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지방자치단체에서 지방정부로/김순은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열린세상] 지방자치단체에서 지방정부로/김순은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입력 2015-04-10 00:10
업데이트 2015-04-10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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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 정치 주체는 지방자치단체 또는 지방정부라는 용어로 지칭하는데 이는 국가마다 다르다. 전자는 지방의 정치 주체를 중앙정부의 통제와 명령하에서 움직이는 피동적인 주체로 볼 때 주로 사용되며 후자는 지역의 의사를 토대로 일정한 범위의 자율과 책임하에서 작동하는 능동적인 주체로서 지방 정치 주체를 인정할 때 사용한다. 전자의 모형하에서 중앙·지방의 관계는 명령과 통제가 정책수단이며 후자의 모형하에서는 대화와 협상이 주요한 정책 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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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은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김순은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우리나라의 실정법과 공식적인 문서는 전자의 모형을 따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앙정부의 지방에 대한 태도와 인식을 보면 지방의 정치 주체를 지방자치단체 이상의 것으로는 인정하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지방3.0’이라는 슬로건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후 공공서비스의 목표를 ‘정부3.0’이라는 용어로 압축해 정보 공개에 기초한 공공서비스의 질을 제고하고자 했는데, 정부3.0의 지방적인 표현으로 ‘지방정부3.0’ 대신에 ‘지방3.0’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중앙정부의 지방에 대한 인식을 분명히 한 셈이다.

1995년 선출직 단체장과 지방의회가 구성된 이후 지방은 단순한 지방자치단체에 머물지 않고 지방정부로 발전하고 있다. 지역의 정치 주체들이 자율적으로 지방의 사정에 적합한 정책을 형성했다. 1992년 청주시의회는 중앙정부가 ‘행정정보공개법’을 제정하지 않은 상태하에서도 ‘청주시 행정 공개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훗날 중앙정부로 하여금 행정정보의 공개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게 했다. 광주광역시 북구의회는 주민참여 예산제도를 도입해 이후 중앙정부로 하여금 지방재정법을 개정하게 했고 현재는 모든 지방에서 주민참여 예산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이 밖에 담배자판기설치 금지조례를 제정해 청소년 흡연을 방지하고자 했던 부천시의 사례 등 지방이 주도적으로 정책을 형성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지방의 정치 주체는 더이상 중앙정부의 부당하고 과도한 요구와 지시에 순응만 하지는 않는다. 중앙정부가 추진하는 사회복지정책의 대부분은 지방의 정치 주체를 통해 집행되고 있다. 지방의 정치 주체가 사회복지정책의 주요한 전달 체계인 것이다. 그런데 중앙정부는 사회복지정책의 집행을 지방에 맡기면서 재정의 일정 부분까지 부담시키고 있다. 고령자를 위한 기초연금, 양육수당, 장애인 연금, 영육아 보육료 확대 등 중앙정부의 다양한 사회복지 사업이 시행됨에 따라 사회복지 전달 체계에서 지방 정치 주체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으며 동시에 지방이 부담하는 재정적 부담이 증가해 지방의 재정을 압박하고 있다.

지방이 받는 재정적 압박은 최근 불거지고 있는 중앙·지방의 커다란 갈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회복지 정책의 과정에서 보이는 중앙·지방의 갈등은 재정적 압박이라는 가시적인 현상이 갈등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중앙이 지방을 단순한 지방자치단체로 보기 때문이다. 중앙정부는 지방자치단체가 중앙의 지시와 통제에 순응하지 않는 것이 불만이며 지방은 지방의 정치 주체를 지방정부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불만이다. 부연하면 중앙정부가 지방과의 대화와 타협을 통한 정치적 과정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년간 계속되는 저성장 기조하에서 중앙정부의 세입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반면 사회복지의 확대 등 정부의 재정적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정책의 효율적인 집행 외에는 대안이 없다. 그런데 사회복지정책의 대부분은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중앙정부가 지방의 정치 주체를 지방정부로 인정하고 적극적인 대화와 타협을 통해 중앙·지방의 관계를 개선해야 효율적인 집행을 도모할 수 있다. 현재의 경제를 고려할 때 중앙정부로부터 지방으로의 재정 지원은 증가하기 어렵다. 오히려 감소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은 재정적 지원의 축소와 지방분권이라는 빅딜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중앙정부는 지방에 대한 재정적 축소를 통해 재정난을 해결하고, 지방분권을 통해 지방정부가 확대된 재량과 자율권을 가지고 집행에 나선다면 중앙·지방의 윈윈전략이 될 것이다.
2015-04-1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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