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흐름에 뒤처진 칠레 한가족의 일상

시대 흐름에 뒤처진 칠레 한가족의 일상

입력 2013-02-07 00:00
업데이트 2013-0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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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금요극장 ‘후아초’

도시에서 떨어진 칠레의 시골 마을. 할아버지와 할머니, 엄마, 손자까지 네 명의 가족이 오순도순 살아간다. 할머니는 치즈를 만들어 도로변에서 팔고 엄마는 관광농원 주방에서, 할아버지는 큰 농장 일꾼으로 일한다. 손자는 시내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닌다. 영화는 커다란 사건 없이 가족의 일상을 쫓는다. 할머니는 이웃 농장에서 우윳값을 올린다는 소리에 치즈 가격을 올린다. 하지만 영리한 도시 사람들은 가격이 비싸다며 지갑을 열지 않는다. 엄마는 밀린 전기료를 내려고 제대로 입어보지도 못한 원피스를 환불한다. 손자는 반 친구의 게임기가 부럽기만 하다. 할아버지는 종일 이런저런 옛날 얘기를 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이른 아침을 먹고 뿔뿔이 흩어진 가족은 저녁 무렵 함께 돌아와 식사한다. 그렇게 평범한 하루는 끝난다.

‘후아초’의 영화 속 아낙네들은 직업배우가 아닌 칠레 시골마을 사람들이다. EBS 제공
‘후아초’의 영화 속 아낙네들은 직업배우가 아닌 칠레 시골마을 사람들이다.
EBS 제공


8일 밤 12시 EBS 금요극장에서 방영하는 ‘후아초’는 칠레에서 ‘나쁜 녀석’이라는 속어로도 쓰이지만, 영화의 배경이 되는 칠리안 지역에서는 버려진 물건이나 사람들을 뜻하기도 한다. 제목처럼 영화 속 가족은 시대 흐름을 쫓아가지 못한 사람들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옛날처럼 대지주의 농장에 의지해 살아가고, 딸은 관광객을 상대하는 관광농원 주방 직원으로 일한다. 반면 손자만 도시 학교에 다니며 컴퓨터, 게임기를 접한다. 낙후된 구세계와 빠르게 변해가는 신세계의 경계 속에 끼인 사람들.

별다른 자본이나 지식, 토지가 없는 가족은 고된 노동으로 생계를 잇는다. 이들에게 노동은 충분한 보상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영화는 이들의 비참한 생활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네 사람의 평범한 하루를 따라가며 세상이 이들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

알레한드로 페르난데즈 알멘드라스 감독은 2003년에 만든 첫 단편 ‘라 오프렌다 ’(제물)가 여러 국제 영화제에 출품되면서 주목을 받았다. 그는 이때부터 일반인을 배우로 기용했다. ‘후아초’의 주인공 역시 보통사람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소작농 캐릭터의 전형성을 피하고 싶었다는 게 감독의 설명이다. 일하는 사람들의 영화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노동하는 장면을 담으려는 뜻도 있었다. 감독은 태어나고 자란 칠리안 지역에서 모든 장면을 찍었다. 영화에서 가족이 사는 집은 할머니로 출연한 클레미라가 25년째 사는 집이다. 관광농원 주인으로 출연한 마리아는 영화에 등장한 관광농원의 진짜 주인이다. 2009년작 ‘후아초’는 알멘드라스 감독의 첫 장편영화다. 선댄스영화제에서 NHK상을 받았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2013-02-07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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