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콜라 등 식품대기업 로비에 입법절차 난항
세계 각국에서 인류 건강을 해치는 주적의 하나로 지목되는 설탕의 과다섭취를 막기 위한 노력이 펼쳐지고 있다.전문가들은 현대인의 고질병인 비만과 당뇨가 급증세를 보이는 현상을 세계적 설탕 소비량의 증가로 설명하고 있다.
건강 걱정이 커지면서 ‘저지방’, ‘무가당’ 식품을 찾는 소비자가 늘지만, 설탕의 중독성과 ‘숨은 설탕’(hidden sugar) 등에 따라 설탕 소비는 줄지 않고 비만과 당뇨 환자는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설탕이 유발하는 사회적 비용도 급증할 것으로 우려됨에 따라 주요 국가들이 속속 정책을 내놓고 있다.
가장 최근 사례로는 영국 정부가 16일(현지시간) 깜짝 발표한 설탕세 도입이다. 조지 오스본 영국 재무장관은 2016년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2018년까지 설탕이 많이 함유된 음료에 설탕세를 매기겠다고 밝혔다.
이 계획에 따르면 100㎖ 당 설탕 5g이 함유된 음료는 1ℓ당 18펜스(약 300원)가 부과된다. 따라서 설탕 35g이 든 코카콜라 캔(330㎖) 1개에는 약 133원의 설탕세가 매겨진다.
영국의 설탕세 도입은 지난해 10월 보건부 산하 공중보건기구(PHE)가 설탕세 도입이 비만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결론을 내린 보고서가 바탕이 됐다. 이에 앞서 정크푸드 추방운동 등 건강한 식생활 캠페인을 하던 영국의 스타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도 9월부터 방송 ‘슈가 러시’(SUGAR RUSH)에 출연해 설탕 추방을 외쳤고, 자신의 레스토랑에서 가당 음료를 팔 때 세금을 붙이기로 했다.
영국에 앞서 멕시코는 설탕이 든 음료수에 설탕세 10%를 부과했더니 음료수 매출은 12% 급감한 반면 생수 매출이 급증했다. 프랑스에서는 음료수에 세금을 매긴 첫해에 판매량이 3% 감소했다.
유엔 전문기구인 세계보건기구(WHO)는 각국 정부보다 설탕에 더욱 강경한 입장이다.
WHO는 지난 2014년 3월에 천연 당을 제외한 첨가당(added sugar)의 1일 섭취량을 현재 전체 섭취 열량의 10% 수준에서 5%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는 새로운 권고안을 내놓은 것을 비롯해 설탕과의 전쟁을 계속 벌이고 있다.
WHO는 지난해 3월 발표한 권고안에서도 성인과 어린이가 현재 매일 섭취하는 당분에서 10% 정도를 줄여야 한다고 제시했다. WHO의 하루 설탕 섭취 권장량은 티스푼 6개 분량인 25g이다.
WHO는 많은 설탕이 음식 제조과정에서 들어간다며 숟가락 1술 분량의 토마토케첩에는 설탕 4g, 음료수 1캔에는 40g 이상의 설탕이 들어있다고 밝혔다.
WHO를 비롯해 전문가들이 비만의 원인인 설탕을 줄여야 한다고 끊임없이 권고해왔지만 지금도 세계 각국의 마트 진열대는 각종 음료수로 그득하다.
이는 ‘달콤한 독약’인 설탕의 중독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코카콜라 등 대형 식품업체들의 강력한 로비 탓도 있다.
미국식품의약국(FDA)은 지난해 7월 24일 모든 식품에 첨가당 표시를 의무화하겠다는 행정예고를 발표했다.
FDA는 당시 식품의 영양성분표에 첨가당의 함량과 하루 표준섭취량의 몇 %를 차지하는지를 나타내는 1일기준치비율을 2018년까지 표시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FDA는 성인의 하루 첨가당 섭취 권장량을 WHO보다 완화된 50g으로 설정하기로 했다.
이에 미국 음료협회와 설탕협회, 옥수수정제협회 등 관련 업계는 당시 “제한된 과학적 증거”에 근거한 부당한 조치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런 미국 대기업들의 강력한 로비에 FDA의 첨가당 표시 의무제는 행정예고를 한 지 8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거의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식품 당국 관계자는 “미국은 정치적 로비가 강하기 때문에 행정예고는 됐지만, 실제 법제화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며 “과학적 측면에서도 첨가당만 구분해서 측정할 수 있는지와 관련한 논란도 있다”고 말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도 17일 코카콜라 등 음료수 업체들은 설탕세가 비만을 줄인다는 증거가 없으며 가격 인상으로 소비자의 부담만 는다며 오스본 장관의 설탕세 도입에 반발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2014년 미국에서 개봉해 반향을 일으킨 다큐멘터리 영화 ‘페드 업’(fed up)도 미국 영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가 주도한 비만퇴치 운동이 초기에는 음식물 섭취에 초점을 맞췄지만 업계의 로비에 따라 운동으로 칼로리를 소비하는 쪽으로 변질했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