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넷 뉴욕 디자이너 쪽빛에 물든 까닭은

스물넷 뉴욕 디자이너 쪽빛에 물든 까닭은

입력 2011-12-17 00:00
업데이트 2011-1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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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이민 1.5세대, 우리 천연염료에 반한 이야기

“뉴욕에서 밴쿠버로 비행기를 타고 6시간, 다시 밴쿠버에서 서울로 10시간이라는 먼 시간을 날아왔다. 난 뭘 찾는 거지? 내 ‘색’ 말야. 난 도대체 어떤 색을 띤 존재인가?” ‘색에 미친 청춘’(미다스북스 펴냄)의 저자 김유나(24)씨는 한국에서 태어나 2002년 캐나다 밴쿠버로 이주했다가 미국 뉴욕의 패션학교 FIT(Fashion Institute Technology)에서 준 학사 학위를 받았다. 초등학생 때부터 패션 디자이너를 꿈꿨던 그가 천연염색에 매료된 것은 인터넷에 연재된 만화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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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한국의 색을 찾아 떠난 여행 과정에서 만난 아름다운 풍경들. 천연염색은 천만가지 이상으로 변하는 자연의 색깔을 다양한 자연재료를 이용해 모두 표현해낸다. 미다스북스 제공
저자가 한국의 색을 찾아 떠난 여행 과정에서 만난 아름다운 풍경들. 천연염색은 천만가지 이상으로 변하는 자연의 색깔을 다양한 자연재료를 이용해 모두 표현해낸다.
미다스북스 제공


반복되는 학업과 일에 지쳐 있던 저자는 한국의 나주천연염색문화관에서 기획한 웹툰 ‘색으로 말하다’를 보고 치자, 홍화, 쪽 등의 염료가 만들어 내는 천연염색의 존재를 알게 된다. ‘자연의 색’이 그의 일상을 슬금슬금 물들이다 마침내 한국의 천연 염색장인들을 직접 만나 책을 쓴 것은 기존의 패션과 일상이 너무 낭비였던 탓도 있다.

# 황 청 백 적 흑… 오방색에 매료

지구에 사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입는 단일 종류의 의복인 청바지는 쪽풀에서 얻은 ‘인디고’란 색소로 염색한 자연친화적인 파란색 바지였다. 그리고 자유와 자립정신의 산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청바지는 화학염색으로 대량 생산된다.

이 때문에 우즈베키스탄 근처의 아랄해 바닷물은 90%나 말라 버렸다. 흔하디흔한 청바지 하나를 염색하는 데 무려 1만 2000ℓ의 물이 쓰이기 때문이다. 청바지는 몸의 선을 아름답게 드러낸다는 스키니진 등으로 유행에 따라 변하며 사랑받고 있지만 지구는 날로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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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한국의 색을 찾아 떠난 여행 과정에서 만난 아름다운 풍경들. 천연염색은 천만가지 이상으로 변하는 자연의 색깔을 다양한 자연재료를 이용해 모두 표현해낸다. 미다스북스 제공
저자가 한국의 색을 찾아 떠난 여행 과정에서 만난 아름다운 풍경들. 천연염색은 천만가지 이상으로 변하는 자연의 색깔을 다양한 자연재료를 이용해 모두 표현해낸다.
미다스북스 제공


우리들의 옷장을 채운 옷 대부분은 소수의 유명 상표를 제외하고는 많은 이의 노동과 버려지면 쓰레기가 되고 마는 재료의 집약이다. 최근에는 유행에 발맞춰 디자인에서 제작까지 2주도 안 걸릴 정도로 재빨리 만들어 내는 ‘패스트 패션’이 진짜 패션을 죽였다는 말도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터져 나오고 있다.

사실 청바지에 담긴 푸른색의 근원은 한국의 오방색 가운데 하나다. 오방색 가운데 청색은 매우 추상적인 색깔 이름으로 청록색, 녹청색, 청색, 청자색 등 의미하는 색의 분포가 매우 넓다. 황(黃), 청(靑), 백(白), 적(赤), 흑(黑)의 다섯 가지 전통 색깔을 오방색이라고 하는데 오간색도 있다. 오간색은 오방색 가운데 두 가지의 색깔을 섞으면 얻어지는 색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녹색은 청색과 황색의 오방간색으로 동쪽의 목(木)행에 자리하며 봄을 나타낸다.

저자는 한국의 색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하면서 색이 한정적이고, 빨리 바래며, 노인들에게나 어울린다는 천연 염색에 대한 선입견을 깨 나간다. 자연의 색은 끝이 없었고 반복염색을 통해 몇 년이 지나도 색깔이 그대로라 견뢰도가 매우 높다. 게다가 전통 공예는 나이 지긋한 노인들만이 하는 일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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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한국의 색을 찾아 떠난 여행 과정에서 만난 아름다운 풍경들. 천연염색은 천만가지 이상으로 변하는 자연의 색깔을 다양한 자연재료를 이용해 모두 표현해낸다. 미다스북스 제공
저자가 한국의 색을 찾아 떠난 여행 과정에서 만난 아름다운 풍경들. 천연염색은 천만가지 이상으로 변하는 자연의 색깔을 다양한 자연재료를 이용해 모두 표현해낸다.
미다스북스 제공


저자가 책에 담아 낸 여러 장인 가운데 광주 푸른나무 공방의 이지현씨는 젊은 디자인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이씨는 한옥을 보러 갔다가 거기 걸린 조각보에 반해 무작정 규방공예에 빠져들게 되었다. 이씨의 삶을 보며 저자는 옛 여인의 미적 감각을 물려받아 현대의 삶을 꾸려 가는 것을 몽상이라고만 치부하기엔 그의 보자기와 바느질이 아주 아름답다고 한탄한다.

천연 염색 가운데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게 감물이다. 책은 진짜와 가짜 감물 염색을 구분하는 간단한 방법 두 가지를 소개한다. 먼저 균일하게 염색된 것은 가짜란다. 감물 염색은 햇볕에 의해 발색이 되고 얼룩이 생기기 쉽다. 널어서 발색시키는 과정에서 바람이나 그늘, 주름 때문에 색이 불규칙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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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한국의 색을 찾아 떠난 여행 과정에서 만난 아름다운 풍경들. 천연염색은 천만가지 이상으로 변하는 자연의 색깔을 다양한 자연재료를 이용해 모두 표현해낸다. 미다스북스 제공
저자가 한국의 색을 찾아 떠난 여행 과정에서 만난 아름다운 풍경들. 천연염색은 천만가지 이상으로 변하는 자연의 색깔을 다양한 자연재료를 이용해 모두 표현해낸다.
미다스북스 제공


# 미래를 향해 뛰는 젊은 피를 위한 벽색

두 번째로 ‘이걸 어떻게 입어?’라고 할 정도로 뻣뻣한 원단이 진짜 감물을 들인 원단이다. 감물의 타닌 성분으로 염색되면 염색 전보다 2, 3배 통기성이 증가한다. 타닌이 섬유의 작은 기공을 막고 섬유를 뭉치게 하여 오히려 큰 기공을 많이 형성하기 때문이다. 코팅 효과가 좋아서 비나 땀에 젖어도 몸에 달라붙지 않고 자외선도 차단해 준다. 구김이 잘 가지 않을 정도로 옷은 강해진다.

천연 염색에 빠진 저자에게 가끔 “젊은 나이에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김씨는 “모르는 소리”라고 당당하게 답해 준다. 한국의 오간색 가운데 벽색은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젊은 피를 위한 색으로 높고 푸른 미래를 향해 세차게 달리는 푸른 청춘을 위한 빛깔이라고. 2만 5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2011-12-17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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