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vs 헌재 갈등 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두 최고 기관은 위상을 놓고 오랫동안 신경전을 벌여 왔다. 김능환 대법관의 10일 퇴임사는 이러한 갈등에 대한 법원의 입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다.●법 해석에 헌법적 문제 제기땐 법적 혼란 불가피
현행법 체계상 법률의 최종 해석권은 대법원에 있기 때문에 법원 재판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재판소원’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헌재가 법원의 법 해석에 대해 헌법적 문제를 제기하면 법적 혼란은 피할 수 없다. 또 법을 놓고 여러 해석이 가능할 때 특정한 해석 기준을 내놓는 ‘한정 위헌’과 같은 헌재의 변형 결정을 법원이 따를지에 대해서도 양측은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1996년 양도소득세 산정 기준 관련 한정 위헌 결정과 2001년 국가배상법 관련 한정 위헌 결정 등은 양 기관의 이러한 견해차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법원은 이들 사례에서 헌재 결정을 따를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이 때문에 헌법재판소법 개정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특히 헌법학자들을 중심으로 부분적으로라도 재판소원 제도를 도입해 논란을 막자는 견해도 있다. 제한적으로 법원의 판결에 위헌적인 요소가 있다고 생각하면 헌재에 심판을 제기할 수 있게 하자는 주장이다. 김 대법관은 “헌재가 가진 법률의 위헌 여부 심사권과 법원의 법률 해석 권한을 하나의 기관에 통합시켜 관장하게 하는 것이 국민 전체의 이익에 유익하고 사회적·경제적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지 않겠냐.”며 나름의 대안을 제시했다.
이날 퇴임사는 두 기관의 갈등과 마찰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표출한 첫 사례로 꼽힐 만하다. 김 대법관은 퇴임사에 앞서 “말이 길어질지도 모른다.”고 전제한 뒤 헌재를 비판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김 대법관의 퇴임사를 듣는 내내 굳은 표정을 지었고 일부 대법관은 눈을 지그시 감기도 했다.
●김능환 대법관 퇴임사 법원 내부 인식 드러내
대법원은 김 대법관의 개인 의견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지난달 초 GS칼텍스 등의 헌법소원 사건에서 헌재가 문제 삼은 대법원 판례의 주심 재판관이 김 대법관이었기 때문에 그로서는 사법부에 몸담은 마지막 날 법복을 벗는 자리에서 ‘자기 해명’을 한 셈이기도 했다. 하지만 김 대법관 개인 생각이라고는 해도 헌재의 반론이 어떤 식으로든지 표출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지배적이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헌재에서도 재판관 4명이 임기를 마치는 9월 퇴임식 등에서 이번 발언에 대한 반박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2012-07-11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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