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열린세상] IT 강국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자/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열린세상] IT 강국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자/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입력 2013-01-29 00:00
업데이트 2013-01-29 00:31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비행기 조종사들이 비행을 오래 하다 보면 바다와 하늘의 색상을 구분하기 힘든 경우가 있다. 특히 바다 위를 비행할 때는 위치를 참고할 수 있는 지형지물이 없고 야간에는 밤하늘의 별빛과 해상의 선박 불빛이 동일하게 보여 바다를 하늘로 착각하고 바다를 향해 날아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미지 확대
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이를 버티고(Vertigo), 즉 비행 착각 현상이라고 하는데 국내 전투기 추락사고의 약 20%가 비행 착각으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2011년에 응급환자를 이송하다 제주해상에 추락한 남해지방해양경찰청 제주항공대 소속 헬기의 추락원인도 비행 착각인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나라를 이끌어 가는 정치 지도자들이 갖고 있는 착각 중의 하나가 대한민국이 정보통신(IT) 강국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IT 산업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산업으로서 경제성장과 수출의 견인차이자 경제위기 극복의 주역이라고 할 수 있다. 2012년 한국은행 국민계정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IT 산업의 국내총생산(GDP) 비중은 2007년에 9.5%였으나 계속 증가하여 2011년에는 11.8%를 기록하였다.

우리나라의 주력 IT 제품인 반도체 메모리, 디스플레이, 휴대전화, TV는 세계 시장점유율 1위로 부상하여 다년간 IT 산업의 무역수지가 큰 폭의 흑자를 기록하는 데 기여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IT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고 초고속인터넷이나 스마트폰 보급률에서도 세계 정상을 다투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IT 산업의 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IT 강국 코리아는 허울뿐인 허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 우리나라 IT 산업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불균형이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다. 즉, 강력한 하드웨어 경쟁력이 우리나라 IT 산업 발전의 원동력이 되어 왔지만 소프트웨어 산업의 경쟁력은 매우 취약하다.

국내 기업의 소프트웨어 분야 세계시장 점유율은 2.7%에 불과하며 우리나라 콘텐츠산업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2.4%에 그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사용 중인 패키지 소프트웨어의 대부분이 외국산이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진정한 IT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소프트웨어 부문의 경쟁력 제고가 필요한 형편이다.

둘째, 우리나라 IT 산업은 완제품에서는 강세를 보이고 있으나 메모리나 디스플레이 이외의 부품이나 소재의 자급도가 떨어진다. 특히 부품에 사용되는 소재의 해외 의존도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따라서 완성품 산업과 부품소재 산업 간의 불균형을 해소하지 않는다면 IT 강국은 신기루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셋째, 우리나라 IT 산업은 대기업에 편중된 구조를 갖고 있다. 수요기업인 대기업들은 이익을 향유하고 있지만 하청기업인 중소기업들은 생존의 기로에 서 있다. IT 산업의 성과가 지나치게 삼성전자에 의존하는 기형적인 구조는 결코 IT 강국의 모습일 수가 없다.

우리나라가 IT 강국이 아니기에 정보통신기술(ICT) 전담부처를 신설하는 대신에 미래창조과학부의 제2 차관이 ICT 기능을 담당하도록 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정부조직개편안은 수용하기 어렵다. 우리나라를 대표하지만 아직은 경쟁력이 취약한 IT 산업을 전담하는 최고 관료의 직급을 대통령 경호처장의 직급보다 낮게 책정한 것은 대단한 착각이다.

한편 유튜브에 수백 개의 방송국이 개설되고 스마트 TV가 국경을 넘나드는 글로벌 미디어 환경에서 아직도 지상파 방송 위주 언론의 자유에 집착하여 정부조직개편안의 문제점을 제대로 비판하지 못하는 야당의 구태도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비행 착각의 결과가 추락사고인 것처럼 우리나라 IT에 대한 착각의 결과도 추락사고일 수 있다. 그런데 착각한 정치인이나 정권만 추락한다면 별 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이로 인해 IT 산업이나 대한민국이 추락하게 된다면 국민의 입장에서는 커다란 재난이 될 것이다. 정부조직개편안을 검토할 국회가 비행 착각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2013-01-29 30면

많이 본 뉴스

‘금융투자소득세’ 당신의 생각은?
금융투자소득세는 주식, 채권, 파생상품 등의 투자로 5000만원 이상의 이익을 실현했을 때 초과분에 한해 20%의 금투세와 2%의 지방소득세를, 3억원 이상은 초과분의 25% 금투세와 2.5%의 지방소득세를 내는 것이 골자입니다. 내년 시행을 앞두고 제도 도입과 유예,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맞서고 있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
일정 기간 유예해야 한다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