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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우의 언파만파] 떡값

[이경우의 언파만파] 떡값

이경우 기자
입력 2021-01-10 19:20
업데이트 2021-01-11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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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우 어문부 전문기자
이경우 어문부 전문기자
‘떡값’에는 말 그대로 ‘떡을 사고파는 가격’의 뜻만 있지 않다. ‘뒷돈’이나 ‘뇌물’ 같은 의미도 있다. 어쩌면 이런 뜻으로 쓰이는 예가 더 많을지 모르겠다. 국어사전만 찾아봐도 이런 뜻의 예문이 더 많이 올라 있다.

설이나 추석 등 명절에는 명절을 쇠는 비용이 들어가게 되는데, 이때 좋은 뜻에서 건네는 돈도 ‘떡값’이라고 했었다. 주는 쪽에서 상대방이 부담 없이 받으라는 의미에서 이렇게 부르기 시작했을 것이다. 받는 쪽에서도 이런 이름으로 받으면 부담이 덜어진다. 정성을 담은 마음과 마음이 오간다는 차원에서 서로의 이해가 맞아 ‘떡값’은 괜찮은 단어였다. 양쪽의 시각이 반영된 말이었다.

같은 말이라도 누가 쓰는지, 어디서 쓰는지에 따라 뜻이 달라진다. ‘떡값’도 사용하는 사람과 장소가 달라지면서 의미에 변화가 왔다. 직장으로 옮겨진 ‘떡값’은 ‘마음과 마음’이란 속뜻이 없어지거나 옅어졌다. 설이나 추석 때 직장에서 보너스 형식으로 주는 돈도 ‘떡값’이었는데, 정상적으로 주는 돈은 아니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렇다 보니 조금은 속된 뜻을 지닌 말로 여겨졌다. ‘떡값’은 그저 인정상 주는 돈쯤으로 보는 시각이 짙었다. 주면 좋지만 안 줘도 되는 돈이었던 것이다.

또 다른 곳으로 옮겨 간 ‘떡값’에는 ‘남을 이해하는 마음’이 담긴 ‘인정’이 아예 사라졌다. 이 ‘떡값’은 거래의 수단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특정한 공사를 따내는 과정에서 다른 업자에게 주는 돈도 ‘떡값’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은밀하게 주고받는 ‘뒷돈’인데, 그들은 ‘떡값’이라고 불렀다. 스스로 ‘뒷돈’이나 ‘뇌물’이라고 하기는 거북하니 나름대로 순화해서 ‘떡값’이라고 한 것이다. 문제가 돼서 경찰에 사실을 밝힐 때도 그들은 ‘떡값’이라고 했다. 그들의 시각이 반영된 말이었지만, 경찰도 언론 매체도 그대로 따랐다.

‘뇌물’은 사사로운 이익을 얻기 위해 건네는 돈이다. ‘떡값’은 이런 의미로도 확연하게 확장돼 쓰였다. 이 ‘떡값’을 받는 대상은 주로 공적이고 힘 있는 자리에 있는 이들이었다. 이들도 ‘떡값’이란 말이 익숙한 데다 괜찮아 보였다. 돈을 건넨 이들이 그들의 입장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말이 공적인 공간으로도 퍼져 나갔다. 뇌물을 받은 이들의 얼굴을 언어로 가려 준 꼴이 됐다. ‘뇌물’을 건넨 쪽이 자신들의 죄를 어느 정도 감해 주는 안전장치로 ‘떡값’이란 말을 마련해 놓은 것 같기도 하다. 이것을 전달하는 언론 매체들은 너무 쉽게 ‘떡값’을 사용했다. 공정한 시각보다 관행을 따르려 했다.

2021-01-11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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