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자 가족과 동고동락 백순혁씨
“사흘을 생각하고 갔는데 그걸로는 마음의 빚을 덜 수 없겠더라고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했던 게 벌써 10개월째입니다.”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는 백순혁(오른쪽)씨.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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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16일, 광주에서 인테리어 업체를 운영하던 백씨는 진도에서 발생한 참사 소식을 들었다. 시시각각 인터넷으로 생중계되는 구조 상황을 지켜보며 애를 태웠다. “제주도에서 2~3년 일하면서 전남 목포, 부산과 제주를 오가는 배편을 많이 탔었어요. ‘내가 저 배에 탔을 수도 있겠구나’ ‘남의 일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해 7월 3일, 잠시 짬을 내 팽목항을 찾았다. 실종자 가족들은 뜬눈으로 수색 상황을 지켜보느라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해결하기 어려웠다. 이들을 위해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했다. “처음에는 ‘생일(7월 5일) 때까지만 있다 가자’는 마음이었어요. 근데 그렇게 되면 생색내는 것밖에 안 되겠더라고요. 마음의 짐을 벗어버릴 수 있을 때까지 떠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흘은 석 달이 되고, 어느새 해가 바뀌었다. 백씨가 계속해서 실종자 가족들 곁을 지킬 수 있었던 데는 어머니(56)의 응원도 한몫했다. 지난해 12월, 광주에 사는 어머니가 사고로 발가락뼈가 으스러지는 중상을 당했다. “어머니 곁을 지켜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수술은 의사들이 하는 것이니 걱정하지 말고 하던 일이나 잘 마무리하라’고 하셨어요.”지난 2월 중순, 실종자 가족들이 ‘선체 인양’을 요구하기 위해 상경할 때 백씨도 서울로 왔다. 백씨는 안산 합동분향소 근처에 작은 방을 얻고 매일 아침 실종자 가족과 만나 함께 서울 광화문광장으로 온다. 백씨는 “1년이 흘러도 선체 인양과 진상 규명 등 해결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며 “정부가 빨리 해결해 줘야 가족들도 나도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가혹한 시간이 어서 지나가기만 기다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2015-04-07 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