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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카 ‘제로니모’ 4년여 끈질긴 법정 투쟁도 헛되이 안락사

알파카 ‘제로니모’ 4년여 끈질긴 법정 투쟁도 헛되이 안락사

임병선 기자
입력 2021-09-01 11:41
업데이트 2021-09-01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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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정부가 고용한 수의사들이 31일(현지시간) 잉글랜드 글로체스터셔주 우턴 언더 엣지의 모처에서 알파카 ‘제로니모’를 안락사시키기 위해 트레일러에 싣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 우턴 언더 엣지 PA AP 연합뉴스
영국 정부가 고용한 수의사들이 31일(현지시간) 잉글랜드 글로체스터셔주 우턴 언더 엣지의 모처에서 알파카 ‘제로니모’를 안락사시키기 위해 트레일러에 싣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
우턴 언더 엣지 PA AP 연합뉴스
영국 정부와 법적 논란을 벌이는 등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알파카 ‘제로니모’가 끝내 지난 31일(이하 현지시간) 안락사됐다고 AP 통신과 BBC 방송이 전했다.

런던에서 서쪽으로 175㎞ 떨어진 윅워의 농장에서 식품환경농촌생활부(DEFRA)가 고용한 수의사들이 제로니모를 우리에서 끌어내 독극물 주사로 목숨을 빼앗았다. 파란색 방호색을 입고 마스크와 고글까지 쓴 수의사들이 브리스톨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이곳 농장에서 경찰의 경호를 받으며 안락사를 진행했고, 수십명의 동물권리 활동가와 기자들이 몰려와 지켜봤다.

제로니모가 두 차례 검진 결과 국내에서도 법정 2종 가축전염병으로 분류된 소결핵병(Bovine tuberculosis) 양성 반응이 나와 안락사가 결정됐다. 소유주 헬렌 맥도날드는 거짓된 결과라며 세 번째 검사를 요구했고 여러 수의사가 그녀 편에 섰으나 이달 초 고등법원이 그녀의 청원을 기각하는 바람에 애지중지하던 반려동물을 잃었다. 맥도날드는 “이 정부에 구역질이 난다. 이런 잔인한 짓을 하다니”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며칠 전부터 반대하는 이들이 캠핑을 하면서 맥도날드의 편이 돼 싸웠는데 한 여성이 경찰관에 스프레이 최루탄을 뿌려 체포됐다.

살처분에 반대하는 온라인 청원에 전 세계에서 14만명 이상이 서명했다. 국내 ‘동물의 왕국’에 많이 소개된 BBC의 ‘와일드라이프’ 진행자 크리스 팩험, 보리스 존슨 총리의 부친 스탠리도 맥도날드 편에 섰다. 총리실은 별도의 성명을 내 농민들의 슬픔에 공감한다면서도 살처분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선을 분명히 그었다.
알파카 ‘제로니모’를 안락사로부터 구해내기 위해 4년여 법정 투쟁을 끈질기게 벌인 주인 헬렌 맥도날드가 정부 수의사들이 제로니모를 데려간 뒤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하며 황망한 표정을 짓고 있다. 윅워 PA AP 연합뉴스
알파카 ‘제로니모’를 안락사로부터 구해내기 위해 4년여 법정 투쟁을 끈질기게 벌인 주인 헬렌 맥도날드가 정부 수의사들이 제로니모를 데려간 뒤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하며 황망한 표정을 짓고 있다.
윅워 PA AP 연합뉴스
이에 대해 맥도날드는 제로니모가 “완벽하게 건강했다”며 “보리스(총리)가 함께 아파하는 것처럼 하는 것 같은데 그 따위 동정은 필요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소결핵병은 목장에서 자라는 소 등을 폐사시켜 농가 소득에 타격을 입힌다. 이에 따라 영국에서는 지난 10여년 이 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양성 반응이 나온 동물들을 살처분하는 관행을 이어왔는데 동물권 단체 등으로부터 잔인한 조치라는 반발을 들어왔다. 지난해에만 살처분된 소들이 2만 7000마리에 이른다. 지난해 낙타와 리마, 알파카 등 낙타과(camelid) 205마리도 비운을 맞았다.

제로니모는 뉴질랜드에서 2017년 8월 맥도날드의 눈에 띄어 영국으로 왔다. 같은 달과 11월에 두 차례나 양성 반응이 나와 목장 내 다른 동물들과 격리돼 지내기 시작했다. 이듬해 7월 정부는 다음달 말일까지 살처분하라는 명령을 얻어냈다. 하지만 맥도날드는 법정투쟁을 벌여 끈질기게 싸웠다. 법정 싸움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다 드디어 이날 마침표를 찍었다.

영국 수의사협회의 크리스틴 미들미스 최고경영자(CEO)는 “끔찍한 상황이며 이렇게 황망한 질병에 영향을 받은 모든 동물들의 명복을 빈다”면서 “피할 수만 있다면 누구도 감염된 동물들을 살처분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과학적 증거를 따를 필요가 있으며 이 방심할 수 있는 질병이 최소한 확산되도록 하며 이 나라의 동물 건강에 커다란 위협을 제거할 수 있도록 소결핵병 양성 반응이 나온 동물들을 살처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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