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다산이 그 ‘다산’이냐구요? 선조의 깊은 뜻만 있다면 명품!

이 다산이 그 ‘다산’이냐구요? 선조의 깊은 뜻만 있다면 명품!

안동환 기자
안동환 기자
입력 2017-05-10 01:00
수정 2017-05-10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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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번역원 한문 해석 서비스 10주년…진품 판정 않지만 귀한 사료·문화 발굴

이 다산이 그 ‘다산’(茶山)일까. 지난해 가을 무렵 한국고전번역원에 한지에 쓰인 짤막한 간찰(편지) 내용을 번역해 달라는 의뢰가 들어왔다.

초서(草書)로 쓰인 내용을 탈초(脫草·초서체를 정자체로 바꾸는 작업)했더니 비로소 해석이 가능해졌다.

‘너의 편지를 보고 또 네 스승의 글을 받아 보니/이 봄날에 모두 별고 없다는 것을 알겠다/기쁘고 위로하는 마음 헤아리기 어렵다/내 병은 늘 그렇다. 역시 갖추지 못한다’
다산 정약용이 아들에게 쓴 간찰(편지)로 추정되는 유묵(왼쪽)과 독립운동가인 고당 조만식의 친필 글씨로 추정되는 유묵. 당나라 왕유의 6언 연작시 ‘전원락’의 일부를 쓴 글로, 두 구절은 붙어 있는 한 쌍이 아닌 각각 다른 시의 한 구절로 확인됐다. 소장 과정에서 뒤섞인 것으로 추정된다(오른쪽). 한국고전번역원 제공
다산 정약용이 아들에게 쓴 간찰(편지)로 추정되는 유묵(왼쪽)과 독립운동가인 고당 조만식의 친필 글씨로 추정되는 유묵. 당나라 왕유의 6언 연작시 ‘전원락’의 일부를 쓴 글로, 두 구절은 붙어 있는 한 쌍이 아닌 각각 다른 시의 한 구절로 확인됐다. 소장 과정에서 뒤섞인 것으로 추정된다(오른쪽).
한국고전번역원 제공
●‘다산’ 인장 편지엔 짧지만 짧지 않는 父情 담겨

병들어 타지에 있는 아비가 아들의 편지와 아들 스승이 쓴 글을 받아 본 모양이다. 편지 맨 끝의 ‘갖추지 못한다’는 조선 시대의 ‘이만 줄인다’는 표현이다. 편지 끝에는 ‘다산’(茶山)이라는 인장이 찍혀 있다. 하지만 이 편지의 주인공이 다산 정약용(1762~1836)인지는 알 수 없다. 한국고전번역원이 의뢰자가 소장 중인 간찰의 진품 여부는 판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성두(55) 한문고전 자문서비스 연구원은 “짧은 답장이라고 아버지의 사랑이 결코 짧지는 않을 것이고, 글자 한 자 한 자가 천근의 무게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한국고전번역연구원이 2008년부터 일반인 등을 대상으로 제공해 온 한문고전 해석 서비스가 10년을 맞았다. 지난 4월 말 현재까지 해석 의뢰 건수는 1만 3000건을 돌파했다. 의뢰작 대부분은 초서로 쓰여 그 뜻을 알기 어려운 족자와 병풍, 편액, 간찰, 각종 기문 내용 등이다. 집안 대대로 내려온 ‘가보’나 중국인으로부터 선물받은 작품도 있고, 문중이나 박물관이 소장 중인 작품도 있다. 작품 중 판독 난도가 꽤 높은 경우에는 번역원에서 초서 해제를 조언하는 한학자 학산(學山) 노상복(82) 선생이 직접 해석을 하기도 한다.

●의뢰작 1만여건… 퇴계 이황 친필 한시 발견도

지난 10년 동안 새로 발굴된 귀중한 사료도 적지 않다. 2011년에는 퇴계 이황(1501~1570)의 친필 한시 작품이 발견됐고, 지난해에는 고당 조만식(1883~1950) 선생이 당나라 왕유의 6언 연작시 ‘전원락’을 쓴 친필 글의 해석이 의뢰됐다. 2015년에 신분을 밝히지 않은 의뢰인이 요청한 작품은 조선 중기 영의정을 다섯 차례나 지낸 오리(梧里) 이원익(1547~1634)의 친필로 드러났다.

노 연구원은 ‘박씨부이유인행략’이라는 제목의 열 폭 병풍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함양의 박종수에게 시집간 이씨 부인의 일생을 남동생이 한자로 쓴 병풍인데, 그 내용 중 ‘지난 경인년에 큰 난리’라는 표현이 들어 있다. 1950년 6·25전쟁을 가리킨 표현으로, 을축년(1985)에 쓴 글이었다.

노 연구원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목전에 둔 시점까지도 한문으로 글을 짓고, 그 글씨로 병풍을 만드는 문화가 존재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어 놀라웠다”고 말했다.

정확한 내막을 알기 어려운 유물도 있다. 한 사설 박물관이 다산 정약용이 쓰던 벼루라며 그 밑바닥에 쓰인 한시의 해석을 요청했다. 뜻을 풀고 보니 그 시는 조선왕조실록 정조 14년 경술 10월 22일자 기사에 중국 건륭제가 내린 선물 목록과 함께 적힌 한시인 것으로 드러났다.

노 연구원은 “청나라 건륭제의 시가 어떤 연유로 다산이 쓴 시로 둔갑한 것인지, 정말 다산이 소장한 벼루인지 아닌지 여전히 궁금하다”며 “진위를 가리지는 않지만 집이나 문중에 있는 옛 유묵과 그림, 간찰 등은 선조들이 쓴 의미를 알 때 비로소 감동을 느끼고 자신만의 명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2017-05-1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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