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로영재, 경제학도, 음대교수… 고민의 음표로 채운 악보

첼로영재, 경제학도, 음대교수… 고민의 음표로 채운 악보

입력 2013-02-22 00:00
업데이트 2013-02-22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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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차이콥스키 현악사중주 전곡 연주하는 이강호 한예종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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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호 교수는 ‘딸바보’다. “일곱 살 큰딸이 음악에 제법 재능이 있다. 어떤 노래의 한 소절을 두 배로 느리게 불러 보라고 하면 딱딱 맞춰 부른다. 취미 삼아 첼로도 배우고 있다. 그런데 날 너무 닮았다. 연습하는 걸 정말 싫어한다”며 웃었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이강호 교수는 ‘딸바보’다. “일곱 살 큰딸이 음악에 제법 재능이 있다. 어떤 노래의 한 소절을 두 배로 느리게 불러 보라고 하면 딱딱 맞춰 부른다. 취미 삼아 첼로도 배우고 있다. 그런데 날 너무 닮았다. 연습하는 걸 정말 싫어한다”며 웃었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어릴 때부터 첼리스트가 될 생각은 없었다.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어머니가 새로 이사 온 아파트의 아랫집 학생이 첼로 연습하는 걸 듣더니 아들에게도 레슨을 시킨 것. 이강호(42)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또래들이 그렇듯 그도 연습을 싫어했다. 프로야구 TV 중계를 소리를 죽여 들으며 첼로 연습하는 흉내만 내다가 혼나기 일쑤. 그래도 이화·경향콩쿠르에서 초등학교 6학년 때와 예원학교 1학년 때 거푸 2위를 했으니 재능이 남달랐던 셈이다.

예원학교 2학년 때 터닝포인트가 찾아왔다. 내한 공연을 왔던 LA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부지휘자가 자신이 몸담은 학교 오케스트라의 첼로 주자를 물색하려고 예원학교에 찾아온 것. 단박에 눈에 띈 소년은 샌타모니카의 크로스로드스쿨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유학을 갔다. “일종의 스카우트였다. 하하하. 한국에선 낯선 이름이지만 앙드레 프레빈이나 사이먼 래틀 같은 거장들이 학교에 와서 마스터클래스를 열고, 학교 오케스트라 협연자로 요요마가 올 만큼 실력을 인정받는 학교”라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크로스로드스쿨에서 음악과 공부를 병행한 이 교수는 필라델피아의 스와스모어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클래식 유학생들과는 다른, 생뚱맞은 선택의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음악과 공부 둘 다 잘할 수 있다고 착각했다”며 웃었다. 이어 “그때까지만 해도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대학 2학년 때 비로소 깊은 고민에 빠졌다. 선배가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선물했다. 시인 지망생이 릴케에게 자작시를 보내고 코멘트를 요청한 대목이 나온다. 릴케는 시인 지망생이 그 정도 고민을 했다면 이미 시인이라고 답했다. 나 또한 음악을 좋아하고 이 정도 고민을 한다면 음악이 운명이란 결론에 이르렀다”고 덧붙였다. 경제학을 전공한 걸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는 “경제학은 재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쓰느냐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몸에 익힌 습관 덕분에 음악을 분석적인 눈으로 보고, 가장 효과적으로 이해하고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게 됐다. 학생들을 지도할 때 도움이 많이 된다”고 설명했다.

예일대에서 석사 과정을 밟으면서 또 고민에 빠졌다. “음악을 하는 게 행복하지만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투어를 다니는 전문 연주자도 좋지만, 공부도 못 하는 건 아니니까 ‘홈베이스’를 두도록 교수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공채를 통해 스물여섯 살에 서던일리노이대 교수가 됐다. 이후 코네티컷주립대에 재직하던 그가 국내로 유턴한 건 2010년이다. 한예종 음악원에서 교수 제의를 받고 단박에 승락했다. “정명화 선생님 같은 훌륭한 동료 선생님들과 좋은 학생들이 있는 한예종은 마다할 수가 없는 기회였다”고 했다.

여느 클래식 영재들과 다른 인생을 살아온 이 교수가 제자들에게 강조하는 점은 뭘까.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본인의 문제에 대해 질문하고 해결책을 찾는 능력을 키우도록 도우려 한다. ‘무엇’도 중요하지만 ‘어떻게’가 더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클래식 영재교육은 너무 주입식으로 흐른다. 콩쿠르나 입시에서 완벽한 연주를 하려고 기계적인 반복을 하다 보니 테크닉은 훌륭할지 모르지만, 작곡가의 의도나 악보 이면의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단순히 외우고 반복해서는 상상력과 창조력 있는 아티스트가 될 수 없다.”

이 교수는 클래식 팬들에게 실내악 전도사로도 유명하다. 올해에는 금호아트홀에서 브람스와 차이콥스키의 현악사중주 전곡 연주에 나선다. 새달 7일에는 이경선·양고운(바이올린), 최은식(비올라)과 차이콥스키의 현악사중주 1번, 브람스의 현악사중주 3번을 들려준다. 7월에는 권혁주·이보경(바이올린), 강윤지(비올라)와, 9월에는 이경선·한경진(바이올린), 제임스 던햄(비올라)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 이 교수는 “실내악을 많이 하는 편인데도 현악사중주는 기회가 많지 않다. 각자 개성을 살리면서도 소리를 모으고 서로 배려하고 닮아야 하는 분야라 많은 시간과 에너지, 정성이 필요하다. 관객도 음악의 본질을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 이어 “개인적으로 브람스의 현악사중주 3번은 처음 연주하는 곡이라 더 설렌다. 이로써 브람스의 모든 실내악곡을 연주하게 됐다”고도 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2013-02-22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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