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술·증거 겹겹이 옭아매…일부 시인할 듯
2008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전당대회 당시 돈 봉투 살포를 지시한 장본인으로 지목된 김효재(60)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15일 소환됨에 따라 검찰 수사가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검찰은 김 전 수석을 돈 봉투 살포 과정의 ‘총괄 기획자’로 보고 있어 그를 조사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관련자 진술과 각종 정황 증거는 김 전 수석을 겹겹으로 옭아매고 있어 그가 혐의를 벗고 빠져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안병용(54.구속기소) 새누리당 서울 은평갑 당원협의회 위원장에게서 ‘당협 간부들에게 2천만원을 살포하라’는 지시를 받은 일부 구의원이 김 전 수석을 ‘윗선 지시자’로 지목한 상태다.
안 위원장과 함께 여의도 대하빌딩 박희태 후보 캠프 사무실에 올라갔을 때 캠프 상황실장이던 김 전 수석이 그곳에 있었고 바로 그의 책상 위에서 돈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고승덕 의원실에 전달된 돈 봉투를 돌려받은 박희태 의장 전 비서 고명진(40)씨의 ‘고백’도 김 전 수석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고씨는 고 의원실에서 돈 봉투를 돌려받은 뒤 이를 김 전 수석에게 보고했으며 캠프의 재정·조직 업무를 맡았던 조정만(51·1급) 국회의장 정책수석비서관에게 돈 봉투를 전달했다고 털어놨다.
돈 봉투를 돌려받은 사실을 보고받은 김 전 수석이 “그걸 돌려받으면 어떡하느냐”고 화를 냈다는 진술까지 나온 상태다.
또 고승덕 의원도 돈 봉투를 돌려준 당일 오후 김효재 의원이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돈을 왜 돌려주는 거냐”라고 물었다고 진술했다.
고승덕 의원실에 전달된 300만원과 안 위원장을 통해 구 의원들에게 전달된 2천만원의 살포 과정에 모두 김 전 수석이 개입됐음을 보여주는 진술과 정황 증거가 확보된 셈이다.
여기에다 김 전 수석이 부하직원들에게 허위 진술을 강요하고 말을 맞추려 한 정황도 상당 부분 포착됐다.
검찰은 김 전 수석의 신분을 ‘피의자’로 못박은 데다 “두 번 부르는 일은 없을 것 같다”고 밝혀 사법처리에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김 전 수석이 더 버티지 못한 채 혐의를 일부 시인할 가능성도 없지 않아 보인다. 그의 진술이 어떤 수준에서 나오느냐에 따라 수사팀이 그려온 ‘돈 봉투 살포 조직도’가 완성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그러나 검찰이 김 전 수석에 대한 조사에서 고 의원실 외에 다른 의원실에 뿌려졌을 것으로 보이는 돈 봉투의 실체까지 밝혀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고승덕 의원실에 돈 봉투를 돌린 인물로 지목된 당시 캠프 전략기획팀 직원 곽모(33)씨가 “내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없다. 책상 밑에 있던 돈 봉투를 본 적이 있고 내가 옮기기도 했다”고 검찰 전화조사에서 한 진술에 비춰 다른 캠프 직원이 다른 의원실에도 돈 봉투를 돌렸을 것으로 충분히 추론할 수 있다.
하지만 돈 봉투를 받았다거나 돌렸다는 직접 진술이 없는 한 김 전 수석을 추궁해 다른 의원실에 간 돈 봉투까지 실토를 받아내기는 어려워 보인다.
검찰은 김 전 수석에 대한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곧장 박희태(74) 국회의장에 대한 조사에 나설 계획이다.
박 의장은 13일 사퇴 기자회견에서 “약간 법의 범위를 벗어난 여러 관행이 있었던 게 사실”이라며 돈 봉투 살포를 사실상 시인하면서도 “수사가 진행되고 관계자들 얘기를 들으며 알게 됐다”고 말하는 등 자신이 직접 개입하지는 않았다는 입장을 보였다.
따라서 이날 김 전 수석 조사결과에 따라 박 의장에 대한 조사방법과 사법처리 수위가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날 조사에서 김 전 수석이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지겠다며 박 의장에 대해 입을 다물어 버리면 검찰 조사가 의외로 더 진전하기 힘들 수도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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