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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박완서 작가 마지막 걸음…감동

故박완서 작가 마지막 걸음…감동

입력 2011-01-24 00:00
업데이트 2011-01-24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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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단의 거목이면서도 늘 낮은 자세로 소박한 삶을 살았던 박완서 작가의 마지막 길이 잔잔한 감동을 전하고 있다.

 평생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남을 감싸 안았던 그는 떠나면서도 조용히 남을 위하는 모습으로 그답게 생을 마감했다.작품을 통해 많은 독자의 아픔을 나눴던 그가 세상과의 작별을 통해서도 사회에 훈훈한 온기를 전한 셈이다.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고인의 빈소 입구에는 ‘부의금은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평소 “내가 죽으면 찾아올 문인 중에 가난한 이들이 많으니 부의금을 받지 말라”는 당부에 의한 유족들의 결정이다.

 장례식 역시 겸손하게 살다간 고인의 뜻을 받들어 별도의 의식 없이 조용히 치러진다.

 유족 측은 “주위에 폐를 끼치지 않고 소박하게 가시겠다는 평소 말씀에 따라 부의금을 받지 않기로 했으며,문학인장이 아닌 천주교식 가족장으로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고 말했다.

 문인들과 조문객,네티즌들은 “암에 걸린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고 투병하다가 홀연히 떠나시면서도 남은 이들을 챙기시는 모습에 평소 인품이 그대로 드러난다”며 고개를 숙였다.

 작가 박완서는 세례명이 정혜엘리자벳인 천주교 신자로서도 유명인답지 않은 조용한 신앙생활로 잘 알려져있다.

 그는 오랜 기간 보문동에서 살다가 1982년께 신천동 장미아파트로 이사하면서 당시 신천동 성당 김자문 주임신부로부터 세례를 받았고,1988년 남편을 폐암으로,석달 후 서울대 의대 레지던트이던 외아들을 과로사로 잃은 뒤 신앙의 힘으로 고통을 극복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박씨는 지난해 4월 김자문 주임신부가 사목하고 있는 대치2동 성당에서 부활절 강론에 나서 “1남4녀 중 3명이 서울대,두아이가 연세대,이화여대를 나오고 모두 건강한데다 남편과 금슬도 좋았던 나의 행복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신앙을 가졌다”며 “성당은 유명인이라고 아는 척을 하지도 않고,종교를 강요하지도 않는 것이 좋았다”고 털어놓았다.

 박씨는 “세례는 받았지만 그다지 교회생활을 열심히 하지는 않던 차에 1988년 남편과 아들을 3개월 간격으로 잃고 부산의 분도 수녀원에 칩거하면서 십자가를 던지는 등 하느님과 극심하게 싸웠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천주교계 관계자들은 “유명 작가인 박완서씨의 경우 문인장 등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일반 천주교인과 같이 교적이 있는 구리 토평동 성당에서 소박한 장례미사를 치르겠다고 유족이 전해왔다”며 “장례미사에도 박완서씨에게 세례를 줬던 김자문 신부,나자로 마을을 오래 이끌던 김화태 신부,인천가톨릭대 교수인 조광호 신부 등 고인과 인연이 있었던 성직자들 위주로 참석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영원한 현역’으로 불렸던 고인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문학과 후배 작가들에 대한 애정으로 책을 손에 놓지 않은 것으로 전해져 후배 문인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고인은 문예지 ‘문학동네’의 젊은작가상 심사위원을 맡아 최근까지 후보작을 읽으며 지냈다.그가 세상을 떠난 22일은 최종심사 마지막 날이었다.

 염현숙 문학동네 편집국장은 “몸이 불편하시면 심사를 보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씀드렸는데 병석에서도 후보작들을 다 읽으시고 심사평을 남기셨다”며 “젊은 작가들을 아끼셨던 선생님이 마지막 순간까지 그들과 함께 하셨다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했다”고 말했다.

 고인은 25일 오전 8시40분 발인 후 오전 10시 구리 토평동 성당에서 장례미사를 거쳐 용인 천주교 공원묘지에 안장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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