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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치료 의지·긍정적 생각도 좋은 약

우울증 치료 의지·긍정적 생각도 좋은 약

입력 2014-05-12 00:00
업데이트 2014-05-12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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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약보다 마음’

8년 전 남편과 사별한 이모(62)씨는 극심한 우울증으로 수년째 항우울제를 처방받아 복용하고 있다. 처음 항우울제를 먹었을 때는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삶의 의욕도 생겼다. 그러나 자녀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사소한 말다툼이 생길 때마다 우울증은 어김없이 다시 찾아왔다. 의사는 평생 약을 먹어도 괜찮다고 했지만 ‘이렇게 계속 약을 먹어도 될까’하는 불안감이 더해져 이씨는 여전히 우울하다.


공황장애, 불안장애, 강박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 현대인이 앓고 있는 정신질환은 다양하지만 병원에서는 처방하는 약물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대개 향정신성 약물인 항우울제와 항불안제, 여기에 보조적 수단으로 수면제를 쓰기도 한다. 몸의 병보다 더 복잡한 마음의 병이 어떻게 이런 약물들로만 치료될 수 있는지 어찌 보면 의아한 일이다. 심지어 항우울제는 대상포진 환자에게도 쓰인다. 대상포진 후 신경통을 앓는 환자들에게서 수면장애, 피로, 우울증 등이 동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울감을 동반하는 대부분의 질환에 항우울제가 쓰이고 있는 셈이다.

항우울제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현재 각 나라들에서 가장 많이 처방하고 있는 것은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다. 쉽게 말해 ‘행복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두뇌 속 신경전달 물질 세로토닌의 양을 늘려 불안과 우울을 치료하는 약물이다. 1970년대 미국의 일라이릴리사에 의해 개발돼 ‘행복을 가져다주는 기적의 알약’이라는 별명까지 얻은 항우울제 ‘프로작’이 대표적이다.

세로토닌은 기분이나 수면, 식욕 등을 조절하며 영양소 섭취를 통해 신경조직과 뇌에서 생성된다. 이 물질이 부족해 두뇌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 우울감과 불안, 불면증, 두통 등이 나타난다. 활동을 마친 세로토닌은 자신을 방출한 신경세포로 재흡수되는데, 이때 재흡수 과정을 차단해 두뇌 속 세로토닌 농도를 유지시켜주는 것이 프로작과 같은 약의 원리다. 인공적으로 행복감을 만들어주는 약인 셈이다. 해마다 수십만장의 처방전이 쓰여지고 있지만 효능과 안전성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다.

만성두통이 있을 때 진통제를 먹으면 통증은 금방 가라앉지만 수일 내에 다시 머리가 아파 오는 것처럼 우울증도 약에만 의존해서는 완치가 어렵다. 마음의 병은 약물치료만큼 마음의 치료가 중요하다.

‘항상 피곤하다’, ‘식욕이 없다’, ‘잠들지 못한다’, ‘거의 매일 우울하다’, 집중력이 떨어졌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정신과 의사들은 대개 이 같은 미국 정신과협회의 진단기준(DSM-IV-TR)에 따라 우울증을 진단한다. 이 중 4개 이상의 증상이 연속 2주 동안 나타나는 경우 우울증으로 본다. 우울증 진단기준에 열거된 증상들은 우리 몸이 보내는 경고이기도 하다. 몸과 마음이 모두 피곤하니 좀 쉬어달라는 얘기다.

이런 경고신호를 무시하며 약물치료만 믿고 몸과 마음을 계속 혹사시킨다면 우울증은 십중팔구 재발한다. 첫 발병 후 두 번째 우울증을 경험할 확률은 50~75%, 두 번째 우울증을 경험한 사람이 세 번째 우울증에 걸릴 확률은 70%, 네 번째는 90%에 이른다. 재발할수록 증상은 더 심해진다.

약물치료만큼 심리 치료도 중요하다는 점을 증명한 임상실험도 있다. 미국 피츠버그대학 메디컬센터는 우울증 진단을 받은 60세 이상 노인을 4그룹으로 나눠 A그룹에게는 항우울제만을 투여하고 B그룹에게는 매달 한 번씩 심리요법만을 실시하는 한편 C그룹에게는 이 두 가지를 병행하고 D그룹에겐 가짜약만을 먹게 했다. 그 결과 재발률은 D그룹 90%, A그룹 57%, B그룹 36%, C그룹 20% 순으로 나타났다.

때로는 내 병을 치료하겠다는 의지가 병을 호전시키기도 한다. 독일의사협회의 플라시보 의학 보고서에 따르면 우울증 환자에게 아무 효과가 없는 가짜약을 투여한 결과 30%에서 항우울제를 먹은 것과 유사한 효과가 나타났다. 환자와 의사의 신뢰관계, 증상의 중증도 등 다양한 요인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지만, 적극적인 의지가 치료약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은 우울증에 걸릴 수밖에 없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자신을 결점 많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평가절하하고, 패배감과 박탈감에 휩싸여 살면서 항상 실패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자신을 믿지 못해 무슨 일이 생겨도 ‘내게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자신을 탓한다. 우울증에 잘 걸리는 사람 중에는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사람보다 융통성이 없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성실하고 꼼꼼하며 화를 잘 못 내는 부류가 많다고 한다. 어려운 부탁도 거절하지 못하고 적당히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히며 그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를 풀지 못하고 쌓아만 두는 스타일이다.

우울증을 고치겠다고 무작정 긍정적 생각만 할 필요는 없다. 일반 사람들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쉬어도 괜찮아’, ‘넌 그대로도 괜찮은 사람이야’ ‘힘들면 적당히 하자’라는 마음가짐 정도를 갖는 게 좋다. 대인관계에서 생긴 우울증이라면 한동안 그 사람과 거리를 두고, 도저히 거리를 둘 수 없는 가족이나 직장동료라면 그 사람이 하는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언어의 칼날’도 칼날이다. 맞서기가 고달프다면 찔리기 전에 피하는 게 상책이다. 실패한 일은 더 이상 생각하지 말고 좋아하는 다른 일을 찾는 게 좋다. 좋아하고 자신 있는 일을 하게 되면 자신에 대한 생각도 긍정적으로 바뀌게 된다. 어쩔 수 없이 지나간 것은 그냥 내버려 둘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

채정호 가톨릭대학교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울한 사람은 새까만 색안경을 쓴 채로 인생을 바라본다”면서 “정신치료는 여기에 장밋빛 색안경을 씌워주는 게 아니라 까만 색안경을 치워버리고 세상이 좋든 나쁘든 정확하게 바라보게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2014-05-12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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