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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생 을지OB “술맛 나는 ‘상생 골목’을 위하여~”

80년생 을지OB “술맛 나는 ‘상생 골목’을 위하여~”

박윤슬 기자
입력 2019-05-30 22:46
업데이트 2019-05-31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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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다큐] 원조 노맥의 하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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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리 골목을 찾은 시민들이 노천 호프를 즐기고 있다.
노가리 골목을 찾은 시민들이 노천 호프를 즐기고 있다.
지난 10~11일 양일간 서울 을지로 노가리 골목 일대에서 ‘2019 을지로 노맥(노가리+맥주)축제’가 열렸다. 인스타그램을 보고 왔다며 노가리를 처음 먹어본다는 스무 살 학생부터, 30년째 단골이라는 60세 넘은 노인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는 시민들은 물론 이색 축제를 기대하고 찾아온 외국인 관광객들까지 방문해 발 디딜 곳이 없었다. 2013년도에 처음 시작한 축제는 독일의 유명한 맥주 축제인 ‘옥토버 페스트’에 비견되며 서울의 대표 축제로 떠올랐다. 도로변에 테이블과 의자를 놓고 영업하는 것은 불법이었으나 중구청은 2년 전부터 노가리 골목 일대에 대해 옥외영업을 허용하며 상권 부흥에 힘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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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노맥축제를 찾은 중년 남성들이 맥주잔을 부딪히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난 10일 노맥축제를 찾은 중년 남성들이 맥주잔을 부딪히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39년 전 6평 가게 모습 온전히 보전… 서민 위해 ‘1000원 노가리’ 가격 인상 안 해

타일, 도기, 인쇄, 공구 상가 등이 있는 을지로3가 일대에 노가리 맥주 골목이 형성된 건 1980년 이곳에 ‘을지OB베어’가 문을 열면서부터다. 창업주 강효근(92)옹이 당시 생맥주 체인인 OB베어 서울 2호점으로 시작하며 노가리와 고추장소스 조합의 시초를 만들었다. 욕심 없이 같은 자리에서 서민을 맞겠다는 창업주의 철학을 딸 강호신(59)씨가 이어받아 39년이 지났지만 6평 가게의 모습은 온전히 유지되고 있다. 노가리 골목에서만 볼 수 있는 ‘천 원짜리 노가리’ 안주 역시 일선에서 물러난 강 옹이 신신당부하고 간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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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원조집의 노맥축제 참여는 올해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지난해 건물주가 계약 종료 2달여를 앞두고 명도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을지OB 측은 제3자가 제시한 조건이 있더라도 맞춰주고 유지하고 싶다는 내용증명을 보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상황이 이러하자 원조집의 역사와 가치를 보존하고자 하는 단골들과 단체가 나서 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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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되면 간이 테이블과 의자가 골목으로 나와 셔터를 내린 공구 골목을 배경으로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저녁이 되면 간이 테이블과 의자가 골목으로 나와 셔터를 내린 공구 골목을 배경으로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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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부터 중구청은 노가리 골목에 옥외영업을 허용했다. 이 일대에 간이 테이블과 의자들이 빼곡하게 들어서며 장관을 이룬다.
2년 전부터 중구청은 노가리 골목에 옥외영업을 허용했다. 이 일대에 간이 테이블과 의자들이 빼곡하게 들어서며 장관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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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OB’ 창업주 강효근옹의 사위 최수영(64)씨가 냉장 숙성한 맥주를 잔에 따르고 있다
‘을지OB’ 창업주 강효근옹의 사위 최수영(64)씨가 냉장 숙성한 맥주를 잔에 따르고 있다
●건물주 “계약 종료” 퇴거 통보… 시민들 “원조집 사라지면 노가리 골목 무슨 의미 있나”

20여년째 노가리 골목을 찾았다는 이만성(64)씨는 “문화란 다양성이 바탕이 돼야 하는데 을지OB가 사라지면 이 골목엔 사실상 하나의 호프집밖에 남지 않는다. 원조집이 사라진 노가리 골목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며 우려를 표했다. 실제로 을지OB가 있는 건물 라인엔 같은 이름을 가진 6개의 호프집이 존재하고 건너 라인은 재개발 이야기가 있었으나 반발에 부딪혀 현재 잠정적 중단 상태다.

을지OB가게 정문 옆엔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작년 8월에 수여한 백년가게 현판과 2015년도 서울시에서 수여한 서울미래유산 현판이 나란히 걸려 있다. 백년가게는 중기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음식점 등을 30년 이상 영위한 소상공인을 발굴하고 정책적으로 지원해 100년 이상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을지OB는 그 1호점이고, 올해 35곳이 추가되며 총 116곳으로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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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OB’는 연탄 화덕에 맨손으로 노가리를 굽는 강옹의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
‘을지OB’는 연탄 화덕에 맨손으로 노가리를 굽는 강옹의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
건물주의 권리 주장은 현행 법의 테두리 안에 있다. 그러나 정부가 직접 선정한 사회문화적 가치가 있는 ‘노포’를 지키기 위한 사회적 합의와 대안도 필요하지 않을까. 부디 우리나라에도 백년가게의 전통을 이을 수 있는 환경과 노가리 골목이라는 문화를 지켜나갈 수 있는 상생의 방법을 찾길 바라본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2019-05-31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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