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손때/황수정 논설위원

[길섶에서] 손때/황수정 논설위원

황수정 기자
황수정 기자
입력 2016-10-27 23:08
수정 2016-10-28 00:04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무슨 마음이 동했을까. 몇 해 전 값나가는 그릇을 상자째 사들였다. 크기대로 차곡차곡 쟁여 찬장 맨 위 칸에서도 맨 뒤쪽에 곱게 모셨다. 그러고는 까맣게 잊었다. 우리 집 제일 오지에 들앉아 세월만 묵힌 그릇들이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그새 유행이 한물가 버린 것들을 끄집어내서는 웃어볼밖에. 대책 없는 건망증, 허랑한 살림솜씨를 타박하면서도 실은 애당초 알고 있었다. 이 반짝이는 것들이 결코 우리 집 밥상을 점령하지 못하리란 사실을.

유행에 둔한 탓도 있지만 쓰던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한다. 오래된 접시가 닳고 더러는 실금이 갔어도 도무지 거슬리지 않는다. 저장강박증 비슷한 것이 내게도 있나 싶다. 그렇거나 말거나. 어지간히 생활의 땟국이 묻은 것들이 나는 그저 좋고 정답고 편하기만 하다.

이태준의 오래된 글이 생각난다. 집에 웃어른이 없어 거만스러워지는데, 옷깃을 여미게 하는 것이 하나. 자신보다 나이 많은 골동품, 아버지의 연적(硯滴)이라고. 풍상을 견딘 손때는 때로 소란한 눈과 마음을 어루만지는 묘약이다. 내게도 있으면 싶다. 두고만 봐도 이심전심 어깨 쓸어 주는, 나보다 더 나이 먹어 손때가 빛나는 선생이.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2016-10-28 31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통해 총 13조원 규모의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지급하기로 하자 이를 둘러싸고 소셜미디어(SNS) 등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경기에 활기가 돌 것을 기대하는 의견이 있는 반면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소비쿠폰 거부운동’을 주장하는 이미지가 확산되기도 했다. ‘민생회복 소비쿠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경기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