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길] 섬진강 꽃길

[꽃길] 섬진강 꽃길

입력 2011-06-19 00:00
업데이트 2011-06-19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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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꽃길 눈부신 백리

이름만 들어도 그리움이 쌓이는 섬진강! 봄이 오면 내 영혼은 섬진강변에 피는 꽃들에게 영락없이 사로잡히고 만다. 아무리 비발디 <사계>의 선율이 아름답고, 요한 시트라우스의 <봄의 소리>가 곱다고 하지만 섬진강변에 울려 퍼지는 꽃들의 사중주에 비기랴! 어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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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나는 봄이 오면 섬진강으로 가는 남행열차를 서둘러 타곤 하다가 작년부터는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섬진강변에 귀농을 하여 아예 눌러 앉고 말았다. 하루 이틀 섬진강 꽃길에 머무는 것은 감질만 나서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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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남도의 섬진강변에는 동백을 시발로 매화, 산수유, 벚꽃들이 차례로 기지개를 펴며 꽃들의 향연을 펼치기 시작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개나리, 진달래, 배꽃을 비롯하여 5월의 철쭉에 이르기까지 봄꽃들이 덩달아 피어나 섬진강 백리 길에는 숨 돌릴 틈도 없이 굽이굽이 꽃길 대장정이 펼쳐진다. 그중에서도 구례 산수유, 광양 매화, 하동 벚꽃은 섬진강 꽃길을 장식하는 대표적인 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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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들어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꽃이 피는 순서가 뒤죽박죽 바뀔 때도 있다. 그러나 제아무리 예상치 못한 동장군이 기승을 부려도 껍질을 벗고 터져 나오는 꽃들의 기세는 도저히 꺾을 수 없다. 그래서 봄을 ‘Spring’이라고 했나 보다. 막아도 막아도 용수철처럼 마구 튀어 나오는 봄꽃들의 꽃망울을 그 누구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뜻한 햇볕과 포근한 바람만 스치면 봄꽃들은 여기저기서 마구잡이로 꽃망울을 터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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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은 섬진강 꽃들을 깨우는 화신 역할을 한다. 눈이 내리는 겨울 제주에서 꽃망울을 터트린 동백은 바람의 신 제피로스의 입김을 타고 다도해에 잠시 머물다가, 여수 오동도를 거쳐 백계산 옥룡사 동백림에 점화를 하고 백운산을 넘어 섬진강으로 넘어온다.

옥룡사지를 중심으로 2만여 평의 동백림에는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동백나무가 층층이 우거져 있다. 아직 인간의 손때가 묻지 않은 동백 숲에는 찌이찌이 울어대는 동박새 소리가 바람에 흩어지며 정적을 깬다. 옥룡사 동백은 섬진강에서 그리 멀지가 않다. 자동차로 30분이면 족히 닿는다. 그러나 백계산 동백을 돌아볼 시간이 없다면 화엄사 각항전 뒤뜰에 한들거리는 동백도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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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는 사군자 중에서도 선비정신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꽃이다. 3월이 오면 잎이 나기도 전에 꽃망울을 터트린 매화는 온통 눈을 뿌려놓은 듯 섬진강변을 뒤덮는다. 화개장터에서 남도대교를 건너 861번 지방도로를 따라가면 팝콘처럼 툭툭 피어난 매화꽃 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소녀의 가녀린 허리처럼 청아하고 푸른 섬진강에 아름다운 수를 놓은 매화꽃은 다압면 일대 홍쌍리 여사의 ‘청매실농원’에 이르면 그 절정을 이룬다. 3월 중순, 광양 다압면 인근 40만여 평 대지에 심어진 100만여 그루의 매화나무는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일시에 꽃망울을 터트려 순식간에 별천지로 바꾸어 놓고 만다. 매화꽃 사이로 빼곡히 세워놓은 청매실농원의 2,500여 개 장독대와 바로 그 너머로 눈앞에 펼쳐진 푸른 섬진강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누구나 넋을 잃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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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부터 매화는 불의에 굴하지 않는 지조 높은 선비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문인화가 강희안은 <양화소록(養花小錄)>에서 꽃의 품등을 매기며 매화를 제1품으로 꼽았다. 4군자(매화·난초·국화·대나무) 중에서도 매화를 제일로 친 것이다. 희디 흰 매화꽃에 둘러싸여 푸른 숲을 이루고 있는 청매실농원의 대나무 숲은 매화와 어울려 4군자의 고고한 아름다움을 한껏 높여주고 있다. 과연 매화 향기 속에 하늘로 죽죽 뻗어 올라간 왕대나무 숲은 영화 <서편제> <취화선> <천년학> 촬영지로 사용될 만한 아름다운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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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꽃이 아름다운 자태 못지않게 더욱 매력을 끄는 것은 마음속까지 은근히 파고드는 그윽한 매화 향이다. 매화 향기를 제대로 음미하려면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만큼 마음을 가다듬고 귀로 들어야만 한다. 선비, 시인, 묵객들이 매화를 지극히 사랑하는 것도 바로 이 매화의 은은한 향기에 있다.

산수유는 마치 탁구공만한 노란 댕기를 달고 샛노랗게 피어난다. 구례군 산동면 위안리 하위마을과 상위마을의 ‘산수유마을’은 지리산 만복대(1,433m) 남서쪽 골짜기에 들어서 있는 국내 최대의 산수유 단지다. 봄이 오면 이곳 산수유마을은 전체가 노란색 수채화 물감을 뿌려놓은 듯 온통 산수유 꽃으로 뒤덮여 마치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마을로 변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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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노란 산수유에 한껏 취하고 싶다면 하위마을 부근에 차를 세워두고 걸어서 상위마을까지 천천히 둘러보는 것이 좋다. 양지 바른 돌담길과, 산수유꽃 늘어진 계곡을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을 바라보노라면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는 분위기에 젖어들고 만다. 상위마을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마을 풍경도 놓칠 수 없는 절경이다. 병풍처럼 둘러싸인 지리산 자락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과 계단식 다랑 논밭, 그 위를 노랗게 물들인 산수유의 물결은 과히 환상적인 장면이다.

이곳에 산수유가 전래된 전설도 재미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천년 전, 중국 산동성에 사는 처녀가 구례 산동면으로 시집을 올 때 처음으로 산수유나무를 가져다 심은 데서부터 사람들은 이곳에 산수유를 키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을 이름도 산수유를 전해준 처녀의 고향을 따서 ‘산동’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구례군 산동면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산수유 시목이 지정되어 지금까지 마을을 지키고 있다.

섬진강 벚꽃 백리 길! 서둘러 피었던 매화가 지고 산수유꽃이 그 색을 바랠 무렵, 하동포구에서 구례에 이르는 19번 국도 백리 길에는 또 다른 꽃잔치로 바빠진다. 4월 초순이면 섬진강을 따라 구례 곡성까지 무려 100리에 걸쳐 벚꽃이 길게 터널을 이루며 상춘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바로 이 길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19번 국도 벚꽃길이다.

남원 밤재 터널을 지나 구례에서 화개장터로, 곡성 인터체인지에서 빠져나와 섬진강을 따라 화개장터로, 하동인터체인지에서 하동포구를 따라 화개장터로…. 그 어느 길로 가든 이어지는 19번 도로는 화개장터에서 벚꽃 터널의 정점을 이룬다. 몇 백 년을 묵었을 벚꽃 터널을 지나다 보면 정신마저 아득해진다. 이 길은 차를 타고 지나가기엔 너무 아까운 길이다. 어차피 꼬리를 물고 늘어선 자동차로 주차장을 이루고 있는 길에 서 있을 바에는 차라리 걸어서 가는 것이 더 좋으리라.

19번 국도 벚꽃 길의 중심은 단연 화개장터에서 쌍계사로 이어지는 벚꽃 십리 길이다. 조영남의 <화개장터>란 노래로 더욱 유명세를 탄 ‘화개(花開)’는 글자 그대로 꽃길이 열린다는 말이다. 이 꽃길은 너무나 아름다워 ‘혼례길’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벚꽃에 가려 하늘도 보이지 않는 벚꽃 터널을 걷다보면 세상 모든 시름을 절로 잊게 된다.

벚꽃 길 사이로 문득문득 비치는 푸른 녹차 밭은 서정적인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굽이굽이 지리산 자락을 돌아가는 섬진강변에 펼쳐진 연분홍 벚꽃 터널, 그리고 벚꽃 터널 사이사이로 보이는 푸른 녹차 밭은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절경이다. 봄이 오면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꽃을 만날 수가 있다. 그러나 지리산을 휘감아 돌며 점점이 이어지는 섬진강 꽃길은 그 어디에서도 만나기 어려운 아름다운 길이다. 동백도, 매화도, 산수유도, 벚꽃도… 푸르고 맑은 섬진강이 있기에 더불어 아름다운 것이다.

동백의 붉은 꽃잎에 입 맞추고, 산수유 샛노란 질감으로 옷 갈아입고, 은은한 매화향기로 분 발라 화장을 하고, 벚꽃 백리 길을 걷다보면 당신의 영혼도 영락없이 섬진강 꽃길에 사로잡히고 말 것이다. 그러니 이 봄이 가기 전에 부디 놓치지 마시고 섬진강 꽃길을 한번 걸어보시라.

글·사진_ 최오균 오지여행가 《사랑할 때 떠나라》 저자

※최오균 씨는 지난해 6월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아내와 함께 섬진강변으로 귀농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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