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학술대회마저 ‘영어’ 진행…우리말 여전히 ‘찬밥’ 대우

한국학 학술대회마저 ‘영어’ 진행…우리말 여전히 ‘찬밥’ 대우

입력 2017-10-11 22:50
업데이트 2017-10-12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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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국제학술대회 현주소

외국인 학자들 한국어 잘 못해
영어로 주제 발표하고 토론하면
한국어로 통역하는 형태로 개최


지난해 한국학 진흥예산 119억
정부지원도 中·日에 비해 태부족
예산 확대 등 관심·지원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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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6일 서울 고려대에서 한국국제교류재단(KF)과 북미아시아학회,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이 함께 개최한 ‘KF 스페셜 라운드테이블’ 행사에서 ‘한국학의 과거,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참가자들이 발표를 하고 있다. 이날 모든 발표는 영어로 진행됐고 행사명조차 우리말이 아닌 영어 번역투였다. 한국국제교류재단 제공
지난 6월 26일 서울 고려대에서 한국국제교류재단(KF)과 북미아시아학회,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이 함께 개최한 ‘KF 스페셜 라운드테이블’ 행사에서 ‘한국학의 과거,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참가자들이 발표를 하고 있다. 이날 모든 발표는 영어로 진행됐고 행사명조차 우리말이 아닌 영어 번역투였다.
한국국제교류재단 제공
한국의 역사·문화·예술·한글 등 ‘한국학’을 주제로 하는 국제학술대회 상당수가 우리말이 아닌 영어로 진행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와 가까운 중국어와 일본어는 물론 몽골어 관련 학술대회도 해당 국가 언어가 주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정 국가의 언어와 문화를 주제로 한 학술 논의가 해당 국가 언어로 진행하지 않는 것은 이례적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리말의 세계적 위상을 한층 더 높이기 위해서는 한국어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더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11일 한국학·한국어 관련 단체 등에 따르면 한국학중앙연구원이 2년에 한 번씩 개최하는 ‘세계한국학대회’는 현재 영어와 한국어 2개 국어로 진행되고 있다. 연구원이 지난 8월 중부·동유럽, 중동, 중앙아시아 지역의 한국학 학자를 초청해 진행한 ‘2017 한국학국제학술회의’에서도 영어가 사용됐고, 우리말로 동시 통역이 이뤄졌다. 지난 6월 고려대에서 열린 ‘2017 아시아학회 아시아학술대회’에서 해외의 저명한 한국학자 6명이 한국학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논하는 행사 역시 영어로 진행됐다.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 언어 등과 관련한 학술대회에서조차 우리말이 단일 공식 언어로 사용되지 않는 이유는 일차적으로 외국인 학자들의 한국어 구사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는 한국학에 대한 연구의 역사가 다른 나라에 비해 짧기 때문이라는 게 학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또 학자들의 관심이 학문보다 이른바 ‘한류’로 대변되는 문화에 치우치면서 한국학이 지역학 중심으로 발전하게 됐다는 진단도 있다.

국내에서 ‘박노자’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블라디미르 티호노프 오슬로대 교수는 “한국학을 연구한 외국인 학자들이 한국어로 주제 발표를 하지 않는 이유는 한국어 작문에 능하지 않기 때문”이라면서 “외국인 한국학 학도들이 국내에 장기간 체류하면서 작문을 비롯해 세미나 발표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헝가리 엘테대 한국학과에서 4년간 강의를 했던 장두식 단국대 초빙교수는 “세계몽골학대회에서도 학자들이 몽골어로 주제 발표를 한다”면서 “한국학 국제학술대회에서 한국어를 단일 공식 언어로 지정해 쓰게 하면 외국인 학자들도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배우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가 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부실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국제교류재단에 따르면 한국어 및 한국학 진흥 관련 예산으로 지난해 119억원이 편성됐다. 반면 가까운 중국은 관련 예산을 약 3563억원(3억 1400만 달러), 일본은 약 717억원(71억엔)을 투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제한국어교육학회장인 이정희 경희대 교수는 “한 국가에 대한 연구는 그 기반을 언어에 둬야 다른 분야의 연구에서도 질적 발전을 이뤄낼 수 있다”면서 “정부가 관심을 갖고 관련 예산을 늘리는 등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2017-10-12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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