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매매 가능한 종이라더니…CITES 확인결과 ‘매매금지종’ 등록
멸종위기 야생동물 보호협약(CITES) 가입국인 한국 정부가 상업거래가 불가능한 멸종위기종 1급 코끼리의 용도를 임의로 바꿔 불법 수출입을 승인하고 국제기구에 허위로 보고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2003년 라오스에서 반입한 코끼리의 CITES 출처가 야생종을 뜻하는 W(위 빨간 네모)로 돼 있다. 2011년 일본 수출 당시 C(아래 빨간 네모)로 바뀌어 있다.연합뉴스

2003년 라오스에 국내로 반입될 때 한국 정부는 상업적인 거래가 가능한 D종(빨간 네모)으로 코끼리 수입허가를 내줬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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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CITES(www.cites.org)의 멸종위기종 동물 국제거래 통계를 확인한 결과 2003년 라오스에서 한국으로 ‘임차’ 형식으로 반입된 멸종위기종 1급 코끼리 10마리(이후 1마리 폐사)의 출처는 상업거래가 불가능한 ‘야생종(W)’, 용도는 공연용(Q)이었다.
CITES는 멸종위기종의 보호를 위해 해당 동물의 출처와 용도를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멸종위기종의 태생을 알 수 있는 출처는 야생종, 목장종(R), 상업목적으로 인공증식된 개체(번식종·D) 등으로 나뉜다.
사용 용도는 상업용(T), 공연용(Q), 연구용(S), 의학용(M) 등으로 구분된다.
하지만 당시 국내 업체 ‘코끼리월드’가 라오스에서 코끼리를 유상으로 빌려오며 환경부 산하 한강유역환경청으로부터 받은 수입허가서에는 코끼리 출처가 야생종이 아닌 ‘번식종(D)’으로 명시돼 있다.
CITES에 코끼리 출처가 야생종이라고 등록된 것은, 라오스에서 반입된 코끼리가 상업거래가 가능한 번식종이라고 말해온 한강유역환경청과 환경부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따라서 실제 거래와 달리 코끼리 출처를 허위로 CITES에 보고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1993년 CITES에 가입한 우리나라는 매년 멸종위기종의 국제거래 내역을 CITES 사무국에 사후 보고해야 한다.
CITES 협약은 원칙적으로 멸종위기종 1급 동물의 상업 목적 거래를 금지한다. 동물 출처가 번식종이거나 학술연구 목적일 때만 예외적으로 매매를 허용하고 있다.
1급 동물 중 번식종의 수출입은 CITES 사무국에 등록된 시설에서 사육된 동물로만 제한되는 등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다.
CITES 통계를 검색한 결과 1975년부터 2014년까지 약 40년간 멸종위기종 1급인 아시아 코끼리의 국제거래 중 출처가 번식종인 경우는 한 번도 없었을 정도다.
이 때문에 동물보호단체는 당시 CITES 미가입국인 라오스에서 코끼리를 들여온 ‘코끼리월드’가 당시 환경 당국과 유착·공모해 수입허가 서류를 조작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 한강유역환경청의 ‘고무줄’ 출처·용도 변경
코끼리가 국내 반입된 이후의 거래 과정도 문제다.
코끼리월드는 1년 만에 석연치 않은 영구기증서 제출로 코끼리 임차인에서 소유자로 탈바꿈했다.
2010년에는 새끼 2마리를 얻어 모두 11마리의 코끼리를 보유한 코끼리월드는 2011년 광주 우치동물원에 코끼리 2마리를, 일본 후지사파리 파크에 9마리(새끼 1마리 포함)를 각각 팔았다.
한강유역환경청은 CITES 등록내용과 달리 이번에도 상업거래가 가능한 번식종이라는 이유로 코끼리 일본 수출을 허가했다.
하지만 한강유역환경청은 발행한 수출허가서에서 기재된 코끼리 성체 8마리의 출처는 번식종이 아닌 ‘비상업용 인공사육종(C)’으로, 용도는 ‘공연용’에서 ‘연구용’으로 또 한 번 바뀌었다.
멸종위기종 동물의 태생인 출처의 잦은 변경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 동물업계의 반응이다.
더군다나 한강유역환경청은 필수절차인 용도변경도 거치지 않은 채 코끼리월드의 코끼리 수출을 허가했다. 한강유역환경청은 최근 이러한 수출허가 과정에 잘못이 있었음을 인정한 상태다.
애초 상업매매가 불가능한 멸종위기종을 반입한 코끼리월드는 출처가 야생종에서 번식종으로 ‘신분세탁’을 거친 코끼리를 일본에 불법으로 팔았고 이를 감시해야 할 한국 정부는 공모 의혹을 받는 형국이다.
코끼리 수출입허가 과정에서 한강유역환경청과 환경부의 서류 조작과 허위 보고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CITES 협약 위반은 물론 정부의 도덕성에 치명타가 될 전망이다.
CITES 사무국은 협약을 어긴 불법 동물거래 시 협약 당사국에 국내법에 따라 동물 몰수를 포함한 시정조치를 통보할 수 있다.
코끼리 거래가 불법으로 확인되면 한국과 일본 모두에 파장이 예상된다.
한강유역환경청과 환경부 관계자는 “실제 허가사항과 CITES 보고내용이 다르다는 것은 금시초문이라 당황스럽다”며 “즉각 사실관계를 확인해보겠다”고 해명했다.
심인섭 부산동물자유연대 사무처장은 “CITES 사후 보고와 다르게 수출입 허가가 이뤄진 것은 충격 그 자체”라며 “코끼리월드의 편법적인 코끼리 수출입 과정은 공무원의 공모나 유착 없이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로 보여 사법기관에 수사를 의뢰해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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