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인 듯 설치인 듯… 문학인 듯 건축인 듯

그림인 듯 설치인 듯… 문학인 듯 건축인 듯

함혜리 기자
입력 2015-09-21 23:04
업데이트 2015-09-21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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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른 감동 안겨 주는 남다른 두 조각가

조각가는 나무, 돌 같은 재료를 깎고 파거나 점토, 납 등의 재료로 틀을 만들어 브론즈 작품을 만든다. 이런 정형성을 탈피하고자 부단히 노력해 온 두 조각가가 있다. 이들의 색다른 행보를 보여 주는 전시가 나란히 열려 눈길을 끈다.

●한계 없는 공간, 이승택 개인전 ‘드로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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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이승택
조각가 이승택


서울 종로구 삼청동 갤러리 현대에서는 한국 실험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승택(83)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 제목은 ‘드로잉’. 드로잉이라고 하면 통상 종이에 붓이나 연필로 그려진 단순하고 예비적인 그림을 가리키지만 이승택의 드로잉은 공간에 노끈으로 선과 매듭을 이뤄 가며 형태를 창출해 가는 과정으로 설명된다. 본인의 표현대로 하면 ‘손재주가 좋아서’ 안중근, 맥아더 장군 등 유명인의 동상 작업으로 안정적인 수입원을 확보한 그는 1950년 중반 이후 줄곧 전통적이고 관념적인 조각 방법에서 탈피해 다양한 재료를 시험하며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탐구해 왔다.

돗자리 짜는 데 사용하는 고드랫돌에서 노끈의 예술적 가능성을 발견한 그는 1957년 돌멩이를 묶어서 각목에 매달거나 노끈으로 다양한 종류의 일상적 오브제를 묶는 작업을 선보였다. 벽에 늘어뜨린 노끈과 벽에 비친 그림자에서 평면 공간에 표현된 3차원 드로잉의 영감을 받고는 노끈을 화판 혹은 캔버스에 붙여 가는 입체적인 선 드로잉을 시도하고, 좀더 스케일을 넓혀 2m가 넘는 큰 사이즈의 캔버스에 풀어헤친 노끈을 붙여 가며 한바탕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한 손에 노끈, 다른 손에 망치와 못을 들고 공간에 직접 드로잉을 하는 작업 등 그의 작업은 거침이 없이 이어진다. 1969년에는 한계없는 공간개념과 자연현상을 작품에 동참시킨 ‘바람’ 시리즈를 통해 형체없는 조각을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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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나 ‘퍼포먼스’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부터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였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미술계의 이단아’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뿐이었다. 단색조 회화와 민중미술이 주류를 이뤘던 한국화단에서 외면받았던 그의 진가를 먼저 알아본 것은 유럽의 평단이었다. 79세였던 2009년 세계 유명 큐레이터들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 제1회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뒤늦게 조명받기 시작해 국제적인 작가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작가는 “미술이란 새로움을 만들어 냈을 때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라며 “평생 기존 미술과 다른 것을 어떻게 표형할 수 있을까만 생각했다. 정상보다는 비정상, 미술보다는 비미술을 추구해 왔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는 다양한 양식의 드로잉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고드랫돌 설치를 위한 연필 드로잉부터 노끈 드로잉작품, 확장된 공간에서의 입체적인 벽 설치 드로잉, 붉은 천을 이용한 바람 시리즈를 위한 드로잉, 자신의 음모를 이용한 드로잉도 소개된다. 전시는 10월 18일까지.

●경계 없는 미술, 안규철 ‘안보이는… ‘ 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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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안규철
조각가 안규철


조각가 안규철(60)은 미술전문지 기자를 거쳐 1980년대 중반 부조리한 사회와 미술의 관습에 이의를 제기하는 소형조각으로 비교적 늦게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90년대에는 개념적인 오브제와 텍스트작업으로, 2000년대 이후에는 건축적 규모의 설치작업과 공공미술로 작업의 영역을 확장하면서 비판적 사유를 기반으로 미술의 대안적 기능을 일관되게 모색해 왔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는 ‘현대차 시리즈 2015: 안규철-안보이는 사랑의 나라’ 전시회에서 그는 8점의 장르 융합적인 신작을 통해 이 시대와 미술의 의미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전시 제목은 마종기 시인의 시 ‘안보이는 사랑의 나라’를 인용한 것으로 ‘지금 여기’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의 빈자리를 의도적으로 드러내고 그 의미를 되새기려는 작가의 의도를 담고 있다. 작가는 “시장의 상품이 되고 물신적 사물이 되는 미술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다른 미술의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했다”면서 “고립과 격리는 현대인이 마주하고 있고, 극복해야 하는 상황으로 이번 전시의 중심 주제”라고 설명했다. 전시를 구성하는 작품은 미술의 경계를 넘어 문학, 건축, 음악, 영상, 퍼포먼스, 출판을 포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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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마리 금붕어’는 아홉 마리의 금붕어가 9개의 동심원으로 이뤄진 연못에서 헤엄치고 있는 작품이다. 금붕어들은 자유롭게 헤엄치는 것 같지만 결국은 구획된 각자의 공간 속에 고립되어 있다. 무심한 아름다움과 절대적 고독이 교차하는 역설적인 풍경이다. 식물이 자라는 화분을 모빌 작품처럼 공중에 매달아 놓은 ‘식물의 시간’, 영상작업 ‘사물의 뒷모습’은 평범한 일상의 사물을 통해 사유를 이끌어 낸다. ‘64개의 방’과 ‘침묵의 방’은 관람객의 신체적, 감각적 영역을 확장해 고립감을 극대화시킨 작품이다.

‘1000명의 책’은 5개월의 전시 기간 동안 1000명의 관객이 국내외 문학작품을 연이어 필사하면서 보이지 않는 공동체를 이루는 필경(筆耕) 프로젝트다. 웹사이트를 통해 예약한 참가자들은 필경사의 방에 마련된 책상에서 각자 한 시간 동안 주어진 책을 필사한다. 작가는 “이번 전시는 관객이 채워넣어야 할 빈칸들로 가득하다”며 “‘1000명의 책’과 ‘기억의 벽’은 서로를 모르는 익명의 개인들이 공동의 작업에 참여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공동체를 이루는 것으로 ‘안보이는 사랑의 나라’를 향해 가는 상징적인 여정”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2월 14일까지.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2015-09-2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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