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의 손길 속 삶과 죽음을 되짚다

거장의 손길 속 삶과 죽음을 되짚다

윤수경 기자
윤수경 기자
입력 2025-04-14 00:01
수정 2025-04-14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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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조각 거장 ‘론 뮤익’ 회고전

국립현대미술관서 ‘亞 최대’ 전시
30여년 시기별 주요 작품 등 소개
거대한 해골 쌓아놓은 ‘매스’ 압권
“인간 생사의 의미 찾는 시간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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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개막한 ‘론 뮤익 회고전’을 찾은 관람객이 대표 전시작 ‘매스’를 둘러보고 있다. 서울관의 높은 층고를 활용한 이 작품은 대형 머리뼈들이 쏟아져 내리는 듯한 모습을 연출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11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개막한 ‘론 뮤익 회고전’을 찾은 관람객이 대표 전시작 ‘매스’를 둘러보고 있다. 서울관의 높은 층고를 활용한 이 작품은 대형 머리뼈들이 쏟아져 내리는 듯한 모습을 연출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인체 조각의 눈빛과 자세만으로도 관람객의 공명을 끌어내는, 현대 조각의 거장 론 뮤익(67·호주)의 전시가 찾아왔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아시아 최대 규모로 ‘론 뮤익’의 회고전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서는 지난 30여년간 활동해 온 작가의 시기별 주요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정교함과 완벽함으로 점철된 뮤익의 작업은 수개월, 때로는 수년이 걸리기 때문에 전 세계 현존하는 작품이 50여점에 불과하다. 이번 전시에는 이 중 조각 10점을 비롯해 고티에 드블롱드가 찍은 스튜디오 사진 연작, 다큐멘터리 필름을 포함해 모두 24점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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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을 뒤로 젖힌 채 무거운 나뭇가지를 들고 우뚝 서 있는 여성의 모습을 구현한 ‘나뭇가지를 든 여인’.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등을 뒤로 젖힌 채 무거운 나뭇가지를 들고 우뚝 서 있는 여성의 모습을 구현한 ‘나뭇가지를 든 여인’.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홍이지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크기와 운송의 제약으로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그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개인전 형식으로 선보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며 “이번 회고전은 그의 주요 창작 시기별 작품을 한곳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100개의 대형 두개골 형상을 쌓아 올린 작품인 ‘매스’는 항공 운송이 불가능해 2개월간 선박으로 옮기는 과정을 거쳤다고 미술관은 설명했다.

전시장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작품은 작가의 자화상인 ‘마스크Ⅱ’다. 실제 크기의 4배가량 되는 조각은 입술의 주름, 볼의 모공은 물론 파랗게 깎인 턱수염 한 올 한 올까지 재현해 냈다. 조각의 앞면은 바닥에 한쪽 볼을 붙이고 잠이 든 것처럼 보이는 남성의 얼굴을 그려 냈다면 뒷면은 텅 비어 있다. 진짜처럼 보이던 남성의 얼굴을 바라보던 관람객은 뒷면을 통해 그 얼굴이 가면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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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서’는 거대한 인물과 함께 이부자리, 베개까지 포함한 대형 조각이다. 작품 속 인물은 관람객이 보이지 않는 듯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침대에서’는 거대한 인물과 함께 이부자리, 베개까지 포함한 대형 조각이다. 작품 속 인물은 관람객이 보이지 않는 듯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하이퍼리얼리즘의 정점을 보이는 작가지만, 그의 작품은 실제 크기로 제작되지 않고 항상 과장되게 크거나 작다. 베개에 기댄 채 이부자리에 누워 있는 여성을 묘사한 작품인 ‘침대에서’와 수영복을 입은 사춘기 소녀가 벽에 기댄 형상을 한 ‘유령’은 유독 인물의 크기를 확대해 그들의 감정에 몰입하게 하는 작품이다. ‘침대에서’의 여성은 한 손을 턱에 올린 채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그가 있는 곳은 포근한 이불 속이지만, 어쩐지 그의 표정에서는 미세한 긴장감과 우울이 느껴진다. 무언가를 꿰뚫고 있는 듯한 소녀의 표정은 기존에 보지 못하던 것을 새롭게 보게 된 듯하다.

반면 ‘치킨/맨’, ‘나뭇가지를 든 여인’, ‘쇼핑하는 여인’, ‘젊은 연인’ 등의 작품은 실제 모습보다 작게 만들어졌다. ‘치킨/맨’은 굽은 어깨, 좁은 등에 넓게 퍼진 검버섯, 처진 살과 주름, 눈썹까지 센 노인을 묘사한다. 근육이 다 빠진 팔이지만, 꽉 쥔 두 주먹에서만큼은 결기가 느껴진다. 그는 꼿꼿하게 서 있는 암탉 한 마리와 마주하고 있는데, 두 존재 사이의 팽팽한 긴장은 날숨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이 작품이 뉴질랜드를 벗어나 전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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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Ⅱ’는 마치 바닥에 기대 잠이 든 것 같은 남성의 얼굴을 극사실주의적으로 표현했지만 뒤쪽은 가면처럼 텅 비어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마스크Ⅱ’는 마치 바닥에 기대 잠이 든 것 같은 남성의 얼굴을 극사실주의적으로 표현했지만 뒤쪽은 가면처럼 텅 비어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쇼핑하는 여인’은 아기 띠로 아기를 안고 두 손에는 묵직한 비닐들을 들고 있는 모습을 한 여인을 묘사한다. 여성의 커다란 외투에 쏙 들어가 있는 아기는 여성의 시선을 붙잡으려는 듯 올려다보지만, 여성은 텅 빈 눈으로 생각에 잠겨 있다.

전시의 백미는 ‘매스’다. 2017년 호주 멜버른의 빅토리아 국립미술관 의뢰로 제작된 ‘매스’는 전시 공간마다 다르게 구성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전시장의 높은 층고에 맞춰 쌓여 있는 머리뼈들이 무너지는 형태로 구성됐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현대 조각 거장의 작품들 속에서 인간의 삶과 죽음의 의미를 사색하고 진정한 의미를 찾는 경험의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전시는 오는 7월 13일까지.
2025-04-14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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