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에 빠진 대한민국] “돈·권력의 시대… 약자에 분노 표출”

[혐오에 빠진 대한민국] “돈·권력의 시대… 약자에 분노 표출”

입력 2016-05-29 22:44
수정 2016-05-29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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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남성들의 ‘여성혐오’ 왜

사회 양극화·수직서열 병리 팽배
남성들의 위기감 비뚤어진 표출
인간평등 교육이 갈등 해법


“강남역 사건은 돈의 힘과 권력으로 가난한 사람이나 약자를 억압하는 것이 당연한 상황에서 완력이라도 써서 나보다 못한 사람을 눌러도 괜찮다는 생각이 분노의 표출로 이어진 것이다. 이런 분노가 정신질환자에게만 나타날까? 이 의문이 젊은 여성들을 강남역으로 불러 모았다.”(장필화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

“강남역 사건의 피해자는 여성이지만 큰 맥락에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이다. 장애인도 가난한 사람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 통상 약자는 자신을 억압하는 강자에게 분노를 표출하지만 사회의 양극화로 약자가 약자에게 폭력을 가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적어도 ‘관용’이 핵심적인 사회적 가치가 돼야 한다.”(김문조 고려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지난 17일 강남역 인근에서 젊은 여성이 살해당한 사건 이후 5000장 이상의 추모 메시지가 지하철 2호선 강남역 10번 출구에 붙었다. 대부분이 여성 혐오에 대한 불안을 담고 있었고 이는 일부 남성의 불만으로 이어지며 갈등을 빚었다. 여성이 당하는 일상의 폭력이나 남성 역차별론과 같은 제2, 제3의 논란으로 번졌다.

서울신문은 29일 10명의 교수·연구원을 만나 ‘여성 혐오 및 혐오 사회’에 대한 담론을 정리하고 향후 나아갈 바를 물었다. 전문가들은 사실상 여성 혐오를 다루는 첫 담론의 장이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성공 지향적인 삶, 체면을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 여권신장에 대한 남성의 거부감 등을 혐오 사회의 주요 원인으로 분석했고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평등 교육’을 제시했다.

허성우 성공회대 여성학과 교수는 “선진국이 이미 경험한 여성 혐오 논란이 우리나라에선 이제야 처음 공론화됐다”며 “일부 남성은 ‘여성 혐오’에 대한 논의 자체를 혐오하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는 더 심도 있게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이동우 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허약한 자존감 때문에 외모, 수입 등을 기준으로 수직서열을 매기는 병리가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다”며 “남녀 간에도 순위를 매기는 과정에서 여성 혐오 문제가 더 증폭되는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수아 서울대 기초교육원 교수는 “남성 중심 사회에서 ‘남성성’을 증명하는 방법 중 하나는 여성을 차지하는 것인데 이에 실패하면 ‘차였다, 나쁜 여자에게 당했다’는 식으로 그 책임을 여성에게 돌리곤 한다”며 “이런 관점에서 여성 혐오의 핵심은 ‘여성을 자율성이 없는 대상’으로 보는 남성의 시각에 있다”고 분석했다.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사회학과 교수는 “군 가산점이 역차별론의 대표격인데 역차별이라는 말이 유의미하려면 남녀 비율이 각각 50% 정도는 돼야 한다”며 “기존의 차별을 줄이기 위한 제도 변경을 역차별로 말할 수는 없다”고 전했다.

김진욱 서강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번에는 남녀 갈등으로 불거졌지만 혐오 사회에서 앞으로 어떤 갈등이 어떻게 터질지 상상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모든 혐오를 법으로 막을 수 없기 때문에 배출구 역할을 할 시스템이 필요하며 교육으로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을 어릴 때부터 깨닫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강신 기자 xin@seoul.co.kr
2016-05-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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