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머로 고통받는 연예인들

루머로 고통받는 연예인들

입력 2010-09-30 00:00
업데이트 2010-09-30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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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를 끌며 활발하게 활동하다 근거 없는 루머가 터지자 속상하고 억울하다며 잠시 연예 활동을 중단하더군요.”

최근 루머로 고통받고 있는 한 유명 가수의 변호인은 28일 익명을 요구하며 “당사자는 극복하려 하는데 가족까지 고통받는 모습을 보면서 견디기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끼와 카리스마’로 무장한 채 대중 앞에서는 항상 당당한 모습을 보이는 연예인들도 악성 루머 앞에선 무력한 모습이다.

일단 한번 만들어진 루머는 인터넷과 트위터 등을 통해 순식간에 많은 사람에게 확산되고, 루머가 틀린 것이라는 증거를 제시해도 사람들 뇌리에 박힌 루머의 이미지를 바로잡기란 쉽지 않다.

일부 연예인은 루머로 인한 악성댓글과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악성 루머..당사자에겐 ‘칼날’

지난 2008년 10월 스스로 목숨을 끊어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던 인기 탤런트 최진실 씨의 자살 원인은 ‘사채설’로 알려진 악성 루머였다.

앞서 숨진 탤런트 안재환 씨가 최씨에게 수십억 원의 사채를 빌려 썼다가 갚지 못했고 빚 독촉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 루머의 내용.

이 루머는 안씨가 숨진 뒤 ‘찌라시’라 불리는 증권가 사설정보지를 통해 알려졌고 인터넷 메신저 등을 통해 퍼 날라지며 빠르게 확산됐다.

당시 최씨는 루머와 악성댓글로 큰 충격을 받았고, ‘억울하다’며 마음고생을 심하게 하다 끝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지인들은 증언했다.

그해 1월에는 가수 나훈아 씨가 자신을 둘러싼 각종 루머로 괴로워하다 해명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투병설, 일본 폭력조직 관련설, 신체훼손설, 여배우와의 염문설 등 다양하게 부풀려진 루머에 대해 1시간 동안 일일이 사실이 아님을 설명하며 격한 감정을 쏟아냈다.

기자회견 도중 분을 이기지 못한 그는 갑자기 탁자 위로 올라가 허리띠를 풀고 바지 지퍼를 반쯤 내리면서 ‘이렇게 하면 믿겠느냐’며 울분을 토해내기도 했다.

루머로 인해 겪은 참담한 심정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장면이었다.

작년 5월에는 가수 구준엽 씨가 “시중에 근거 없이 떠도는 ‘마약복용설’ 때문에 7년 동안 3차례에 걸쳐 수사기관을 오가며 조사를 받았다”면서 “가족과 제 인권을 보호받고 싶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지난달에는 탤런트 한가인-연정훈 부부가 난데없는 ‘이혼설’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증권가 정보지를 통해 처음 유포된 것으로 알려진 ‘이혼설’은, ‘윗선’의 지시로 MBC PD수첩의 4대강 관련 리포트가 방송되지 않을 것이며, 이에 따른 반발과 관심을 분산시키려 이 루머를 흘릴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근거 없이 튀어나온 이 ‘음모론’ 때문에 이 부부는 심적으로 상처를 받아야 했다.

●루머는 관음증의 산물?

인기 연예인들은 많은 사람의 관심의 대상이며 그들의 사생활과 일거수 일투족은 호사가들의 화젯거리다.

유명 연예인에 관한 정보라면 누구나 알고 싶어하며, 일부 중.고교생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정보를 얻으려 좋아하는 연예인의 숙소와 다니는 미용실, 식당 등을 쫓아다닐 정도로 ‘사생활 엿보기’에 병적으로 집착하기도 한다.

2005년 한 광고기획사가 연예계 관계자들의 진술을 바탕으로 유명 연예인들에 관한 사생활 정보를 정리한 ‘연예인 X-파일’이 유출돼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바 있다.

문건에 이름이 거론됐던 연예인들이 ‘근거 없는 얘기’라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순간에도 많은 사람은 이런저런 경로로 문건을 구해 보느라 혈안이 됐었다.

당시 정부에서는 악성 루머의 진원지로 지목된 ‘찌라시’를 대대적으로 단속하는 등 정화 노력을 벌였지만, 이후에도 X-파일 2탄, 3탄, Y-파일 등 연예인들의 확인되지 않은 사생활을 담은 문건이 등장해 많은 사람이 돌려 읽었다.

회사원 송선근(31) 씨는 “당시 ‘X-파일’ 소문을 듣고 어떤 내용일까 궁금해 친구들을 통해 구해 봤다”면서 “친구들은 문건에 나온 내용을 사실이라고 믿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대개 루머를 처음 접하면 ‘그럴듯하지만,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과 함께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라는 생각도 함께하게 된다.

대부분의 루머는 근거 없는 것이지만 가끔 사실로 밝혀지는 것들도 있어, 무조건 뜬소문으로 치부하기도 어렵다.

직장인 김은정(28.여) 씨는 “틀린 루머라고 생각했던 얘기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사실로 드러나는 경우도 있어, 황당한 얘기라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귀를 기울이고 듣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올해 5월 결혼한 탤런트 장동건-고소영 부부의 경우, 지난해 증권가 정보지를 통해 처음으로 열애설이 불거졌다가 사실로 확인된 경우다.

루머는 그 속성상 대부분 스타 개인의 이성관계나 연애사, 금전관계 등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 속한 것들인 경우가 많아 일일이 해명하는데도 한계가 있다.

역시 익명을 요구한 한 여성 연예인 매니저는 “루머를 바로잡으려고 나서서 진실을 강변해도 사람들이 믿으려 하지 않아 그냥 속으로 삭이고 대응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연예인, 예민해 루머에 취약”

홍진표 서울아산병원 정신과 교수는 “많은 연예인이 겉으론 의연해 보이지만 정서적으로 예민하고 감정의 기복이 심한 경우가 많다”면서 “이들은 조울증에 취약한 군에 속하며 스트레스에 강하지도 않다”고 진단했다.

홍 교수는 “루머로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정신적으로 지쳐 우울감과 좌절감을 느끼고 사람을 피하며 고립된 채 격리된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또 “연예인도 모두 우리와 같은 사람이고, 많은 사람에게 노출돼 있다는 직업적인 어려움도 있다”며 “이런 면을 이해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인터넷 공간에선 익명성 뒤에 숨어 편하게 ‘아니면 말고 식’으로 루머를 만들어 확산시키는 사람이 있다”면서 “내 가족이라도 그렇게 할 것인지 한번 생각하고 행동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일부 누리꾼들은 루머를 놓고 공방을 주고받는 걸 마치 게임처럼 즐기는 것 같다”며 “악성 루머는 연예인 당사자는 물론 죄 없는 가족에게까지 고통을 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부 언론도 사실 관계 확인 없이 쉽게 루머를 기사화하고 스포츠 중계 식으로 보도한다”면서 “루머를 확대.재생산하는 식의 보도 관행은 고쳐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현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루머는 한번 잘못 퍼지면 선량한 사람도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만큼 최소한의 법적 보호장치라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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