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전쟁> 수출기업들 긴장 속 대응책 부심

<환율전쟁> 수출기업들 긴장 속 대응책 부심

입력 2010-10-08 00:00
업데이트 2010-10-08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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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주요국들의 외환시장 개입이 ‘환율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수출 비중이 높은 국내 산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환율 급변동으로 사업에 지장이 초래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환율을 둘러싼 각국의 충돌이 보호무역주의 확산으로 이어질 경우 교역 의존도가 높은 국내 기업들에게는 예상을 뛰어넘는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주요 기업들은 환율전쟁이 원화강세와 교역량 축소 등 각종 악재를 몰고 올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환율 예의주시=지난 7월 1천214원까지 올랐던 원달러 환율은 8일 현재 1천120원대로 하락해 있다.

 올해 하반기 평균 원달러 환율을 1천100원대로 예상한 경우가 많은 주요 대기업들에게는 환율 하락폭이 아직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일본에서부터 시작된 해외 정부의 외환개입이 국제적 마찰을 격화시키고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이어질 경우 환율하락과 교역량 감소 현상이 심화될 공산이 크다.

 이 때문에 수출 의존도가 높은 주요 기업들은 환율 변동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자동차 업계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수출 비중이 약 60∼70%를 차지하고 있는 현대.기아차는 환율이 10원 하락하면 매출액이 약 2천억원(현대차 1천200억원,기아차 800억원) 떨어지는 것으로 자체 분석하고 있다.

 보호무역주의 움직임은 차량에 매기는 관세와 수출량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어 긴장도가 높다.

 전자업계도 국내에서 생산해 해외로 수출하는 비중이 큰 사업에서는 원화강세가 수출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환율 문제에 예민한 편이다.

 LG전자의 경우,아직 환율 수준이 비상대책을 수립할 단계는 아니지만 4분기 이후 환율 흐름을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있으며 매출채권과 매입채무 등 운전자본 변동 상황도 하루 단위로 체크하고 있다.

 수출 비중이 큰 섬유산업도 원화 절상 흐름이 달갑지만은 않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에 따르면 공정 단계별 이해관계가 다르지만 섬유산업이 전반적으로 매출액의 80%를 수출에 의존하는 대표적인 수출주도형 구조여서 환율이 내리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손해를 입게 된다.

 섬유산업연합회 관계자는 “2008년 말 기준으로 환율 10원 하락시 화학섬유 산업은 매출이 208억원 감소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었다”며 “환율 하락으로 원재료 구입 비용에서 보는 이익이 매출 감소분을 모두 상쇄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면역력 강화’ 주력=환율 변동이나 보호무역주의 등은 개별 기업이 통제할 수 없는 대외 변수인 만큼 기업들은 외부적 상황에 대한 면역력을 키우는 데서 해법을 찾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해외 현지 공장 운영을 주된 대응책으로 꼽고 있다.

 미국과 유럽은 물론 중국,인도,러시아에 이어 브라질에도 생산기지 건설을 추진해 고율의 관세를 피하고 환리스크를 최소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이와 함께 지속적인 신차 출시와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환율로 인한 매출 감소를 판매 확대를 통해 극복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삼성전자는 단기적 환율 변동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고 근본적인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고부가가치 제품 판매를 확대하고 원가 절감을 극대화하며 공급망을 철저하게 관리해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줄이는 전략이다.

 반도체 가격 하락 국면 속에서 모바일용 D램 등 고부가가치 제품의 판매 비중을 높이거나 30나노급 D램 생산 비중 향상 등 생산 효율을 높이는 사업 전략 등이 그 사례에 해당한다.

 포스코는 제품 수출을 통해 벌어들이는 외화를 유연탄과 철광석 등 주요 원료 수입물량 결제에 사용하는 내츄럴 헤지(natural hedge)를 통해 환율변동에 따른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또한 원가절감 목표 1조1천500억원을 달성하고 신규 고객사 발굴 및 고부가가치 제품 판매 강화 등을 통해 다양한 사업 환경 변화에 대처할 계획이다.

 조선업계는 일부 업체를 제외하면 수출 거래의 70∼80% 이상에 대해 환헤징을 해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편을 쓰고 있다.

 달러 기준으로 확정된 선가로 수주한 물량을 만들면서 장기간의 건조 과정에서 일정 비율의 건조대금을 받는 사업인 만큼 환율 급등락으로 채산성 악화가 발생하는 일을 막기 위해 이 같은 방편을 도입한 것이다.

 석유화학 업계도 수출 비중 축소 등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호남석유화학 관계자는 “석유화학 산업의 원료인 나프타 분해시설을 보유한 대형 화학업체는 수출 비중이 65% 정도여서 환율 하락에 따라 수출비중을 다소 축소하고 있다”며 “나프타 국제 가격과 환율의 최적점을 찾아 거래를 하는 대책도 마련했다”고 말했다.

 LG화학 측은 “환율 변동 폭이 아직 예상 범위여서 큰 문제는 없으나 수출 비중이 큰 만큼 중장기적으로 원가절감과 같은 대응책을 마련 중”이라고 전했다.

 ◇일부 업계,환율 하락에 ‘반사이익’=환율하락으로 모든 업종이 부담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항공업계는 내심 반사이익을 기대하고 있다.

 국적 항공사는 국내 여행객에 대한 의존도가 크기 때문에 환율하락으로 감소되는 외국인 수요보다 증가하는 국내 여행객 수요의 폭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또 연간 지출비용 가운데 절반 이상이 항공유 구입비와 항공기 리스료,해외지사 운영비 명목으로 나가는 외화여서 환율이 하락하면 원화로 표시되는 재무제표도 그만큼 좋아지는 장점도 있다.

 대한항공은 원화가치가 연평균 10원 상승하면 540억원 절감하고,아시아나항공은 68억원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원재료의 상당 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식품업계도 입장이 비슷하다.

 밀가루,설탕 등의 원료를 대부분 수입하는 CJ제일제당은 올해 경영전략을 짜면서 기준 환율을 1천150원으로 잡았으며,환율이 100원 오르는 데 따른 환차손을 연간 1천억원으로 계산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올 상반기 환율이 1천200원 이상으로 오르면서 본 손해가 최근 환율 하락으로 조금이나마 상쇄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건설업계는 일시적 환율 등락에 큰 영향을 받지 않지만 최근의 환율하락이 원자재 도입 가격 하락으로 이어져 부분적이지만 수익성 개선에 도움을 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달러화 차입금이 많은 업체나 외산 기자재 구매 비율이 높은 일부 건설사들도 원화 강세에 따른 수혜를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원유를 외국에서 수입해야 하는 정유업계는 일단 환율하락 수혜업종으로 분류되지만 눈에 띄는 이득은 없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대한석유협회 주정빈 부장은 “원유 수입대금은 기한부 어음(유전스)를 활용해 지금처럼 환율 하락 국면에선 환차익을 볼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요즘 정유업체의 수출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어 이를 상쇄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일부 업종에서는 환율 하락으로 이득을 보는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환율전쟁’이 ‘무역전쟁’으로 비화해 무역장벽의 강화와 교역 축소로 이어질 경우 수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우리 경제는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기업들은 우려의 눈길로 현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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