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전 빚 갚아라” 신종 불법채권추심 기승

“10년전 빚 갚아라” 신종 불법채권추심 기승

입력 2013-02-12 00:00
업데이트 2013-02-12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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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시효 5~10년 지났는데… 파산면책 결정 받았는데…

자영업자 A(45)씨는 최근 청천벽력 같은 전화를 받았다. 기억도 나지 않는 10여년 전 빚을 갚으라는 독촉 전화였다. 채권추심업자는 며칠 뒤 A씨의 이름이 적힌 차용증까지 들고 나타났다. A씨가 빌렸다는 원금은 200만원에 불과했지만 10년간 이자가 붙어 갚을 돈은 2000여만원으로 불어 있었다. 이후 집요한 빚 독촉이 시작됐다. 추심업자는 수시로 전화해 폭언과 욕설을 퍼부으며 “갚지 않으면 감방 갈 각오하라”고 협박을 했다. A씨는 두려운 마음에 여기저기서 급전을 빌려 돈을 갚았다. A씨는 “차용증을 쓴 기억이 전혀 없다”며 “호소할 곳을 몰라 마음만 졸였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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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업에 종사했던 B(58)씨도 한 대부업체로부터 과거의 빚 독촉에 시달렸다. B씨는 10년 전 회사가 부도났다. 무일푼으로 거리에 내몰리며 파산신청을 했다. B씨의 빚 수천만원은 ‘파산면책’을 받았다. 하지만 며칠 전 한 대부업체로부터 채무 600만원에 연체 이자까지 2500만원을 갚으라는 지급명령서가 배달됐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채무 상환능력이 없는 B씨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B씨가 돈이 없다고 호소하자 업체 직원은 “남의 돈 빌려 써놓고 예전 일이라고 안 갚으니 자식 같은 사람한테 맞아봐야 정신 차리겠느냐”며 발길질을 했고, 자녀들의 직장에도 찾아가 횡포를 부렸다.

소멸시효가 지난 과거의 빚을 갚으라고 독촉하거나 파산신청을 해 면책을 받은 사람들에게 돈을 갚으라고 하는 신종 불법 채권추심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실체가 확인되지 않는 원금에 물가상승률 등을 반영한 이자까지 더해져 피해자들이 날벼락을 맞고 있다. 법에 무지한 서민들이나 노인들이 주된 표적이 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11일 대부업체, 채권추심업체 등에 따르면 살인적인 이자율로 돈을 빌려준 뒤 폭행과 협박 등 불법을 저지르는 기존 불법추심의 수준을 넘어서는 새로운 수법이 활개치고 있다. 법적으로 이미 일단락된 과거의 빚에 이자까지 붙여 갚으라고 종용하는 것이다.

채무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 추심업체 관계자는 “10여년 전 대부업체에 돈을 빌리러 가 상담을 받았다가 그냥 돌아간 사람들을 대상으로 기억이 불분명함을 이용해 거짓 차용증을 꾸며 사기 독촉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당사자가 아닌 보증인에게까지 소멸시효가 지난 채권추심을 하는 경우도 있고 소멸시효가 지난 채권을 사고파는 행위에 대해 규제가 없음을 악용해 무효인 채권을 사들여 채권자 행세를 하는 악덕업자도 있다. 한 피해자는 “과거의 채권증서가 떠돌아다니며 거의 노예 문서처럼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일반 채권의 소멸시효는 10년이다. 그러나 상호저축은행의 채권, 대부업체의 대부채권 등은 소멸시효가 5년이다.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무효이거나 존재하지 않는 채권을 추심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도록 돼 있다.

사단법인 희망살림 측은 “신종 수법이 판치는 만큼 미국처럼 정보통신법 등에 관련 법규를 추가하고 민간 채무조정기구를 따로 설치하는 등 다방면에 걸쳐 불법채권추심을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면책됐거나 소멸시효가 지난 채권은 매각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금융 회사에 지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최지숙 기자 hunnam@seoul.co.kr

2013-02-12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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