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비 절감위해 도입… 되레 변형된 사교육 생겨
사교육의 억제와 학생들의 스스로 공부를 이끌기 위해 정부가 적극 권장하는 ‘자기주도학습’마저 새로운 형태의 사교육을 낳고 있다. 최근 학원가는 버젓이 ‘자기주도학습’을 내세워 광고하거나 ‘자기주도학습학원’이라는 간판까지 내걸고 있다. 외국어고·과학고 등 특목고 입시뿐만 아니라 대학입시에서도 자기주도학습 전형이 확대되자 학원가들이 발 빠르게 기존의 학원 체제를 변형, 또 다른 사교육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자기주도학습 전형은 사교육을 줄이기 위해 내신 성적과 학교생활기록부, 면접 등에 비중을 둬 선발하는 제도다. 그러나 현행 학원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법에는 ‘자기주도학습’이라는 용어조차 없는 데다 기준 및 내용도 애매한 변형된 학원인 탓에 단속이 쉽지 않은 실정이다. 게다가 교육 당국은 자기주도학습학원의 실태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지난 11일 밤 경기 성남시의 한 학원 자습실에는 말 그대로 학생 7~8명이 떨어져 앉아 공부하고 있었다. 일반 학원과 같이 강의하거나 문제 풀이를 시키지도 않았다. 이른바 ‘코치’로 불리는 대학생 아르바이트생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주 3회 4시간 자습한 뒤 내는 ‘학원비’는 50만 4000원이다. 46만원 선인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대입종합반 수강료보다 비싸다. 자습하는 학생들이 학습 매니저 또는 멘토로부터 공부 방법에 대해 상담하는 시간은 일주일에 한두시간가량이다.
또 ‘자기주도학습학원’이라고 노골적으로 간판을 건 곳도 생겨났다. 서울의 한 학원은 유명 박사가 개발한 ‘자기주도학습방법’을 도입해 강의하고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과목당 35만원씩 받고 소수정예 수업을 진행했다. 주 3회 1시간 30분씩 이뤄지는 수업은 일반 그룹 과외와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학원 강사는 “1대1 자기주도 학습도 가능하다.”고 등록을 권하기도 했다.
방문형 자기주도학습 업체인 K사는 주 2회 2시간 수업에 65만원을 받고 있다. 고교생의 경우 한 달에 30만원을 더 지불하면 매니저가 학습 관리를 도와주기까지 한다. 1주일에 한 번씩 개인 학습계획표를 짜 주고 매일 전화로 학습량을 점검해 주는 방식이다. 해당 교육지원청은 자기주도학습학원과 관련, “그런 (자기주도학습) 학원이 있느냐.”며 오히려 반문했다. 일선 중·고교 교사들은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사교육 시장에서 배운다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자기주도학습학원이 성업을 이루자 소위 ‘자기주도학습지도사’들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들은 자기주도학습과 관련된 강의·컨설팅·코칭 등을 진행하는 학습 전문가로 불린다. 대학이나 사단법인 등에서 관련 교육과정을 개설해 자기주도학습지도사를 양성하고 있다. 하지만 적잖은 자기주도학습학원의 학습 매니저는 지도사 자격증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명희진기자 mhj46@seoul.co.kr
2012-05-14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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