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3천명 찾는데…초라한 ‘위안부 역사관’

일본인 3천명 찾는데…초라한 ‘위안부 역사관’

입력 2012-09-13 00:00
업데이트 2012-09-13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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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 협소에 정부 지원 전무…세계 첫 성노예 인권박물관 무색

“(주한일본대사관 건너편에 세운) ‘위안부 소녀상’은 너무 작아 오히려 피해자들에 치욕적이다. 한국정부가 더 큰 추모상을 건립해야 한다.”

지난달 20일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을 방문한 에니 팔레오마베가 미국 연방 하원의원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앞에서 이런 말을 여러 번 반복해 동석한 한국인들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초라한 것은 소녀상뿐이 아니다.

나눔의 집 부설기관으로 설립된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은 세계 최초 성노예 주제 인권박물관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옹색하다.

일본인 3천명을 포함, 연간 1만명이 찾아오는 역사교육시설이지만 운영비 한 푼 지원되지 않은 채 정부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다.

’위안부 역사관’은 1998년 나눔의 집 부속건물로 건축됐다. ㈜대동이 건물을 지어 기증했고 내부 전시물은 한국과 일본에서 한 푼 두 푼 모은 기금으로 확보했다.

그러나 14년이 지나도록 시설이 개선되지 않아 내부는 비좁고 낡았다. 지하 1층, 지상 2층 구조에 4개 전시실을 갖추고 있지만 총 면적은 350㎡에 불과하다. 전시실과 통로 공간이 부족해 관람객들이 단체로 이동하기 어려울 정도다.

피해자 할머니들이 거주하는 나눔의 집이 살아 있는 역사교육장이라면 ‘위안부 역사관’은 일본의 전쟁범죄를 고발하는 자료실이다. 실제 피해 현장은 아니지만, 생존 피해자 거주지에 만든 또 다른 형태의 박물관인 셈이다.

전시물 중에는 피해자 증언을 바탕으로 복원한 위안소 모형이 충격적이다. 강제동원 증언 기록물과 트라우마 심리치료 영상 2천500점, 세상을 떠난 피해자 15명의 유품, 피해자가 손수 그린 회화 150점 등도 보관돼 있다. 대부분은 전시공간이 부족해 계단 아래 창고 수준의 수장고에 갇혀 있다.

일본군 위안부 공문서를 발견해 가토 담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요시미 요시아키(吉見義明) 쥬오대 교수가 오키나와 기지에서 발굴한 위안부 군표 복사본을 비롯해 각종 논문과 저술 1천점도 있다.

고(故) 강덕경 할머니 등 고인이 된 피해자 8명의 납골함은 별도 공간을 마련하지 못해 역사관 뜰 한쪽에 쓸쓸히 놓여 있다.

역사관 운영은 나눔의 집 직원과 자원봉사자들의 몫이다.

일본어 해설은 한국으로 시집 온 일본인 여성이 돕고 있다. 2003년부터 개설한 한일 대학생 역사캠프에는 600명이 참여했으나 더는 여력이 없어 지난해부터 중단했다. 한국 학생을 대상으로 운영 중인 1박2일 인권캠프도 벅찬 상태다.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생활안정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 등 법적 지원 근거가 있지만 ‘위안부 역사관’은 그 혜택을 받지 못했다.

나눔의 집 안신권 소장은 “찾아오는 관련부처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조차 역사관을 정부 지원 시설로 잘못 알고 있다”며 “최근 일본 정치인의 망언이 이어지는 상황을 보면 한일 과거사를 바로 세우고 올바른 역사관을 후대에 정립하는 일에 국가 차원의 관심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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