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역사 한학기에 공부 끝내라니”

“2000년 역사 한학기에 공부 끝내라니”

입력 2012-09-14 00:00
수정 2012-09-14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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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부 집중이수제 개편안 발표 두달… 교육 현장 혼란·불만 여전

한 학기에 배울 과목 수를 줄여 학생들의 학습부담을 덜어 준다는 취지로 지난해 중·고등학교에 도입된 집중이수제 때문에 학생들이 녹초가 되고 있다. 2년에 걸쳐 배울 과목들을 한 학기에 몰아 배우면서 학습 부담이 폭증했기 때문이다. 학기당 배우는 과목 수를 줄인 대신 학습 강도는 오히려 높아진 ‘조삼모사’ 정책이라는 비난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정부는 대안을 모색하지 않은 채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사회교사가 국사 가르치기도

13일 교육계에 따르면 지난 7월 교육과학기술부가 집중이수제 개편안을 내놓은 뒤에도 학교 현장의 혼란은 심화되고 있다. 교과부는 예체능 과목을 한 학기에 몰아 배우는 것이 현재 학교폭력 예방 대책으로 추진 중인 인성교육 강화 방침과 상반된다는 비판에 음악·미술·체육 과목은 제외한다는 내용의 개편안을 내놓았다.

예체능 과목 대신 사회·역사·도덕 등 다른 과목이 집중이수 대상이 되면서 부작용은 여전하다. 서울 A중학교 역사 교사 김모씨는 한 주에 5시간씩 수업을 진행해 한 학기에 과정을 끝내고 있다. 그는 “토론식 수업은 고사하고 책을 읽어 줄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구체적 내용은 학생들이 알아서 공부하도록 하고 핵심만 짚어 주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중간·기말고사 시험범위가 각각 1000년씩이나 돼 학생들의 항의가 많지만 달래지도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어·영어·수학도 예외는 아니다. 대부분의 학교가 주요 입시 과목은 3년에 걸쳐 가르치지만 수능과 직접 연관이 없는 실용영어 등은 한 학기에 몰아서 끝내는 경우도 많다. 영어1과 실용영어를 일주일에 세 시간씩 나눠서 가르치던 경기도 D고는 지난 학기부터 일주일에 여섯 시간씩 실용영어만 배운다. 학생들도 학업 부담이 커졌다는 불만이 많다. 대구 B고등학교에 다니는 정모군은 “고시 공부도 아니고 정해진 과목을 ‘끝내자’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제도”라며 “국·영·수는 사정이 그나마 낫지만 나머지 과목은 완전히 장식 취급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집중이수제 때문에 학교 운영도 파행으로 이뤄지는 일이 흔하다. 교사 수는 부족하고 수업시수는 많아 집중이수 과목에 다른 과목의 교사를 동원하는 일이 빈번하다. 경기도의 한 중학교에서는 지난 1학기 2년에 걸쳐 배워야 할 국사 과목을 일주일에 5시간씩 한 학기에 끝내도록 하면서 일반사회 과목 담당 교사에게 국사 수업을 맡겼다. 해당 교사는 익숙하지 않은 국사 수업까지 하느라 국사 교사에게 수업방법 등을 물어 가며 겨우 한 학기를 끝마쳤다.

●“땜질 처방 아닌 자체 재검토를”

교과부는 ‘보완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교과부 관계자는 “예체능 과목을 제외해 사실상 한 학기에 10~11과목을 배우게 되기 때문에 전처럼 일부 과목만 지나치게 집중해 배우는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신성호 전교조 정책국장은 “그동안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체육이나 교양 과목을 한 학기 8과목 제한에서 예외로 규정하는 식으로 대응했다.”면서 “근본적인 문제점이 해결되지 않은 만큼 집중이수제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건형·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2012-09-14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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