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발견된 근현대사 인물들의 삶] 고종 때 외교 실세 손탁, 1922년 佛서 생 마감

[새롭게 발견된 근현대사 인물들의 삶] 고종 때 외교 실세 손탁, 1922년 佛서 생 마감

오상도 기자
입력 2015-09-16 00:06
수정 2015-09-16 03:3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왕 신임에 호텔 영업… 배일 운동 활용

구한말 조선 외교사에 한 획을 그은 고종의 ‘황실 전례관’ 마리 앙트와네트 손탁(1838~1922)이 프랑스 칸에서 생을 마감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일합병을 1년 앞둔 1909년 홀연히 조선을 떠난 손탁의 마지막 삶은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전례관은 황실의 음식과 의전을 담당하는 직책이다.

구한말 고종의 ‘황실 전례관’으로 일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독일인 마리 앙트와네트 손탁(오른쪽 두 번째). 사진은 주독 한국문화원 발행 ‘한국문화’에 게재된 손탁과 동료들의 모습이다.  베를린 연합뉴스
구한말 고종의 ‘황실 전례관’으로 일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독일인 마리 앙트와네트 손탁(오른쪽 두 번째). 사진은 주독 한국문화원 발행 ‘한국문화’에 게재된 손탁과 동료들의 모습이다.
베를린 연합뉴스
김영자 독일 레겐스부르크대 박사는 최근 손탁의 삶이 기술된 논문과 저서를 읽고 직접 칸 답사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밝혀냈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그의 사망신고서와 칸 시립묘지의 묘비까지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앞서 손탁과 비슷한 시기에 조선 황실에서 일했던 독일여성 엠마 크뢰벨은 저서 ‘나는 어떻게 조선 황실에 오게 되었나’에서 손탁이 여생을 보내려고 미리 칸에 집을 마련했다고 기록했다. 김 박사는 이 저서의 한글판 역자다. 그는 “1922년 7월 7일 오전 8시 칸에 있는 자택에서 (손탁이) 세상을 떠났다”고 소개했다.

손탁은 당시 독일령이던 알자스로렌 출신으로, 1885년 러시아 공사 베베르를 따라 조선에 첫발을 디뎠다. 베베르의 추천으로 궁내부 소속의 관원이 됐고 이후 외국인 접대를 맡았다. 용모가 아름답고 태도가 세련돼 서양 외교관들 사이에선 ‘사교계의 여왕’으로 불렸다. 또 고종에게 커피 맛을 알려주고 명성황후에게 서양식 화장술을 가르친 주인공으로 알려졌다. 그는 고종으로부터 왕실 사저를 하사받아 서양식 사교장(손탁호텔)을 꾸몄다. 이곳은 배일 운동의 근거지로 활용됐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2015-09-16 29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가수 유승준의 한국비자발급 허용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가수 유승준이 한국 입국비자 발급을 거부한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낸 세 번째 소송에서도 승소했다. 다만 이전처럼 주로스앤젤레스(LA) 총영사관이 법원 판단을 따르지 않고 비자 발급을 거부할 경우 한국 입국은 여전히 어려울 수 있다. 유승준의 한국입국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1. 허용해선 안된다
2. 이젠 허용해도 된다
3. 관심없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