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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14>너새니얼 호손 ‘주홍글씨’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14>너새니얼 호손 ‘주홍글씨’

입력 2014-05-20 00:00
업데이트 2014-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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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낙인 ‘주홍글씨’ 헌신·사랑으로 승화 양심의 구원을 얻다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이사야 1장 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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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미국의 어둡고 준엄한 청교도 사회를 배경으로 죄지은 자의 심리를 탁월하게 그려 낸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글씨’는 치밀한 묘사와 인간의 보편적인 주제를 다룬 미국 문학의 걸작이다. 그의 작품 속에는 치욕의 상징인 주홍글씨가 알레고리로 등장한다. 성경에서 비롯된 주홍빛은 인류의 죄와 피를 의미한다. 주홍글씨란 어떤 죄나 잘못을 저지르면 평생 동안 죄를 지은 사람에게 따라다니는 불명예를 뜻한다.

그런데 이 작품은 주홍글씨를 단순히 죄의 상징으로 낙인찍는 데 그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작품이 죄를 짓는 과정이 아닌 그 후부터 시작된다는 점이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 먼저 작품 속 주인공을 만나 보자.

뉴잉글랜드 보스턴. 젊고 아름다운 헤스터 프린은 2년 전 미국에 건너와 사생아 펄을 낳고 간통을 의미하는 A(Adultery)를 평생 가슴에 달고 다니는 벌을 받게 된다. 때마침 행방불명됐던 헤스터의 남편이 나타나 처형대 위에 서 있는 헤스터를 목격한다. 그는 로저 칠링워스라는 이름의 의사로 정체를 숨긴 채 마을에 정착한다.

헤스터는 청교도주의적인 사회에서 불의의 남녀 관계로 냉혹한 제재를 받지만 사랑하는 상대를 지키기 위해 모든 비난을 인내한다. 그의 딸도 세상과는 유리된 채 밝고 자유분방하게 살아간다. 그녀가 사랑한 상대는 목사 딤스데일이었다. 그는 젊고 온 마을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자였다. 자신의 지위와 신분을 모두 포기하고 죄를 드러낼 의지가 약했던 그는 심한 죄책감에 시달린다. 로저 칠링워스는 그런 목사에게 접근해 마음을 할퀴고 상처를 줘 쇠약하게 만든다. 헤스터는 목사가 자책으로 괴로워하는 것을 알고 로저 칠링워스에게 복수를 그치라고 간청하지만 거절당한다. 그리고 목사를 찾아가 영국으로 돌아가서 새로운 삶을 살자고 설득한다. 그러나 목사는 장관 취임식 날 자신의 죄를 만천하에 고백한 뒤 목숨을 끊는다. 이렇게 작가 호손은 죄를 지은 후 벌어지는 죄의식과 벌, 나아가 구원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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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은영 한우리독서토론논술 책임연구원
서은영 한우리독서토론논술 책임연구원
헤스터가 가슴에 늘 새기고 다니던 낙인은 원래 쇠붙이로 만든 뒤 불에 달궈 찍는 도장으로, 가축이나 목재에서 유래했고 노예가 도망치지 못하게 할 때나 형벌의 수단으로 썼던 것이다. 흔히 ‘낙인을 찍는다’는 말은 씻기 어려운 불명예스러운 판정이나 평판을 비유적으로 말할 때 사용된다. 주목할 점은 낙인의 기준이 시대와 종교, 사회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한 번의 실수와 잘못으로 온갖 사람들에게 치욕을 당하고 평생 동안 낙인찍힌 채 손가락질을 감수해야 하는 건 옳은 일일까? 세상에는 드러나지 않는 죄도 많다. 남의 마음에 심한 고통을 주거나 잘못된 가치관으로 사회를 변형시키는 경우를 많이 봐 왔다. 특히 그들이 권력자이거나 승리자였다면 그러한 잘못은 더욱 치장되고 미화돼 버린다. 마녀재판이라고 하는 잘못된 관습도 결국 그 사회의 약자요, 유리된 자들을 사회질서 유지의 희생양으로 사용한 비극적인 사건이다. 헤스터가 살았던 17세기 뉴잉글랜드는 종교의 자유를 찾아 영국을 떠난 청교도들이 새롭게 뿌리 내린 곳이었다. 그들은 굶주림과 고통 속에서 미국 사회를 건설했다. 금욕, 절제, 규율을 기본 윤리로 삼은 청교도 사상은 미국 사회를 일군 힘이 되기도 했지만 인간의 본성을 억압하고 죄의식과 규율 속에 가두는 독선적인 경향도 강했다. 19세기를 살아가던 호손은 작품을 통해 17세기 청교도적 삶의 허구성을 비판했다.

헤스터는 주홍글씨를 단 채 사람들로부터 온갖 저주와 욕설을 들어야 했지만 타고난 위엄과 기품을 잃지 않는다. 그녀의 실수가 정당하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사랑을 지키고 윤리적 규범으로 규정지어진 벌을 받겠다는 자세, 실수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는 자세 그리고 이제부터 제대로 삶을 살아야겠다는 결연하고 일관된 의지가 있었다. 그녀는 세상의 규범이 자신의 명예와 사랑을 빼앗아 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또한 죄를 지은 뒤 보여준 가난한 사람에 대한 사랑과 병자들에 대한 헌신, 불평 없이 깨끗한 삶을 영위하는 모습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주홍글씨의 A를 Able(유능함)로 인식하게 했다. 나아가 목사가 죽은 뒤에도 평생 주홍글씨를 달고 남을 위해 애쓰며 사려 깊고 헌신적인 자세를 보여준다. 이제 그녀는 Angel(천사)의 상징이 된다. 하늘나라의 기쁨을 전하고 가장 고상하고 순결한 여인으로 표적이 된 것이다.

한편 대조되는 인물이 있다. 목사는 성직자라는 위치에서 드러낼 수 없는 죄를 내면화해 자책하고 스스로에게 가혹한 벌을 내린다. 그리고 또 한 명, 끝까지 복수의 화신이 돼 목사를 괴롭혔던 로저 칠링워스는 인간이 가진 최소한의 양심도 이해심도 가지지 못했고 섬뜩한 복수의 칼날에 자신도 베어 버린 악인이었다. 하지만 그의 복수는 헤스터에 대한 사랑으로 볼 수 있다. 본문에서도 사랑과 증오는 근본이 하나이기 때문에 자비를 구하자는 대목이 나온다. 그러나 그의 사랑은 방법이 왜곡됐으며 결국 비극으로 끝나 버린다.

이렇게 호손은 세 사람을 통해 종교적 신념에 근거한 양심의 문제를 제기했다. 결국 사회적 낙인을 끊임없는 헌신과 사랑으로 승화시킨 헤스터, 마음속 낙인으로 괴로워하고 영혼의 구원을 외치며 죽은 목사, 죽기 직전 자신의 전 재산을 펄에게 물려주는 것으로 자신의 악행을 뉘우친 로저 칠링워스를 통해 도덕적 진실과 양심의 구원, 나아가 영혼의 자유를 밀도 있게 풀어내고 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본의 아니게 ‘주홍글씨’라는 크고 작은 치욕을 겪게 될 때가 있다. 그럴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똑같은 죄를 저지른 헤스터와 딤스데일. 한 명은 사회의 지탄과 멸시, 천대를 받았고 다른 한 명은 죄의 폭로를 두려워하며 끊임없이 자책했다.

올바른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데 중요한 것은 스스로 참회하고 용서를 구하는 자세다. 양심과 도덕적 판단이 그 어떤 규범보다 중요한 이유다. 이것은 요즘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이 작품을 통해 마음속 깊숙이 숨겨 놓았던 인간의 본성과 규범, 죄와 벌의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면 좋겠다.

■너새니얼 호손은

너새니얼 호손(1804~1864)은 19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다. 장편 ‘주홍글씨’와 함께 우리에게 잘 알려진 그의 작품으로는 흔히 ‘큰 바위 얼굴’로 축약돼 알려진 단편소설 ‘큰 바위 얼굴과 다른 흰 산 이야기’가 있다.

청교도 집안에서 자란 호손은 작품에서 원죄와 속죄, 법과 양심을 진지하게 탐구했다. 호손은 자신의 조상들이 17세기 퀘이커교도에게 태형을 가하거나 마녀재판에 참여한 일 등에 대해 죄의식을 느꼈다고 한다.

1825년 보든대학을 졸업한 호손은 24살에 소설 ‘판쇼’를 출판하지만 스스로 회수했다. 이후 보스턴 세관에서 일하다가 1842년 결혼한 뒤 콩코드에 살면서 집필한 단편들을 모아 ‘영 굿맨 브라운’이 담긴 단편집 ‘낡은 저택의 이끼’를 출간했다. 1850년 ‘주홍글씨’를 출간한 뒤 소설가로 명성을 얻었다. 세밀한 구성력이 돋보이는 ‘주홍글씨’는 미국의 상징주의 소설에 영향을 끼친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팁:‘알레고리’는 어떤 한 주제 A를 말하기 위해 다른 주제 B를 사용해 그 유사성을 적절히 암시하면서 주제를 나타내는 수사법이다. 은유법이 하나의 단어나 문장 같은 작은 단위에서 구사되는 반면 알레고리는 이야기 전체가 하나의 총체적인 은유법으로 관철돼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2014-05-2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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