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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진도 고군면 해저 2차 발굴 ‘누리안호’ 사람들

[커버스토리] 진도 고군면 해저 2차 발굴 ‘누리안호’ 사람들

입력 2013-10-19 00:00
업데이트 2013-10-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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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걸고 첨벙… 용왕님, 청자 파편이라도 내어주소서

이순신 장군이 읊조렸던 ‘한산섬 달 밝은 밤’은 과연 낭만적일까.

지난 15일 밤 진도 앞바다에 정박한 발굴선 ‘누리안호’(290t)에선 정적만이 감돌았다. 배에서 흘러나온 옅은 불빛이 이곳이 어디인지를 가늠케 할 따름이다. 달빛 한 점 없이 사방은 캄캄하고, 바다 건너 뭍의 민가에서 퍼져나온 전등불은 보일 듯 말 듯하다. 거센 파도는 당장에라도 집어삼킬 것처럼 무섭게 선체에 부딪힌다.

지난 16일 전남 진도군 고군면 오류리 앞 바다에 정박 중인 수중발굴 전용선 ‘누리안호’의 한 잠수사가 물밑에서 건져올린 고려청자를 동료에게 건네고 있다.  진도 손형준 기자 blotagoo@seoul.co.kr
지난 16일 전남 진도군 고군면 오류리 앞 바다에 정박 중인 수중발굴 전용선 ‘누리안호’의 한 잠수사가 물밑에서 건져올린 고려청자를 동료에게 건네고 있다.
진도 손형준 기자 blotagoo@seoul.co.kr
누리안호 선상에서 발굴단원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배의 막내인 허문녕(왼쪽 세 번째) 학예연구사, 강대흔(왼쪽 다섯 번째) 잠수팀장 등이 함께했다.  진도 손형준 기자 blotagoo@seoul.co.kr
누리안호 선상에서 발굴단원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배의 막내인 허문녕(왼쪽 세 번째) 학예연구사, 강대흔(왼쪽 다섯 번째) 잠수팀장 등이 함께했다.
진도 손형준 기자 blotagoo@seoul.co.kr
선실 주방에선 인기척이 감돈다. 군 특수부대 출신인 강대흔(55) 잠수팀장이 종이를 펴놓고 외롭게 서예에 몰두하고 있다. 그는 30년 경력의 베테랑 잠수사다. 강 팀장이 그간 살아온 얘기를 풀어놓는다. 그는 목포대교, 여수-광양 연륙교 등 공사현장을 돌며 수중 폭파와 용접을 하며 살아왔다. 두 아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이미 어엿한 사회인이 됐다고 한다.

그런데 왜 여전히 이 곳에서 바닷속을 훑고 있을까. “공사현장에선 잠수로만 한 달에 1500만원 이상 벌었어요. 그러다 2008년 문득 지인이 문화재 발굴현장에서 일해보자고 제안했지요. 태안 마도 1~3호, 군산 야미도, 인천 영흥도까지 현장을 샅샅이 누볐습니다. 비록 계약직이지만 큰 물건 하나 발굴해 문화재청장 표창을 받는 게 꿈입니다.”

‘잠수하는 공무원’으로 널리 알려진 양순석(41) 해양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도 동석했다. 그는 누리안호의 총책임자다. 1990년대 후반부터 스킨스쿠버를 배워 문화재청이 2002년 자체 수중 발굴을 시작할 때 합류했다. “다행히 결혼은 2002년 급하게 했습니다. 연애시절 ‘내근직’ 공무원으로만 알았던 아내는 지금까지 속고 살았다며 난리입니다.”

그는 1년에 3분의 2가량을 밖에서 떠돈다. 수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가 그나마 집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런 탓에 홍광희(38) 연구원 등 후배들은 줄줄이 노총각 신세다. “겨울에 소개받아 두세 달 사귄 아가씨가 있어도 바다로 돌아오는 봄이면 여지없이 깨지곤 한답니다. 선배로서 미안할 따름이죠(웃음).”

강대흔(왼쪽) 잠수팀장이 누리안호 선상에서 수중 발굴 작업을 앞두고 잠수복을 입고 있다. 5㎜ 두께의 잠수복은 19도 안팎까지 떨어진 수온을 견디게 해준다.  진도 손형준 기자 blotagoo@seoul.co.kr
강대흔(왼쪽) 잠수팀장이 누리안호 선상에서 수중 발굴 작업을 앞두고 잠수복을 입고 있다. 5㎜ 두께의 잠수복은 19도 안팎까지 떨어진 수온을 견디게 해준다.
진도 손형준 기자 blotagoo@seoul.co.kr
양순석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가 누리안호 선상의 통제실에서 수심 20m 발굴 작업을 지휘하고 있다. 잠수사들은 헬멧에 카메라와 마이크를 부착, 실시간으로 배와 통신이 가능하다. 진도 손형준 기자 blotagoo@seoul.co.kr
양순석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가 누리안호 선상의 통제실에서 수심 20m 발굴 작업을 지휘하고 있다. 잠수사들은 헬멧에 카메라와 마이크를 부착, 실시간으로 배와 통신이 가능하다.
진도 손형준 기자 blotagoo@seoul.co.kr
누리안호에선 현재 10명의 민간인 계약직 잠수사와 7명의 선박직원, 3명의 학예연구사가 일하고 있다. 잠수사들은 열흘 일하면 사나흘씩 뭍에 나가 휴식을 취하지만, 공무원인 학예연구사와 선박직원들은 휴일조차 챙길 수 없다. 예산 부족으로 근무인원이 부족한 탓이다. 정명화(55) 선장은 “그래도 보람 있는 일”라며 활짝 웃어보였다.

아찔한 순간도 많았다. 양 학예연구사는 “군산 십이동파도 아래 20여m 지점에서 땅을 파 흙을 걷어내고 촬영과 인양하는 과정에서 수면 위로 올라오다 다른 배와 충돌할 뻔했다”면서 “튜브로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 납벨트를 벗어던지고 5분 이상 숨을 참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발굴단의 잠수사들은 탱크 잠수보다 긴 튜브를 통해 산소가 공급되는 후크잠수를 선호한다. 물속에서 오래 버틸 수 있고 안전하기 때문이다.

밤이 깊어 술자리가 무르익자 양 학예연구사가 속내를 털어놓았다. “2008년 11월 태안 대섬에서 막바지 발굴을 벌일 당시, 고용된 잠수사 한 분이 늘 5분 먼저 들어갔다가 5분 늦게 나왔습니다. ‘열심히 일한다’고만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5분간 청자 등 유물 20점을 빼돌려 바로 옆 뻘에 묻어뒀더라고요.”

이 잠수사는 발굴이 마무리되자 6개월 뒤 다시 현장을 찾아 빼돌렸던 유물을 인양했다. 그리고 서울 인사동 수집상에 유물을 내다팔다 경찰에 덜미가 잡혔다. 이 일로 현장을 관리하던 공무원들이 줄줄이 경찰서로 소환됐다. 감사원 특별감사까지 받고 문화재청장은 사과문까지 발표했다. 이 일이 있은 뒤로 발굴 현장에선 잠수사들의 헬멧에 폐쇄회로(CC)TV가 부착됐다.

이튿날 누리안 호의 아침이 밝았다. 강 팀장이 마치 해장을 하듯 5㎜의 두꺼운 잠수복을 입고 바닷물에 뛰어들었다. 뒤이어 잠수사들이 입수했다. 뻘 속에는 가로, 세로 각 1m씩 100개의 발굴 섹터가 바둑판 무늬처럼 줄로 나뉘어져 있다.

선실 2층 통제실의 모니터 화면에는 수심 20m 바닷속 현장이 생생하게 전해졌다. 2인 1조인 강 팀장 일행의 헬멧에 달린 카메라와 마이크를 통해서다. 150㎏이 넘는 에어리프트(뻘의 흙을 걷어내는 진공청소기)를 움직이느라, “허억~헉” 거친 숨소리가 멈출 새가 없다.

1시간 20여분쯤 지났을까. 1차 잠수를 마친 첫 팀이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었다. 열악한 작업환경에도 불구하고 손에는 서너점씩 고려청자 파편들이 들려 나왔다. 누리안호 주변을 맴돌며 침몰한 배의 유구(흔적)를 찾던 한 잠수사는 “예전에 저인망 어선이 훑고간 탓인지 청자의 윗부분들이 모두 잘려 나갔다”며 안타까워 했다.

이경근(47) 잠수사는 아직도 지난해 9월을 잊을 수가 없다. “오류리의 수심 20m 바닷속에서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뻘밭을 손으로 더듬어 길이 58㎝, 폭 3㎝의 쇠막대를 들어 올렸는데, 예감이 이상했어요.” 선상에 있던 양 학예연구사는 쇠막대를 재빨리 넘겨받아 대야에 담긴 맑은 물로 표면을 씻어냈다. ‘萬曆戊子/四月日左營/造小小勝字’(만력 무자년 4월에 전라 좌수영에서 만든 소소승자총통)란 명문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기록조차 없던 조선 중기의 개인용 화기가 처음 발굴된 것이다. 만력 무자년은 1588년. 임진왜란 발발 4년 전으로 임란 때 쓰인 병기 대부분이 이 무렵 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전남 목포시에 자리한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공개한 진도 오류리의 발굴 유물들. 1차 발굴에서 나온 국보급 기린모양 향로 뚜껑(왼쪽 하단)에 이어 2차 발굴에선 보물급인 원앙 모양의 향로 뚜껑(위)이 발굴돼 기대를 모으고 있다.  진도 손형준 기자 blotagoo@seoul.co.kr
전남 목포시에 자리한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공개한 진도 오류리의 발굴 유물들. 1차 발굴에서 나온 국보급 기린모양 향로 뚜껑(왼쪽 하단)에 이어 2차 발굴에선 보물급인 원앙 모양의 향로 뚜껑(위)이 발굴돼 기대를 모으고 있다.
진도 손형준 기자 blotagoo@seoul.co.kr
수중발굴 경력 6개월인 ‘초보’ 전전식(51) 잠수사는 “가족과 떨어져 사는 게 가장 힘들다”고 털어놨다. 강 팀장의 군대 후배라는 박정원(54) 잠수사는 “왜 옛 배들이 난파됐겠느냐. 물살이 빠르다는 이야기”라며 악조건 속 발굴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들은 그래서 발굴을 시작할 때 개수제(開水際)를 열어 용왕신을 달랜다. 발굴작업을 무사히 진행하려면 ‘용왕의 허락’을 얻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들의 발굴 노력은 뜻밖의 수확을 가져왔다. 올 5~10월 2차 수중발굴에선 원삼국시대(기원 전후~기원후 300년 안팎)의 무문형 토기류 2점과 청자 베개, 장구편(자기로 만든 장구 몸체), 원앙향로 등을 건져 올렸다. 원삼국시대 토기류가 바다에서 인양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향로 등은 보물급으로 추정된다. 이 밖에 송나라 시대의 동전, 근대 문물로 추정되는 절구돌과 다듬이돌 등 무려 700여점이 수백년 긴 잠에서 깨어났다.

진도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누리안호

길이 40m, 290t급으로 14노트의 속도로 달릴 수 있다. 2010년 49억원의 정부 예산으로 건조됐다. 한번 출항하면 20명이 20일간 바다에 머물 수 있다. 최근 중국에서 1000t급 수중 발굴선이 건조되기 전까지 아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각종 잠수 장비는 물론 강이나 바닥에 덮인 흙을 걷어내는 제토 설비, 선체를 끌어올리는 크레인 등 인양장비까지 두루 갖췄다. 오랜 시간 잠수에 갑작스럽게 생기는 잠수병을 치료할 수 있는 감압 의료장비도 마련돼 있다. 선실 2층의 통제실에서는 수중발굴 작업의 모든 상황을 제어할 수 있다.

2013-10-19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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