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 운동과 여성혐오 변천사
“강남역 살해 사건에 대한 젊은 여성들의 추모 열기를 보면 삶에서 남녀평등을 자연스레 체험하고 배우는 새로운 유형의 ‘페미니스트 세대’가 탄생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부르지 않지만 그건 페미니즘이 너무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생각이 됐기 때문입니다.”(김금옥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추모 포스트잇 게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피해 경험 고백 등 강남역 살인 사건을 계기로 20·30 여성들의 추모 열기가 이어지자 전문가들은 이를 ‘3차 여성주의 운동’(The Third Wave)으로 규정했다. 남성을 적으로 규정하기보다 ‘함께 사회적 문제를 개선하자’고 이야기하는 것이 이전 여성주의 운동과 큰 차이라고 설명했다.
29일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 젊은 여성들의 움직임을 ‘공감하는 청중의 탄생’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1980년대 진보운동에서 파생된 성폭력 예방 운동이 1차 여성주의 운동(The First Wave), 1990년대 PC통신과 맞물려 전개된 성폭력 방지 운동이 2차 여성주의 운동(The Second Wave)이라면, 지금은 운동권이 아닌 일반 여성들이 스스로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형식”이라며 “남성에게도 현재의 어려움이 여성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 때문이라고 말을 걸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간 우리나라의 여성주의 운동은 여성 혐오 사건의 반작용으로 확산됐다. 1986년 서울대 의류학과 4학년 권인숙씨가 위장 취업 등의 혐의로 문귀동 부천경찰서 경장에게 조사받던 중 성 고문을 당한 사건이 여성주의 운동 확산의 계기다.
1980년대 후반부터 한국성폭력상담소, 여성민우회, 여성의 전화 등 주류 여성 단체들이 설립됐다. 2000년 여성부가 생겼고, 같은 해 군산 개복동 화재 사건 등으로 성매매 종사 여성들의 현실이 드러나면서 성매매방지법 제정운동이 전개됐다. 2005년에는 호주제가 폐지됐다.
여성 혐오 문제는 군 가산점이 폐지되면서 본격화됐다. 이화여대 졸업생과 연세대 남성 장애인의 헌법소원에 대해 1999년 12월 헌법재판소는 군필자 채용 시 만점의 5% 내에서 가산점을 주도록 한 ‘제대군인 지원에 관한 법률 8조 1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후 일부 남성들은 여성에게 화살을 돌렸다.
여성 혐오 정서는 2000년대 중반부터 ‘~녀(女)’라는 단어로 표출됐다. 2005년 6월 서울 지하철 2호선에 탑승한 한 여성이 애완견의 설사를 치우지 않고 내렸다. 인터넷에는 ‘개똥녀’라는 표현과 함께 이 여성의 사진이 빠르게 퍼졌다. 이후 된장녀, 신상녀, 루저녀, 김여사 등 여성 비하 발언이 일상화됐고 2010년대에는 ‘김치녀’가 널리 쓰였다. 2010년대에는 자기 자식만 귀하게 여기는 엄마를 일컫는 ‘맘충(蟲)’이라는 단어도 등장했다.
여성 혐오를 주도하는 ‘일베’(인터넷카페 일간베스트)에 대항하기 위해 ‘메갈리아’가 등장했고, 미러링(남자들이 하는 방식을 그대로 따라하기)을 통해 ‘한남충’(벌레 같은 한국 남성), ‘씹치남’(찌질한 남성) 등의 여성 혐오 행동에 반격하기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2016-05-30 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