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범죄 잦은 멜버른 ‘살기좋은 도시’ 맞나

인종범죄 잦은 멜버른 ‘살기좋은 도시’ 맞나

입력 2012-12-18 00:00
수정 2012-12-18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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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과정서 ‘인종차별주의자 그룹’ 실체 드러나

영국의 경제분석기관이 2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선정한 호주 멜버른이 인종차별 범죄가 잇따르면서 아시아인에겐 ‘공포의 도시’로 변하고 있다.

18일 호주 언론과 현지 아시아계 이민자 커뮤니티 등에 따르면 영미권 여행객과 이민자들에겐 살기좋은 도시로 이름난 멜버른에서 최근 아시아인을 위시한 외국인을 겨냥한 인종차별적 범죄가 잇따라 발생, 파장이 일고 있다.

멜버른에서는 이미 2009년 인도 유학생을 겨냥한 연쇄폭행사건이 발생, 인도-호주 간 외교갈등으로까지 비화한 적이 있었지만 3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지난 6월 멜버른에서는 길가던 베트남 유학생이 스스로를 ‘크레이지 화이트 보이스(Crazy White Boys)’라 칭하는 무리에 속한 백인 청년 3명에게 아무런 이유도 없이 무차별 폭행을 당해 거의 목숨을 잃을 뻔했다.

이들은 흉기와 둔기 등을 사용해 베트남 유학생의 얼굴과 머리를 집중적으로 폭행했고 이 사건으로 피해자의 얼굴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짓이겨져 이후 대대적인 성형수술을 받아야 했다.

특히 이들은 폭행 과정에서 “망할 놈의 국(Gook·동남아인을 비하하는 속어)” “노란 개(Yellow Dog)” 등의 인종차별적 욕설을 퍼부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더욱이 이들은 최근 진행된 재판 과정에서 “우리(크레이지 화이트 보이스)는 아시아인, 흑인, 유대인들을 싫어한다”고 공공연히 밝히기도 했다.

이어 지난 9월 말에는 멜버른 박스힐 공원에서 한국인 유학생 장모(33) 씨가 백인 10대 10여명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해 이들이 휘두른 흉기에 새끼손가락이 잘리고 왼쪽 팔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가해자들은 장 씨를 폭행하면서 “망할 놈의 중국인(Fucking Chinese)” 등의 인종차별적 욕설을 퍼부었지만 현지 경찰은 “가해자들이 과거 백인도 폭행한 적이 있다”며 인종차별 혐의를 적용하지 않아 논란을 빚었다.

또 지난 11월에는 멜버른의 한 시내버스 안에서 백인 남녀 3~4명이 프랑스어로 노래를 부른다는 이유로 프랑스인 여성 관광객에게 인종차별적 욕설과 함께 신체적 위협을 가한 사건이 발생, 파문이 일었다.

특히 버스 안에 있던 일부 승객은 가해자들을 말리기는커녕 낚시용 칼을 건네며 인종차별적 폭력을 부추겼던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줬다.

12월 초에는 멜버른 남부 세인트 킬다 지역에서 택시기사가 애보리진(호주 원주민) 가수의 승차를 거부한 인종차별 사건이 발생해 멜버른의 이미지를 또 한 번 추락시켰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영국의 경제분석기관인 EIU(Economist Intelligence Unit)는 지난 8월 멜버른을 전세계 140개 도시 중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2년 연속 선정해 많은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EIU의 살기 좋은 도시 평가는 안정성, 보건, 문화·환경, 교육, 인프라 등의 부문에 대한 종합 평가를 통해 이뤄진다.

호주에 4년째 근무 중인 한 한국 대기업 주재원은 “미국에도 5년 넘게 살아봤지만 호주처럼 인종차별이 심한 나라는 찾기 어려울 것”이라며 “EIU의 평가는 다분히 ‘영어를 쓰는 백인’의 시각에서 이뤄진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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