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이 봉건 세습왕조? 현대적 카리스마 국가!

北이 봉건 세습왕조? 현대적 카리스마 국가!

입력 2013-02-16 00:00
업데이트 2013-0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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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국가 북한/권헌익·정병호 지음 창비 펴냄

북한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북한을 상수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레짐 체인지(정권교체)니 뭐니 해서 북한을 변수로 만들려고 하는 것은 북한 체제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극장국가 북한’(권헌익·정병호 지음, 창비 펴냄)은 꼭 한 번 읽어볼 만한 책이다. 상수로서의 북한이 어떤 체제인지 꼼꼼하게 짚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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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저자들은 현장 연구를 통해 한 사회의 중층적인 결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이는 인류학자다. 국가가 신화적 연출을 통해 어떻게 사회를 회유하는지, 사회는 그 신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화하는지, 이 간섭현상이 어떻게 그 사회 밑바닥 모래톱에 침전돼 흔적을 남기는지 깊이 있게 서술하고 있다. 문화적 분석을 이론적으로 아주 두텁게 묘사해 나가는 방식이다 보니 다양한 관점을 한데 끌어모아 놓아 읽는 맛이 아주 좋다.

그런데 북한은 특성상 현장 연구가 안 된다. 이건 단점이자 장점이다. 단점은 인민의 반론권이 허용되지 않다 보니 북한 체제가 일단은 성공했다고 가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3대 세습에 이어 3차 핵실험까지 성공한 마당에 현실적으로 그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지만 약점임은 분명하다. 장점은 그래서 서술이 한층 쉬워졌다. 이는 베트남전 양민학살 문제를 다룬 권헌익의 전작 ‘학살 그 이후’(휴머니스트아카이브 펴냄)와 비교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베트남에서는 현장 연구가 가능하다 보니 현지 주민들의 반론권이 충분히 반영됐고, 그래서 서술이 입체적이고 풍부한 것만큼 복잡해졌다.

그 다음 ‘극장국가’ 개념. 클리퍼드 기어츠가 19세기 발리 왕국 연구에서 제시했다. 인도네시아 현대정치의 기원을 찾다 도달한 결론이다. 기어츠는 “국가권력은 강제적인 힘(관료, 군대, 경찰)의 독점이라고 정의한 베버의 고전적 논지에 의문을 제기하고 정치권력에 대한 개념을 다원화”하는 것이었다. 정치적 권위라는 것은 처벌의 공포뿐 아니라 “왕이 사회와 우주의 중심임을 주기적인 의식을 통해 과시하는 것에 기반을 두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쇼를 한다는 것인데, 쇼란 스펙터클이다. 상징적 스펙터클을 제시함으로써 전 인민이 박수치도록 하는 것이 극장국가다.

그래서 저자들이 보기에 북한은 봉건적 세습왕조가 아니라 현대적 카리스마 국가다. 여기서 막스 베버를 한 번 더 불러낸다. 알려졌듯 베버는 정치적 권위를 전통적·카리스마적·합리적 권위로 나눴다. 카리스마적 권위는 혼란의 시대에 한 번 나오고 곧 합리적 권위로 대체된다. 어떻게 보면 레닌, 마오쩌둥의 소련과 중국이 걸어간 길도 이 길이다. 북한은 이걸 뒤집었다. 개인적 카리스마를 세습시켰다. 이 부분은 기어츠와 베버의 주장, 북한 전문가 와다 하루키의 해석과 조금 다른 저자들의 해석, 탈사회주의 분석은 서구 중심이라 제3세계 국가의 탈식민적 열망에 대한 배려가 빠졌다는 주장 등이 교차하면서 책의 등뼈를 이루는데 이론적 논의니까 여기서 멈추자.

가장 흥미롭게 읽히는 부분은 만주 빨치산 경험의 특권화다. 그게 얼마나 정치적으로 부풀려졌느냐보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에 집중한다. 2002년 10만명의 대중을 동원하는 거대한 쇼로 처음 공개된 ‘아리랑축전’이 한 예다. “놀랍게도 기독교 구약에 등장하는 엑소더스라는 구원의 미학과 흡사한, 추방된 삶 속에서 구현되는 해방의 예언적 진리”를 그려 보이는 이 스펙터클의 기원은 1971년 ‘피바다’, 1972년 ‘꽃 파는 처녀’에 있다. 김일성의 만주 빨치산 시절을 그려낸 이 두 작품은 김정일이 기획한 혁명가극이다. 김정일은 1974년 후계자로 지명된다.

이 일련의 과정은 만주 빨치산 경험을 건국 신화로 만드는 작업이다. 김일성 세력은 다른 수많은 세력을 숙청하고 권력을 장악했다. 자신들만의 만주 빨치산 경험을 특권화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김정일이 혁명 가극 형식으로 그 시절 경험을 신화화했다는 것은, 역사적 경험을 자신이 이어받겠다는 정치적 선언이다. 김정일이 젊은 시절 문화에 지극한 관심을 보였다는 것은 예쁜 여배우들을 희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주의체제 정치지도자로서 공적인 임무를 수행”한 것이란다. “정치지도자로서 이상한 특징”이거나 “비뚤어진 집착”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는 다른 부분에서도 잘 드러난다. 북한엔 남한의 현충원 같은 곳이 없다. 북한 입장에서야 쓴맛을 본 것이지만, 어쨌든 가장 많은 희생을 치른 조국해방전쟁이 아니던가. 가장 장엄한 추모시설 ‘혁명렬사릉’엔 딱 혁명 1세대, 그러니까 만주 빨치산 시절 인물들만 묻혀 있다. 물론 한국전쟁 전사자를 기념하는 ‘조선인민군렬사탑’도 있다. 그런데 이 두 기념물은 속된 말로 레벨이 다르다. ‘혁명렬사릉’은 김일성의 권고와 조선노동당의 결의로 1954년 한국전쟁 직후 조성됐다. 반면 ‘조선인민군렬사탑’은 1959년에 가서야, 그것도 최고인민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세워졌다. 그러니까 미제를 물리친 경험은 일제를 물리친 경험에 종속되는 것이다. 다른 그 어떤 자랑거리라도 그것은 오직 “만주 빨치산의 유산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현대적 배경”으로만 쓰일 뿐이다.

이는 김정은에게도 연결된다. 김정은에게 단계적으로 권력을 이양해 주는 작업에 착수한 2010년 김정일이 집중적으로 방문한 곳은 중국 동북부 빨치산 근거지였다. 여기서 후진타오와 시진핑 등 중국 핵심 지도부를 만났다. 후계자의 정통성과 북·중 관계 함의에서 봤을 때 의미심장한, 또 하나의 스펙터클 연출이다. 그래서 아무리 못마땅해도 북한은 상수다. 2만원.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2013-02-16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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