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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제 일자리 길을 묻고 답을 찾다] <2>복지천국 덴마크 가보니

[시간제 일자리 길을 묻고 답을 찾다] <2>복지천국 덴마크 가보니

입력 2014-01-09 00:00
업데이트 2014-01-09 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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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돼도 2년간 前 직장 임금의 80% 실업수당… ‘백수’도 괜찮아

세계에서 국민이 가장 행복한 나라 덴마크. 1인당 국민소득 5만 달러 이상의 부자 나라로 세계 최고의 복지 시스템을 자랑하는 덴마크는 북유럽 국가 중에서도 ‘가장 완벽한 복지국가’로 꼽힌다. 지난해 9월 유엔이 조사한 ‘세계 행복 보고서’에서도 덴마크는 1등을 차지했다. 덴마크는 우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시간제 일자리 확대의 ‘롤모델’로 거론된다. 그러나 현격한 국민소득과 복지 시스템의 격차 탓에 한국 현실엔 맞지 않는 ‘허황된 꿈’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덴마크를 직접 찾아 시간제 일자리의 정착과 확산 비결을 살펴봤다.

지난해 12월 20일 오전 코펜하겐 시민들이 자전거를 타고 직장으로 출근하는 모습. 덴마크에는 직종별로 다양한 형태의 시간제 근무가 정착돼 있다.
지난해 12월 20일 오전 코펜하겐 시민들이 자전거를 타고 직장으로 출근하는 모습. 덴마크에는 직종별로 다양한 형태의 시간제 근무가 정착돼 있다.
지난해 12월 20일 오전 8시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의 중앙역 앞. 한겨울 북유럽의 찬바람에도 도로는 ‘자출족’(자전거로 출근하는 사람)의 행렬로 가득했다. 출근시간대임에도 자전거 이용의 생활화와 정착된 시간제 근무 영향 덕인지 자전거와 자동차의 흐름은 원활했다.

덴마크는 고용률이 70%를 넘는(2011년 기준 73.2%) 유럽 국가 중에서도 모범적인 노동시장 환경을 갖춘 나라다. 덴마크를 비롯한 유럽연합(EU)은 2003년 고용전략으로 ‘시간제 일자리 확대’를 선택했고, ‘하르츠 개혁’으로 대표되는 독일은 미니잡(mini-job)과 같은 단시간·저임금 일자리를 통해 여성 고용률 증가에 성공했다.

하지만 덴마크는 기존의 고유한 고용시장 모델인 ‘유연안정성’(flexi-security) 탓인지 독일만큼의 즉각적이고 큰 변화는 없었다.

그럼에도 70%라는 이상적인 고용률과 이런 고용시장을 뒷받침하는 사회보장 시스템은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한국 정부가 분석하고 배워야 할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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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의 유연안정성 모델이란 사용자에게 노동자에 대한 해고의 자유를 보장해 노동시장을 유연화하는 동시에 해고자 및 실업자의 재취업을 적극적으로 돕고, 실업 상태에서도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하는 노동안정성을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덴마크에선 사용자가 노동자를 쉽게 해고해도 한국과 같은 노동조합의 반발을 거의 겪지 않는다. 실업급여 수준이 높은 데다 쉬운 해고만큼 재취업도 어렵지 않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덴마크의 노동시장은 연평균 30%대의 입직률과 이직률을 보이고 있다. 전체 노동자의 평균 근속 기간 역시 8년 안팎으로 ‘평생직장’ 개념이 강한 한국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다.

여기에 해고된 노동자는 2년간 전 직장 임금의 80%에 해당하는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어 노동자들도 해고에 대한 거부감을 거의 갖지 않는다.

이날 코펜하겐 취업정보센터에서 만난 요른 스텐베르(36)는 “두 달 전쯤 회사에서 인력을 줄이면서 해고됐는데 연말은 가족과 함께 보내고 다시 일할 수 있는 곳을 알아보러 나왔다”며 “해고가 쉽게 이뤄지는 만큼 다른 회사로 들어갈 기회 또한 많다”고 말했다.

‘쉬운 해고’의 성공 사례는 덴마크 대표 기업인 장난감 회사 ‘레고’에서도 찾을 수 있다. 덴마크 소도시 빌룬에 있는 레고사는 2004년 인터넷 게임의 강세 속에 위기를 맞았다. 당시 레고사는 1990년대 말부터 시작된 누적 적자로 미국 공장 문을 닫는 등 위기에 직면, 덴마크 본사 직원 8000여명 중 3500여명을 해고하는 등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덴마크에서 경영난에 따른 해고 통보는 재직 기간 기준으로 3~6개월 전에 미리 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같은 고용·해고 시스템으로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의 저항은 거의 없었다. 이후 레고사는 신제품 개발 등을 통해 경영 실적이 향상되자 다시 직원을 늘려 나갔다.

덴마크에는 사회안전망을 토대로 한 시간제 일자리도 정착됐다. 소득에서 세금으로 나가는 비율이 높지만 의료·교육 서비스가 무상으로 제공되고, 마을마다 유아 보육 시설이 잘 마련돼 남녀 구분 없이 다양한 연령층에서 시간제 일자리를 활용하고 있다.

코펜하겐 시립 도서관에서 시간제로 일하는 르네 베스터가드(42·여)는 “오전 9시까지 출근해 대출 도서 목록과 반납된 책을 정리하는 게 하루 일과”라면서 “오후 3시에 퇴근해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는데, 전일제 정규직 동료에 비하면 일을 적게 하는 만큼 임금을 적게 받을 뿐 회사 내 복지 혜택에서는 동등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유연한 노동시장의 배경은 1899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급속한 산업화 속에 덴마크 노동자들은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당시 사용자 단체와 맞섰고 이는 총파업으로 이어졌다. 이에 고용주 대표단과 노동자 대표단은 4개월에 걸친 협상에 들어갔고 대타협을 이루면서 현재의 고용모델 토대를 마련했다.

고용주는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하고 노동자 또한 사용자의 자유로운 경영활동을 보장하는 것이 대타협의 핵심이다.

몰텐 비어링 코펜하겐 취업정보센터 고용정책연구원(공공 일자리 담당)은 “덴마크의 독특한 고용시장 형태는 높은 세금을 바탕으로 한 복지정책이 근간을 떠받들고 있지만 사용자 단체와 노동조합이 서로 신뢰하면서 끊임없이 대화와 타협을 해 왔다는 점도 중요한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취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지하철 역. 평일 오후 3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지만 열차 안은 승객들로 가득했다. 이들 대부분은 오전 8~9시쯤 출근했다가 귀가하는 시간제 노동자들이라는 게 현지 관계자의 전언이다.

글 사진 코펜하겐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2014-01-09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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