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의 차 한잔] 조용한 인기몰이 ‘유대인 이야기’ 쓴 홍익희

[저자와의 차 한잔] 조용한 인기몰이 ‘유대인 이야기’ 쓴 홍익희

입력 2013-02-16 00:00
업데이트 2013-0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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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통해 서비스산업의 중요성 알리고 싶어”

664쪽의 책을 읽느라 끙끙댔는데 “이제 서론을 마쳤을 뿐”이라고 했다.

서점가에 조용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유대인 이야기’(행성:B 잎새)를 집필한 홍익희(61)씨는 지난 7일 서울 중구 태평로의 한 음식점에 앉자마자 그렇게 입을 열었다.
‘유대인 이야기’의 저자인 홍익희씨는 부(富)의 역사를 일군 그들의 실체를 정확히 알아야만 우리 민족의 살 길인 서비스산업의 중요성을 오롯이 체득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유대인들이 성경을 읽을 때 쓰는 도구로 그네들은 하느님의 말씀이 담긴 성경 구절을 어찌 사람의 손끝으로 짚겠느냐며 이 도구 끝의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읽는다고 홍씨는 전했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유대인 이야기’의 저자인 홍익희씨는 부(富)의 역사를 일군 그들의 실체를 정확히 알아야만 우리 민족의 살 길인 서비스산업의 중요성을 오롯이 체득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유대인들이 성경을 읽을 때 쓰는 도구로 그네들은 하느님의 말씀이 담긴 성경 구절을 어찌 사람의 손끝으로 짚겠느냐며 이 도구 끝의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읽는다고 홍씨는 전했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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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희씨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홍익희씨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지난달 20일 초판이 나와 한달이 돼가는데 벌써 6쇄에 들어갔다고 했다. 베개로 씀직하게 두꺼운 데다 책값도 상당하며 딱딱한 인문학 책인데도 독자들을 사로잡은 비결이 궁금했다. 출판사에선 초쇄를 1000부밖에 찍지 않았는데 우리 사회에 누적된 그네들을 향한 궁금증이 의외로 컸던 모양이라고 풀이했다.

그의 ‘무역전사’ 경력도 하나의 열쇠가 되지 않을까. 1978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입사해 보고타, 상파울루, 마드리드, 뉴욕, 파나마시티, 멕시코시티와 다시 마드리드를 거쳐 2010년 밀라노무역관장을 마지막으로 7개국에서 18년을 보냈다. 국내 근무 14년을 더해 32년을 KOTRA에서 일했다. 이달부터 재입사해 출근하고 있다고 했다. 평양에서 태어나 서울고와 한국외국어대 스페인어과를 졸업했다.

1995년 ‘한국경제의 절묘한 시나리오’와 2010년 ‘21세기 금융위기의 진실’과 ‘유대인, 그들은 우리에게 누구인가’를 냈다.

홍씨는 “밀라노에서 책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엔 우리 민족이 살 길로 금융업, 관광업, 교육업, 의료업 등 서비스산업의 중요성을 제시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대놓고 서비스산업의 중요성을 얘기하려니 독자들의 피부에 와닿지 않을 것 같았다. 해서 서론 격으로, 서비스산업의 중요성을 가장 선도적으로 보여준 민족인 유대인 이야기를 쓰는 것이 훨씬 설득력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쓰기 시작했는데 자꾸 욕심이 생겨서 분량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출판사의 편집 담당은 홍씨가 2년 반 전에 내민 원고가 무려 10권을 낼 수 있는 분량이었다고 했다. 출판사에선 전문 작가를 고용해 원고를 줄이겠다고 했는데 홍씨는 단박에 거절했다.

그러다 지난해 가을 본인이 직접 손을 댔다. 출판사에선 700쪽이 독자의 한계라고 선을 그었다. 두 권 또는 세 권으로 나눠 내는 건 피하자고 했다. 그래서 책을 구성했던 두 축, 경제사와 문명사 가운데 후자를 상당 부분 버렸다.

앞에서 밝혔듯 이 책은 어디까지나 서론이다. 기자는 책을 읽으며 여행할 때 늘 자신의 식기를 가지고 다니는 유대인 특유의 생활상이 축적된 과정이 궁금했다. 한편으로는 암흑시대로 통했던 서구 중세사에서 그나마 이 정도로 문명이 유지될 수 있었던 힘이 유대인과 이슬람 문명의 덕택이란 점들이 조금 더 부각됐으면 했다.

그런데 책은 2차 세계대전에서 갑자기 현대 유대인 금융인맥으로 튀어버린다. 책을 줄이면서 생겨난 일인데 걱정할 건 없다. 그가 지금껏 낸 전자책 50여권(http://www.upaper.net/aaaa4d)으로 가지가 뻗어 있으니 독자는 손만 뻗치면 된다.

홍씨는 “해외 무역관에서 근무하면서 보니 가는 곳마다 유통의 중심에 있는 큰 바이어들은 유대인들이었다. 유통뿐 아니라 사회 곳곳의 중심 세력은 그들이었다. 내가 돌아다닌 7개국 중 가장 유대인의 힘을 크게 느낀 곳이 뉴욕이었다. 미국은 제조업이 10%에 불과한데도 세계경제를 이끌고 있지 않은가. 그들의 실체를 알아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때부터 유대인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유대인들은 자신의 존재를 잘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하다. 서구권에서는 유대인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책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래서 비영어권 텍스트를 구하거나 웹서핑 등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밖에 없었다. 밀라노에서 근무하면서는 퇴근한 뒤 4~5시간씩 글을 썼고 지금도 그 정도 시간을 들인다고 했다.

“사람들이 그러더라. 10만 시간을 들이면 어떤 분야든 전문가가 된다고. 내가 그랬다. 그 정도는 됐다고 생각한다.”

원래 한 번 몰입하면 쉽게 헤어나오지 못한 성격이란다. 밀라노 시절, 주말 벼룩시장 같은 델 다니면 쏠쏠한 골동품, 의외로 진귀한 물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거기 맛이 들려 낯선 도시들을 돌아다녔다. 오전 11시 성당 예배에 참석하자는 아내와의 약속 때문에 새벽 4시쯤 차를 몰아 로마 근처 어느 동네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바둑에 빠져 온 밤을 하얗게 지샌 뒤 곧바로 출근하는 날도 많았다고.

책을 내면서 어려웠던 점은 유대인을 정면으로 다룬 영어 텍스트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는 점. 잘 숨기로 유명한 그네들은 유대인에 대해 정면으로, 감정을 갖고 쓴-대표적인 예가 쑹훙빙의 ‘화폐전쟁’-작가를 찾아 항의하거나 유대인을 그렇게 비딱하게 묘사한 근거를 대보라고 겁박한 뒤 천문학적인 액수의 소송을 건다고 했다.

그러고보니 만화 ‘먼나라 이웃나라’의 이원복 교수가 지난해 8월 한 TV 프로그램에서 털어놓은 일화가 겹쳐진다. 유대인 단체 대표가 몸소 국내 유수의 출판사를 찾아와 엄중히 따졌다는 그 얘기 말이다.

홍씨는 아직 그런 조짐은 보이지 않지만 각오하고 있는 눈치였다. 그래서 특히 책을 쓰면서 쑹훙빙처럼 어떤 감정이나 예단을 노출시키지 않고 독자들이 유대인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데 여간 신경을 쓴 게 아니라고 했다. 말하자면 자기 검열을 철저히 했다는 얘기다.

기존의 경제사 책들이 어느 한 분야에 치우친 얘기를 하는 데 견줘 이 책은 세계경제의 현재와 밑바탕을 유대인과 유대인의 역사에서 찾고 이것이 세계는 물론, 지금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되었는지, 나아가 우리가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21세기의 경제 동력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좇고 있다.

고난의 역사에서 오롯이 자신들의 세계를 지켜낸 유대인만의 특징들, 예를 들어 어릴 적부터 손씻는 습관을 지독하게 들여 유럽 전체를 절망의 나락으로 내몬 흑사병 재앙에서 제외된 점, 유난히 읽기와 쓰기를 강조해 당시 천한 직업으로 여겨졌던 상업과 정보, 나아가 네트워크의 중요성에 일찌감치 눈을 뜬 점, 세상의 거의 모든 종교가 ‘소유’를 터부시 하는 데 견줘 청교도와 유대교만은 부의 축적을 신의 축복으로 여겨 권장한 점, 지금도 흔히 엑소더스라 불리는 기원전 37년 이후의 이집트 탈출의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유월절 기간 누룩 없이 딱딱하기만 한 빵 ‘맛짜’를 뜯어 먹는 민족의 모습 등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더욱 흥미로운 대목은 홍씨가 “자본주의의 효율을 가장 정점에서 맛보는 유대인들이 가장 완벽한 사회주의적 복지 제도의 틀을 갖추고 있다”고 본 것. 유대인들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영국을 거쳐 뉴욕으로 옮겨가며 자본주의의 ‘씨앗’을 퍼뜨리는 과정 속에서도 민족 자체는 늘 공동체를 위한 자리를 비워뒀다. 다른 유대인들이 옮겨오면 일자리를 마련해주고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줬다. 홍씨는 “양대 이데올로기 진영의 첨병으로 마주 보는 남북한이 통일되면 ‘공동체 자본주의’를 탄생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민족이 향후 자본주의를 선도할 수 있는 나라가 될 수 있으며 지구를 떠돌며 세계경제의 중심을 옮기는 유대인들과 함께 하지 않고서는 민족의 살 길을 구할 수 없다는 점을 우리 모두, 특히 젊은 대학생들이 밝은 눈으로 바라봤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 책이 잘 나가면서 홍씨의 다른 노작들도 빠르게 세상 빛을 보게 될 것 같다. 우선 탈무드.

관련된 책들은 이미 넘쳐날 만큼 나온 것 아니냐고 떠보자 홍씨는 “탈무드를 표피적으로가 아니라 제대로 본격적으로 파헤쳐 보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물론 그가 정말 전념할 대목은 앞에서 얘기한 서비스산업의 중요성을 알리는 ‘본론’일 것이다. 혼자 힘으로는 못한다고 했다. “시스템으로 해야 한다. 기업이나 대학 같은 곳에서 뜻을 세워 여러 사람과 해야 할 일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바람을 전했다. 나아가 선배 기업인들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정말 어떻게 일했는지를 보여주는 기업소설, 예를 들어 야마사키 도요코의 ‘불모지대’ 같은 작품을 써보고 싶다는 희망도 드러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2013-02-1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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