은 유독 충북에서 많이 발생했다.

지난 7월 1일 밤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의 한 축사 주변에서 지적장애인(2급) 고모(47)씨가 경찰에 의해 발견됐다.

불안에 떠는 고씨를 이상히 여긴 경찰이 조사에 착수하면서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킨 ‘축사노예’ 사건의 전말이 밝혀졌다.

1997년 여름 천안의 한 양돈농장에서 일하던 고씨는 영문도 모른 채 소 중개인의 손에 이끌려 오창읍에 있는 김모(68)씨와 오모(62)씨 부부의 농장으로 오게 됐다.

고씨는 2평 남짓한 축사 창고 옆 허름한 쪽방에서 생활하며 소똥을 치우고, 여물을 챙겨주는 등 19년간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이런 중노동에도 품삯은 고사하고 일을 못 하면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다. 심지어 매질도 당했다.

경찰 수사로 비로소 자유를 얻은 고씨는 19년간 생이별했던 가족의 품에 안겼다.

고씨 가족에게 씻지 못할 아픔을 준 농장주 김씨 부부는 법원의 단죄를 기다리고 있다.

김씨 부부는 현재 형법상 노동력 착취 유인, 상습 준사기, 상해, 근로기준법 위반, 장애인복지법 위반 등 총 5가지 혐의로 기소돼 재판이 진행 중이다.

‘축사노예’ 사건이 알려진 지 불과 두 달여 뒤 인근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에서는 지적장애 3급의 A(42)씨가 20년간 강제노역을 당한 일명 ‘타이어 노예’ 사건이 터졌다.

청주 청원경찰서는 지난달 28일 A씨에게 무임금 강제노역을 시키고 폭행한 혐의(특수상해 등)로 타이어 수리점 업주 변모(64)씨를 불구속 입건하고,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변씨는 1996년부터 지난 10월까지 A씨에게 무임금 강제노역을 시키고, 말을 듣지 않으면 곡괭이 자루·파이프·각목 등 둔기로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변씨의 부인(64)은 A씨의 기초생활수급비 지급 통장에서 매달 10만원씩 빼갔는데, 2007년 5월부터 지난 9월까지 그 금액이 2천300만원에 달했다. 경찰은 변씨의 부인 역시 횡령 혐의로 함께 입건해 검찰에 넘겼다.

지난 10월 18일에는 충북 충주에서 장애인 노동력 착취 행위가 적발됐다.

이번에는 마을 이장이 가해자였다.

충주의 한 시골 마을 이장 B(58)씨는 2004년부터 최근까지 13년에 걸쳐 지적장애가 있는 동네 후배 C(57)씨에게 1년에 100만∼240만원의 임금만 주고 방울토마토 재배 하우스에서 일을 시켰다.

그는 이웃에 홀로 사는 후배에게 밥을 제공하고 보살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은 B씨가 노동력 착취 외에 C씨의 장애수당도 챙긴 것을 확인, 준사기 혐의로 그를 불구속 입건했다.

같은 달 28일 전남 장성경찰서도 인지 능력이 부족한 60대 남성 D(66)씨에게 10년간 축사와 농장일을 시키며 착취한 혐의(준사기·횡령, 노인복지법 위반)로 오모(67)씨를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도의원 출신인 오씨는 2006년부터 지난 5월까지 전북 순창에서 데려온 D씨에게 곡성과 장성에 있는 자신의 농장 2곳에서 일을 시키고 임금을 지급하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도의원에 앞서 지역 조합장까지 지낸 오씨는 경찰에서 “오갈 곳 없는 장애인에게 쌀과 찬거리, 소주를 사다 주고 숙식을 제공했고, 명절 때는 50만원씩 주기도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오씨가 10년 동안 D씨에게 지급하지 않은 돈은 최저임금 기준으로도 1억원이 훌쩍 넘는다.

이 외에도 전북 김제에서 13년간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고 지적장애인 전모(70)씨를 부려 먹은 혐의(장애인복지법 위반)로 식당 주인 조모(64)씨가 불구속 입건됐다.

2009년 ‘청주 차고 노예’, 2014년 ‘신안 염전 노예’ 등 과거에도 전국을 들썩이게 한 장애인 인권유린 사건이 있었다.

문제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관계 부처가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좀처럼 근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올해 역시 마찬가지다.

청주 ‘축사노예’ 사건이 불거진 뒤 보건복지부는 ‘읍면동 복지 허브화’ 정책의 핵심인 ‘맞춤형 복지팀’이 복지 사각지대를 발굴할 때 장애인, 아동, 노인 등 인권 취약계층의 인권침해 사례도 발견해 신고할 수 있도록 업무 매뉴얼을 보완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이런 내용이 맞춤형 복지팀의 업무에 더해지면 지역사회의 장애인 인권침해를 조기에 발견할 수 있다는 게 복지부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장애인 거주 실태 자료도 없는 현 상황에서 이런 대책이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장애인 인권유린 가해자가 지나치게 관대한 처벌을 받는 것을 두고도 말이 많다.

앞선 ‘차고 노예’ 사건이나 ‘염전 노예’ 사건 가해자들은 대부분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법원은 판단능력이 떨어지는 피해자와 합의했다는 이유를 들어 이들을 선처했다.

그때마다 국민 정서와는 동떨어진 판결이라고 비난이 쏟아졌지만, 여태껏 달라진 건 전혀 없다.

장애인단체들이 사회적 관심과 의식 개선에 앞서 제도적 변화를 요구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장애인학대지원센터 김강원 팀장은 “장애인 인권유린을 근본적으로 막으려면 사회적 약자의 소재를 지속해서 파악·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 도입과 함께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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