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을 담는 사진작가들 | 부산] 만선을 낚고 바다를 낚고

[고향을 담는 사진작가들 | 부산] 만선을 낚고 바다를 낚고

입력 2010-10-24 00:00
업데이트 2010-10-24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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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선망어선 체험 기록

첫날

토요일, 전날 배를 타고 출항을 해야 했으나, 절차상의 준비부족으로 하루를 넘긴 아침이다. 여름휴가 연휴 첫날을 느지막하게 일어나 아침을 들기 직전이다. 조합으로부터 일요일께나 출항을 할 것 같다는 통보를 받은 상태이다. 그런데 9시 40분쯤 문화재단 담당자인 김예인 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8시께부터 줄곧 휴대폰으로 연락을 취했는데 전화가 꺼져 있어 사방팔방 수소문하여 겨우 집 전화를 확인해서 연락을 했던 것이다. 이유인 즉슨 운반선이 오늘 12시에 급히 출항을 하게 되어 지금 바로 통영으로 출발해야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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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선을 위한 신검확인서를 꼭 챙기란 말과 함께 바쁘지만 급히 움직일 것을 당부한다. 식사 준비에 바쁜 아내를 보채 이것저것 소지품을 챙기게 하고 나는 촬영 장비를 챙겼다. 카메라 2대, 각종렌즈, 메모리카드, 배터리 그리고 노트북을 챙겨 들고 집을 나섰다. 미리 아파트 앞에 대기시킨 콜택시를 타고 서부시외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왠지 허전한 느낌이 들어 혹시 빠진 것이 없나 하고 장비를 다시 살펴보았다. 아차! 배터리 충전기를 놓고 온 것이다. 뿐만 아니라 플래시도 챙기지 못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 배터리는 상시 지참해 다니는 8세트를 아껴 쓰기로 했고 플래시는 카메라에 부착된 내장 플래시를 사용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9시 45분경 터미널에 도착하여 가까스로 49분 차에 승차를 했고 차는 곧바로 출발을 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오늘이 여름휴가의 첫날이라 고속도로 정체가 생각보다 심하다는 뉴스가 나온다. 이대로 고속도로를 타게 되면 평상시 2시간 정도면 갈 수 있지만 최소 4~5시간 길면 6시간을 가야한다는 것이다. 앞이 캄캄하다. 그러나 죽으라는 법은 없는 모양이다. 베테랑인 버스기사는 고속도로를 타지 않고 국도를 요리조리 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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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간에 승선하게 될 운반선의 선장에게 차량 정체로 조금 늦어질 것이라는 전화를 미리 했다. 마침 선장이 성이 같은 문씨라 그런지 천천히 오라는 것이다. 천천히 가고 말고는 내 의지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맘은 편했다. 다행히 2시간 40여 분 만에 통영터미널에 도착을 했다. 택시를 타고 부두로 향했다. 가는 도중 잠시 내려 약국과 편의점에 들러 멀미약 3일 분과 담배 몇 갑을 챙겼다. 그리고 잠시 후 부두에 도착해서 선장을 만나 간단한 인사를 한 후 배에 올랐다.

첫날-드디어 출발

우리를 실은 배는 서서히 통영항을 빠져나간다. 얼마 가지 않았는데 눈앞은 망망대해다. 볼 것이라고는 하늘과 바다뿐이다. 조업 현장인 제주도 인근 현장에 도착하니 거의 12시가 넘었다. 2시 30분경에 출발했으니 꼬박 10시간을 항해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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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지는 제주도 한림면 앞바다. 주위는 이미 한밤중이다. 지금부터 본선에서 고기를 잡았다는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참고로 대형선망어선이란 국내 연근해에서 고등어를 주로 잡는 배이다. 대형선망은 통상 6척이 한 조다. 이를 ‘통’이라 한다. 조업을 하는 본선 1척, 본선과 그물을 받고 넘기며 집어 등의 역할을 하는 등선(불배) 2척, 그리고 잡은 고기를 운반하는 운반선 3척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탄 배는 운반선이다. 운반선은 본선에서 고기를 잡아야 움직인다. 그때까지는 기다릴 수 밖에 없다. 짧게는 2~3일 길게는 몇날 며칠을 기다려야 한다.

도착한 첫날밤이고 잠자리가 바뀐 탓이라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다. 한참을 뒤적거리다가 겨우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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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셋째날

망망대해에서 하는 일 없이 기다린다는 것 자체가 적응이 되지 않는 나에게는 정말 지루한 시간이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씩 지나자 선원들과도 친숙해지고 그 생활에도 조금씩 적응이 되어 갔다. 몇몇 선원들과 선상 생활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그러면서 간간히 그들의 생활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밤에는 잠이 오질 않아 갑판 위에 나와 수평선 위에 점처럼 반짝이는 불빛을 보고 셔터를 누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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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들도 생활은 단순했지만 저마다의 역할이 있다. 브릿지와 기관실의 3교대 당직근무, 싣고 간 얼음이 녹지 않게 갑판 위에 천막 치고 걷기, 갑판에 물 뿌리기, 그물 손질하기 등의 일들이다. 그 외 시간에는 거의 휴식을 취한다. 배 내부의 공간은 기관실, 주방, 식사 공간, 샤워실 그리고 침실로 구성되어 있다. 식사 공간에는 긴 식탁 하나가 놓여 있는데 식사시간 외에는 휴게 공간이다. 이야기도 하고 TV도 보고 하니 집으로 치자면 거실 같은 곳이다. 식사의 경우도 그리 나쁘지 않다. 1식 4~5찬은 기본이고 고기가 잡히는 날엔 푸짐한 생선요리까지 보태진다. “배 위의 생활이 애초에 생각했던 것보다는 할만 할 것 같다”고 하자, 한 선원이 “성어기인 12월~2월에는 조업양도 많고 더군다나 날씨까지 춥기 때문에 고생이 심하다”는 말을 한다. 어디든 쉽게 돈을 버는 곳이 있겠냐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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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째

눈을 붙인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벽 1시. 침실에 설치된 벨이 심하게 울린다. 드디어 고기가 잡힌 모양이다. 군대 5분대기조처럼 선원들의 움직임은 일사불란하다. 신속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작업복, 작업화, 안전모까지 챙겨 쓰고 갑판 위로 나간다. 기관장은 대형 크레인을 옮겨 갑판 위 얼음창고에서 그물에 쌓인 얼음주머니를 연신 끌어올려 갑판 위에 쌓기 시작한다. 몇몇은 고기가 채워질 창고에 들어가 창고 바닥에 미리 얼음을 깔아 놓는 작업을 한다. 이 모든 작업이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진다.

잠시 휴식을 취할 틈도 없이 불을 밝힌 본선이 물고기를 가득 채운 그물을 끌고 운반선으로 접근해 온다. 준비하고 있던 선원들이 신속하게 로프를 주고받으며 양쪽 배를 근접시킨다. 그물이 좁혀져 오자 그물 안은 은빛 고기들로 가득하다. 말로만 듣던 제주 은갈치다. 갈치를 감싼 그물이 스모 선수 뱃살처럼 축 처져 있어 포만감이 가득하다. 운반선의 선원들의 손놀림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국자 같은 그물을 이용하여 운반선 어창으로 연신 퍼 담고 어창 양쪽에 걸터앉은 두 사람이 직경 15센티 정도가 되는 대형 고무호스를 이용하여 잘게 부셔진 얼음을 고기와 함께 어창으로 쏟아 붙는다. 얼음을 잘 섞어 넣어야 생선의 신선도가 잘 유지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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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퍼 올리는 고기의 마리 수는 족히 수천 마리는 될 것 같다. 살이 통통 오른 갈치들을 보니 수확의 기쁨이 바로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진을 찍고 있는 나까지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어창으로 옮기는 작업은 마지막 마무리까지 채 1시간이 걸리기 전에 신속하게 끝이 났다. 작업을 끝낸 선장과 선원들이 흡족한 미소를 띠는 것을 보니 수확은 꽤 괜찮은 모양이다. 이렇게 첫 작업은 끝이 났다.

간단한 샤워로 땀을 씻어내고 잠자리에 누운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벨이 울린다. 새벽 5시다. 푸른 여명과 함께 불 밝힌 본선이 운반선으로 접근해 온다. 이번엔 전갱이 새끼인 매가리다. 이번에도 수확량이 꽤 괜찮다. 앞서 작업에서 한번 경험했던 터이라 다소 차분하게 카메라를 들이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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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작업 때 갑판 위는 항상 위험이 내재하고 있다. 얼음을 옮기는 크레인 그리고 그물을 당기는 쇠사슬 체인 등이 실시간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첫 경험자는 자칫 안전사고를 당할 수 있다. 참고로 첫 번째 작업에서 어창으로 고기를 옮기는 그물을 이동시키는 체인 옆에 서서 촬영을 하다 사고를 당할 뻔하기도 했다. 두 번째 작업을 마무리 할 즈음 여명은 이미 훤한 낮으로 바뀌었다. 두 번째 어창까지 가득 채운 뒤 갑판 위를 신속하게 정리를 하고 모두들 샤워장으로 향했다.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잠시 후 식탁에 모여 앉았다. 그야말로 식탁은 풍성하다. 방금 잡은 생선이 회로, 구이로, 찌개로 바뀌어 식탁에 올라 와 있다. 수라상이 부럽지 않다. 한 선원은 “내가 이 맛에 배를 타지”라고 흐뭇한 미소와 함께 큰 그릇에 회를 듬뿍 넣고 설탕 고추장과 함께 비빈다. 그때 먹은 물회 맛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식사를 끝낸 선원들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리고 두 어창을 가득 채워 포만감에 쌓인 우리의 운반선은 힘찬 엔진소리를 내면서 부산을 향했다.

글·사진_ 문진우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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