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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서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 유해 발굴 시도

日서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 유해 발굴 시도

입력 2012-05-29 00:00
업데이트 2012-05-29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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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광복 직후 일제 징용자를 태우고 귀국길에 올랐다가 의문의 침몰 사고를 당한 ‘우키시마(浮島)호’ 희생자 유족들이 사고 현장에서 유해 발굴을 시도했다.

29일 우키시마호 희생자 유족회(회장 한영용)에 따르면 한 회장 등 희생자 유족들은 이날 오전부터 일본 교토 마이즈루(舞鶴)항 부근의 우키시마호 폭침 현장에서 잠수부를 동원해 바닷속 바위틈에 끼어 있을지도 모를 유해와 선체 잔해 발굴 작업을 벌였다.

유족회는 미리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당시 건져내지 못한 유해가 아직도 바다 진흙 속이나 바위틈에 끼어 있을지 모른다는 의견이 구구하다”며 “구천을 헤매는 영혼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뜻있는 사람들이 호주머니 돈을 털어 유해 발굴을 시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유족들은 30일까지 이틀간 작업할 예정이다.

우키시마호(4천730t)는 1945년 광복 직후 귀국길에 오른 재일 한국인들을 태우고 부산으로 향한 일본의 해군 수송선이다.

1945년 8월22일 아오모리현 오미나토(大湊)항을 출발해 이틀 뒤인 24일 마이즈루항에 기항하려다 선체 밑부분에서 폭발이 일어나 침몰했다.

일본은 우키시마호가 해저 기뢰를 건드려 폭침했고, 승선자 3천700여명 중 524명이 숨졌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유족들은 일본이 고의로 배를 폭파했고, 승선자 7천500∼8천명 중 3천명 이상이 숨졌다고 주장했다. 일본은 사고 후 수년간 선체를 인양하거나 유해를 회수하지 않아 의혹을 키웠다.

생존자와 유족들은 1992년 일본 정부의 안전관리 의무 위반을 문제 삼아 일본 법원에 소송을 냈지만, 2004년 패소가 확정됐다.

유족들은 한국 정부의 2005∼2010년 조사에서도 의혹이 풀리지 않자 여전히 바닷속에 남아있는 배 밑창을 확인하고, 유해를 발굴하겠다고 나섰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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