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무실 승선명부, 위험천만 레이스…낚싯배 출조 위험 곳곳에

유명무실 승선명부, 위험천만 레이스…낚싯배 출조 위험 곳곳에

입력 2015-09-09 14:10
업데이트 2015-09-09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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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선인 명부 확인 안 해…”명부 올리지 않으면 보험에 불이익”

15년차 낚시광 하윤호(46·가명)씨는 가을 바람이 불면 부산 다대포 앞바다를 찾는다.

다대포에서 배로 20∼30분 가면 나오는 나무섬, 형제섬 주변은 몸길이 1m가 넘는 대물들이 찌릿한 손맛을 안겨주는 낚시터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맘때쯤이면 고급어종인 참돔을 비롯 대형어종인 방어, 부시리와 온갖 잡어들이 올라온다.

◇ “유명무실 승선명부”

윤호 씨는 첫배가 출항하기 30분 전인 오전 3시 30분 다대포 A 낚시점에 도착한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출조 명부라 불리는 승선원 명부 작성.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앞 6자리, 행정구역상 동까지만 표기한 주소를 적는다.

잘못 적어도 확인하지 않기 때문에 볼펜으로 쓰다가 틀리면 굳이 다시 쓰지 않는다. 일행들 것도 대신 쓴다.

11명 것을 대신 쓴 적도 있는데 주소를 모르면 행정구역에 맞지 않지만 생각나는 데로 구색만 맞춰 적었다.

이제껏 한 번도 문제 된 적이 없다.

작성된 명부는 선장이 도장을 찍어 테이블에 두면 어촌계의 한 사람이 낚시점을 돌며 출조 명부를 걷어간다.

해경으로부터 신고 접수 대행 권한을 받은 사람이다. 해양경비안전서의 인력이 미치지 못하는 작은 항구는 이렇게 관리된다. 이 민간인은 어선에 누가 탔는지 확인하지 않는다. 하윤호 씨 기억에는 해경이 검사하는 곳도 마찬가지다.

낚시업계 전문가들은 명부관리의 구멍이 심각한 문제를 가져온다고 지적한다.

20년 넘게 배를 몰았다는 최재룡(60·가명) 선장은 “승선인원을 유일하게 점검할 수 있는 서류인데 조작이 너무 쉽다”면서 “GPS가 없던 시절에는 이 승선원 명부 제출 횟수를 늘려 면세유를 불법으로 타내던 시절도 있었다”고 말했다.

최 선장은 또 “승객들은 출조 명부를 허투루 적으면 불이익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사람을 많이 태우려는 선장을 오히려 감시해야 한다”면서 “사고가 나면 보험사에서 출조 명부를 가장 중요하게 보는데 명부에 없는 사람을 보험사가 배상하려고 하겠느냐”고 지적했다.

◇ “위험천만 포인트 선점 레이스”

윤호 씨는 첫 갯바위 낚시를 나갔을 때 오금이 저리던 순간을 기억한다.

첫 출조 시각 펼쳐지는 낚싯배들의 위험천만 레이스를 겪었을 때였다.

갯바위는 너르지만 소위 ‘낚싯대만 내리면 고기가 잡힌다’는 포인트는 몇 없다. 한 포인트에서 낚시를 할 수 있는 인원도 고작 해야 2∼3명이다.

포인트 선점은 하루의 성과를 결정한다. 그래서 윤호 씨도 어쩔 수 없이 선장을 독촉하게 된다.

’포인트를 못 잡으면 낚시점을 바꾸겠다’는 엄포를 놓기도 하는데 대개는 선장이 알아서 포인트 선점 경쟁을 한다.

과속하는 낚싯배가 추돌할 정도로 가까이 붙었다가 떨어지고 파도에 선체가 출렁여 허리가 아플 정도지만 배에 탄 사람들은 아무도 이를 제지하지 않는다.

10여 년 전 다대포에서 포인트 선점 레이스를 하던 K 호가 사고가 나 7명이 부상하는 일이 있었지만, 위험하다고 생각한 건 그때뿐이었다.

포인트 경쟁은 선상 낚싯배도 마찬가지다. 어군탐지기를 이용해 바닷속을 비춰보면 물고기가 지나는 포인트가 몇 없어 선상 낚싯배들은 자기들만의 속도 경쟁을 펼친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다대포 인근 해경 출장소의 한 관계자는 “첫 출조 시각 배들이 과속하는 등 문제가 있다는 것은 어느 항구나 비슷하게 일어나는 일”이라면서 “다대포는 최근 몇 년 사이 출조 인구가 많이 줄면서 가을 피크 시즌 주말을 제외하고는 거의 이런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문제가 있는지 확인해 보겠다”고 말했다.

◇ “절벽에서 아찔한 낚시”

다대항에서 18㎞ 떨어진 형제섬에 도착하면 윤호 씨는 바짝 긴장한다.

낚싯배가 배를 대는 순간이다. 갯바위에는 계류장이 없다.

배 앞에 덧댄 타이어를 갯바위에 접촉한 뒤 승선객을 내려주는데 이때 사고가 자주 난다.

엔진출력을 이용해 타이어가 갯바위에서 딱 붙어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게 유일한 안전장치인데 갑자기 파도가 치면 틈이 생기기도 한다.

특히 첫 출조 시간인 새벽 4시는 갯바위가 온통 깜깜하다. 삼 년 전 윤호 씨도 어둠 속에서 갯바위에 내리다가 발을 헛디뎌 발목 인대가 늘어졌다.

윤호 씨는 자신의 낚시 여행이 가족에게 환영받지 못한다고 말한다.

몇 년 전 가족들을 데리고 낚시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윤호 씨가 갯바위 끝 절벽 같은 아슬아슬한 지점에 매달려 낚싯대를 드리우는 것을 보고 가족들이 줄곧 낚시를 반대한다고 한다.

갯바위 사망사고 소식도 심심치 않게 뉴스로 접하지만 윤호 씨는 낚시가 주는 ‘손맛’을 보면 안전문제는 잊게 된다고 토로했다.

A 낚시점 업주는 “1년에 손님 1∼2명은 갯바위에서 바다로 빠져 죽다가 살아났다는 말을 하곤 한다”고 전했다.

최재룡 선장은 낚시꾼들의 구명조끼 미착용 문제를 지적했다.

최근 최 선장이 요금 55만원 짜리 선상낚시 요청이 들어와 손님 6명을 태운 적이 있는데 이들이 낚시에 방해된다며 구명조끼를 자꾸 벗어 던져 마찰을 빚은 적이 있다는 경험을 전했다.

최 선장은 “낚시인들은 구명조끼의 기능이 일부 있는 주머니 많은 낚시 조끼를 입고서 ‘구명조끼를 입었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낚시 조끼의 기능성은 알지만 구명조끼만 못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안전장비를 반드시 착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검사받을 때만 의무 장비 갖춰”

A 낚시점 B 선장은 일명 ‘월급쟁이 선장’이다.

정부가 10t 이하의 배를 모는 영세 어민을 도우려고 배를 낚시 어선으로 바꿀 수 있게 법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여행객모집 능력이 있는 ‘업자’들이 낚시점을 운영하고 어민 선장들은 월급쟁이나 ‘지입선장’을 한다. 제도적 취지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있는 부분이다.

B 선장은 1년에 1번 선박 점검이 나올 때만 낚시 어선이 갖춰야 할 필수 장비를 배에 가져다 놓는다고 실토한다.

배 조난 시 조명탄 역할을 하는 점화등, 의료함, 간이 화장실, 승선원수 130%에 해당하는 구명조끼 등이 필수 시설로 늘 배 안에 있어야 하는데 내부 공간이 좁아 이들 시설을 빼놓는다고 말했다.

B 선장은 “1t짜리 배의 경우 가로 1.5m 세로 4m가 고작이고 운항시간 20분 내외의 섬에만 다니는데 승선원수 130%에 해당하는 구명조끼랑 의료함, 점화등을 어떻게 다 들고 다닐 수 있겠느냐”면서 “승객의 활동 공간을 마련해 주려고 빼놓고 다닌다”고 말했다.

B 선장은 또 “점화등은 20만 원이 넘는 고가 장비인데 도난사건도 종종 있어서 선장들이 선실이 따로 없는 배에 비치한다는 이야기는 듣지도 못했다”며 항변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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