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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통도 도자기인 이곳서…‘차이나’가 열렸다

쓰레기통도 도자기인 이곳서…‘차이나’가 열렸다

이창구 기자
이창구 기자
입력 2016-12-16 21:08
업데이트 2016-12-16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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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의 고향 도자기의 수도 징더전을 가다

차이나(China)는 ‘중국’과 ‘도자기’를 동시에 일컫는 말이다. 당나라 때 창난전(昌南鎭·창남진)에서 생산된 아름다운 자기가 유럽 곳곳으로 수출됐는데, 유럽인들은 이 도자기를 ‘창난’으로 불렀다. 당시 유럽에서는 자기를 굽지 못했다. 유럽 귀족들은 ‘창난’을 구하는 데 혈안이 됐다. ‘창난’이 인구에 회자되는 와중에 ‘차이나’로 변음됐고 ‘차이나=도자기=중국’이란 개념이 형성됐다고 이곳 사람들은 주장한다.

중국 장시성 징더전시가 옛날 도자기 공장을 그대로 살려 도자기 생산, 판매, 전시 공간으로 조성한 타오시촨의 야경. 타오시촨은 징더전 도자기 생태계의 핵심 공간이다.
중국 장시성 징더전시가 옛날 도자기 공장을 그대로 살려 도자기 생산, 판매, 전시 공간으로 조성한 타오시촨의 야경. 타오시촨은 징더전 도자기 생태계의 핵심 공간이다.


옛 도자기 공장 건물을 그대로 쓰고 있는 타오시촨 거리 모습. 붉은 건물 안에는 저마다 도자기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스튜디오가 입주해 있다.
옛 도자기 공장 건물을 그대로 쓰고 있는 타오시촨 거리 모습. 붉은 건물 안에는 저마다 도자기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스튜디오가 입주해 있다.


도자기 스튜디오 창문 너머로 전시된 도자기들이 보인다.
도자기 스튜디오 창문 너머로 전시된 도자기들이 보인다.


장시성 정부 초청으로 징더전을 방문한 각국 기자들이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체험을 하고 있다.
장시성 정부 초청으로 징더전을 방문한 각국 기자들이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체험을 하고 있다.


창난전은 현재 중국 장시(江西)성 징더전(景德鎭·경덕진)의 옛 이름이다. 창난전 도자기를 아꼈던 송나라 진종(眞宗)은 서기 1004년 즉위와 동시에 연호를 ‘징더’(경덕)로 정하고, 이 연호를 창난의 지역 명칭으로 하사했다. 이후 징더전 자기는 황실에서만 사용됐다. 황산(黃山)의 품에 안겨 창장(長江·양쯔강)의 젖을 빨고 있는 징더전의 도자기석(石)과 고령토(高嶺土)는 한나라 도공들이 이곳에서 자기를 빚기 시작한 이후 2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세계 최고의 도자기 원료로 꼽혀 왔다.

지난 1일 장시성 정부는 서울신문을 포함해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외국 언론사 특파원 40여명을 징더전으로 초대해 중국 도자기의 세계를 보여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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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식 가마·현대식 공장만 1000여개

징더전시는 인구가 150만명으로 중국 내에서는 그리 크지 않은 도시다. 그러나 징더전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이곳이 왜 세계 ‘도자기의 수도’로 불리는지 알 수 있다. 150만명 중 50만명이 도자기 산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1만여명의 도예가들이 이들과 교류하고 있다. 도자기 전문 학교와 대학 및 연구소가 1400개에 이르며, 국공립 및 사립 도자기 박물관도 100개가 넘는다. 전통 방식의 도자기 가마와 현대식 도자기 공장은 어림잡아 1000여개에 이른다고 한다. 시내 상점의 대부분이 도자기 가게다. 거리의 쓰레기통까지 모두 도자기로 이뤄진 그야말로 ‘도자기 천하’이며 세계 제1의 요업 도시이다.

특히 과거 도자기 공장 단지를 그대로 활용해 13만㎡ 규모로 2011년에 조성한 ‘타오시촨’(陶溪川·도계천)은 징더전 도자기가 생산되고 전시되고 판매되는 핵심 공간이다. 작은 개울이 모여 큰 하천을 이루듯 울창한 ‘도자기 생태계’를 조성한다는 뜻이다. 붉은 벽돌의 옛 공장 외관과 도공들의 손때가 묻은 온갖 시설물은 그대로 둔 채 공장 내부를 모두 현대식 도예 스튜디오로 개조했다.

석탄을 버리던 폐기물 처리장은 분수 쇼가 펼쳐지는 연못으로 바뀌었다. 밤이면 화려한 불빛이 켜지는 높은 공장 굴뚝과 스튜디오 창문으로 보이는 온갖 자기의 자태가 황홀한 야경을 연출한다. 매주 토요일이면 타오시촨의 거리는 도자기 야시장으로 바뀐다.

징더전시는 타오시촨의 스튜디오를 세계 각국의 도예가와 학생들에게 무료로 대여해 주고 있다. 스튜디오는 도자기 생산은 물론 판매, 전시 및 박물관 기능까지 한다.

●징더전의 한국인들 “정치도 언어도 필요 없는 곳”

타오시촨은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도자기 3대 강국인 한·중·일에서 온 디자이너가 타오시촨의 설계를 맡았는데, 한국의 대표적인 건축가 승효상씨가 최고 책임자였다. 타오시촨 단지를 관리하는 도자기문화관광발전공사 류즈리(劉子力) 사장은 “이곳 건축물 중 승효상 선생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면서 “그가 디자인한 공간에서 한·중 도예가들이 꿈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류 사장은 또 “도자기에는 정치도, 외교도, 언어도 필요 없다”면서 “한·중 관계의 부침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곳이 바로 징더전”이라고 덧붙였다.

타오시촨에서 만난 한국 도예가 김순식씨는 이천과 징더전을 오가며 도자기를 굽고 있었다. 김씨는 “한 해는 이천에서, 한 해는 이곳에서 작품 활동을 한다”면서 “세계 각국의 도예가들과 교류할 수 있고, 임대료 없이 작업장을 운영할 수 있어 징더전으로 더욱 많은 도예가들이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탈리아에서 온 한 도예가는 “징더전은 도예 선진국인 중국과 한국, 일본의 장점을 한꺼번에 배울 수 있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타오시촨은 ‘이쿵젠’(邑空間)이라는 대학생들만의 공간도 있다. 이 건물에는 3000여명의 도예 전공 대학생들이 운영하는 가게 83개가 들어서 있다. 물론 임대료는 무료다. 하지만 3개월마다 판매 실적을 평가해 입점하는 대학생을 교체한다.

이쿵젠에 입점한 한국 유학생 유시형씨는 “징더전의 가장 큰 장점은 분업”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선 한 사람이 모든 과정을 다 해야 하지만, 징더전은 빚기, 그림 그리기, 조각, 유약 바르기, 굽기 등이 모두 분업화됐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학에도 각 과정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학과가 세분화됐다. 유씨는 “한국에서 한 달 걸리는 작업이 이곳에선 일주일이면 끝난다”면서 “원가는 한국의 10분의 1인데, 판매가는 비슷해 수익도 많이 난다”고 설명했다.

●‘유물 파괴’ 문화대혁명 때도 도자기 산업은 건재

징더전에서 가장 큰 박물관인 7층 건물의 ‘도자기 박물관’은 징더전 도자기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당대 이후 황실에 진상됐거나 세계 각지에 수출된 자기 3만여점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한국으로 치면 모두 다 국보급인데, 그중 원나라 때의 ‘청화매병’(靑花梅甁)이 최고의 가치를 지닌다고 한다. 박물관 관계자는 “자기가 만들어진 시대 및 그림의 예술성, 자기의 빛깔로 보면 청화매병을 넘어서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의 자기는 수천 점씩 보존된 반면 청화매병은 200여점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의 다른 전통 유물들이 박물관에 박제화된 것과 달리 도자기는 중국 역사와 지금도 함께 호흡하고 있다. 심지어 전통 유물을 무자비하게 파괴한 문화대혁명 시기에도 도자기 산업은 더욱 발달했다. 물론 이 시기 도자기들은 마오쩌둥의 얼굴과 혁명 구호를 그려 넣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타오시촨 도자기 거리에는 전통 자기 예술을 구현하려는 도예가는 물론 일상생활에서 쓰는 현대 도기 제품을 생산하는 장인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들 틈바구니에서 3D(3차원) 프린터로 도자기를 척척 찍어 내는 젊은 창업가들도 있었다. 3D 프린터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리리췬(李立群)은 징더전 최고의 명문인 징더전 도자대학 4학년 학생이었다. 그는 “도자기처럼 3D 기술과 어울리는 제품도 없다”면서 “3D 기술이 중국의 미래 도요 산업을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

글 사진 징더전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2016-12-17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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