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투표한다, 그러므로 사고한다】 장 폴 주아리 지음 함께읽는책 펴냄
올해는 총선과 대선이 동시에 치러지는, 우리나라의 미래가 결정되는 해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중요한 의미를 품고 있다. 관심이 정치에 쏠려 있고 선거와 투표, 민주주의 등을 진단하는 책도 많이 나온다.‘나는 투표한다, 그러므로 사고한다’(장 폴 주아리 지음, 이보경 옮김, 함께읽는책 펴냄)는 선거에 담긴 함의를 가장 잘 풀어낸 책이라고 해도 좋겠다.프랑스 철학자인 저자가 2007년 프랑스 대선을 한 달 정도 앞두고 이 책을 펴내 큰 반향을 일으켰고 최근 우리나라에서 번역, 출간됐다.
외국 철학자가 자기 나라 선거를 겨냥해 쓴 글이 우리에게도 적용되는가 하는 질문을 먼저 던질 수도 있겠다. 저자 역시 한국과 프랑스가 다른 상황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는 “기본적으로 통치자들의 임명이 민주적으로 이뤄졌다 해도 선거가 끝난 뒤 체제가 이들에게 부여하는 권력을 화해시키고 조정해야 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문제를 갖는다 할 수 있다.”고 전제한다. 이어 “사회가 무엇에 기초하고 있으며 정치가 어떤 필요성에서 나오는지에 대해 이해하지 않으면 제도들은 독단적인 것이 되고, 모든 권력과 정부 형태는 가치를 잃는다.”면서 “책은 이런 고찰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투표를 해야 민주시민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는 식으로 ‘무조건 투표’를 주장하지 않는다. ‘가장 숭고한 의미’에서 인간이 정치에 입문하게 되는 순간, 공동체 형성, 규율의 시작부터 차근차근 풀어 나간다.
사람은 사회적이지만 이익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공동 규율을 거스를 수 있다는 칸트의 ‘비사회적인 사회성’을 들어 권력자들의 행태를 분석하고, 공동체 질서를 보장하기 위해 만든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탈리오 법칙과 ‘원수를 사랑할 것’이라는 신약성서의 지혜가 갖는 의미를 따진다. 고대 스토아학파나 로마시대 노예이자 철학자인 에픽테토스를 이야기하며 권력자들이 민중을 무기력하게 만든 역사를 되짚는가 하면 “국회의원은 단지 법이 정한 바를 실행하는 국민의 대리인일 뿐이다.”라는 루소의 말을 설명하면서 당선자들이 말하는 ‘국가의 이름으로’라는 말 속에 얼마나 큰 오류가 담겨 있는지 밝힌다.
그리스부터 중세와 근대를 지나 현대에 이르는 수많은 정치 철학을 살피면서 본론에 다가간다. 오래전부터 예견된 정치인의 타락과 민중의 불신을 잠재우기 위한 열쇠는 역시 투표권 행사뿐이라는 것이다. “정치적 진리는 국민 스스로 하는 행동을 통해서만 존재한다.”면서 참여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정치사상들이 어떻게 생겨나고 시대에 적용되면서 어떤 변화를 겪어왔는지 주제에 따라 흐름을 읽어내기에 좋다. 그 이후에는 제목을 뒤바꿔 ‘나는 사고하므로 투표한다’는 행동으로 이어갈지는 읽는 이의 몫이다. 1만 50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2012-03-1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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