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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수력발전소 건설에도 조선인 강제동원

일제 수력발전소 건설에도 조선인 강제동원

입력 2010-11-01 00:00
업데이트 2010-11-01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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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방’에 가두고 중노동 강요…피해자 1천여명

태평양전쟁 당시 일제가 수력발전소 건설 공사에 조선인을 강제 동원한 사실이 정부 조사로 처음 확인됐다.

 조선인들은 소위 ’감옥방‘ ’문어방‘이라 불리는 인신구금형 숙소에서 지내며 중노동을 강요당했고,일과가 끝나면 감금돼 철저한 통제를 받았다.

 국무총리실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위원장 오병주)는 2006년 6월부터 최근까지 문헌·생존자 진술·현장조사 등을 벌여 ’홋카이도 히가시카와초(東川町) 에오로시발전소 강제동원피해 진상조사‘ 보고서를 펴냈다고 1일 밝혔다.

 일제의 국책사업이었던 에오로시 발전소는 1939년에 착공해 1945년 8월 완공됐다.

 조선인은 1940년께부터 동원됐는데 매년 4~5월이면 100~200명 단위로 일본에 끌려가 피해자가 총 1천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됐다.

 추베쓰강 가장 상류에 있는 이 발전소는 약 150m의 낙차를 이용하는데,산을 굴착해 12㎞ 길이의 터널을 만들어야 하는 등 난공사여서 일제가 패전할 때까지 공사가 계속됐다.

 조선인 노무자들은 주로 수도 건설,터널 굴착 등 위험한 공사에 동원돼 하루 13∼15시간 중노동을 했고 식사 시간은 30분,휴식시간은 하루 2차례 5~10분이 주어졌다.

 이곳에서 일본인들은 조선인을 ’다코(문어)‘라고 부르며,100여명을 한방에 가둔 채 군대식 단체 생활을 강요했다.

 일본인 죄수를 가둬놓고 일을 시키는 ’감옥방‘ 제도는 인권 문제 때문에 당시 이미 사라지는 추세였으나 조선인 노무자는 계속 감옥방에서 지내며 강제 노동을 해야 했다.

 한편 지난 9월까지 위원회가 확인한 에오로시발전소 동원 피해자는 총 15명인데 이 중 생존자는 9명뿐이다.

 확인된 피해자 수가 적은 까닭은 동원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관련 명부 등이 전혀 없어 생존자 찾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조사를 진행한 하승현 전문위원은 “토목공사에 대한 훈련도 없고,사고 관련 조치도 없었다”며 “열악한 생활환경,조악한 식사로 체력이 급격히 떨어진 조선인 노무자가 질병으로 사망한 사례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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