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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시각] 박주영 욕만 하지 말자고?/임병선 체육부장

[데스크 시각] 박주영 욕만 하지 말자고?/임병선 체육부장

입력 2012-03-27 00:00
업데이트 2012-03-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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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선 체육부장
임병선 체육부장
애초에 쉽사리 꺼질 수 없는 불이었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아스널의 공격수 박주영(27)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반드시 35세 이전에 시기가 언제일지 아직 모르겠으나 현역으로 입대할 각오”라고 밝혔다. 그러나 주말 동안 인터넷 댓글을 훑어 보면 비난의 강도는 수그러들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축구를 취재하는 기자들 사이에서 그의 얼굴에 드리운 느긋함이 화제가 된 건 올 초부터였다. 아르센 벵거 감독이 그를 벤치나 덥히는 존재로 취급하는데도 늘 편안해 보였다. 누구는 신앙의 힘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느긋함이 현역 입대를 10년이나 미룬 안도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드러났다. 그를 오랫동안 지켜보아 온 축구 기자들마저 등을 돌리고 있다. 박주영은 현역 입대를 10년 미룸으로써 적지 않은 것을 얻었다. 한국에 6개월 이상 체류하거나 영리 활동을 하지 않는 한, 영장이 나와 군대에 붙들려 가는 상황은 피할 수 있게 됐다. 그 기간 해외 구단을 이리저리 옮겨다닐 수 있게 된 점도 결코 작지 않은 이득이다.

법을 어기지 않고도 이를 이뤄냈다는 점에서 박주영과 그를 도운 법률 대리인이 성과를 올렸다고도 볼 수 있다. 모나코 왕실이 구단주인 AS 모나코는 병역 문제가 해결된 그를 아스널에 넘기면서 이득을 챙겼다. 이적료가 선수 몸값인 점을 감안하면 그로서도 손해 볼 일이 아니었다. 비즈니스 측면만 따지면 박주영이나 두 구단 모두 빼어났다고 얘기할 수 있다.

유럽리그 구단들이 한반도의 특별한 사정과 병역 문제에 민감한 팬들의 심사까지 돌아봤을 리 만무하다. 때문에 이를 잘 아는 박주영과 대리인이 적절한 시점에 공개, 팬들의 납득을 구했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래서 박주영 스스로도 “비판받아야 하는 부분은 감수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법률 대리인은 모나코처럼 영주권 제도가 없는 나라에서 장기 체류자격을 얻으면 현역 입대를 10년간 미룰 수 있음을 파악한 것이 지난해 7월 무렵이었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리고 한달 뒤 병무청의 허가를 얻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때 왜 공표하지 않았느냐고 기자들이 따지자 이적 협상 중이던 두 구단이 이 문제의 공표를 원치 않았다고, 앞뒤가 다른 해명을 했다.

박주영이 얻은 것은 시간이요, 잃은 것은 팬들의 신뢰와 사랑이다. 더욱 큰 문제는 박주영 개인의 신뢰 상실뿐만 아니라 그를 정말로 필요로 한 이들의 발까지 묶어 버린 점이다. 당장 런던올림픽 본선에서 와일드카드로 그를 기용해야 하는 홍명보 올림픽대표팀 감독,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에서 그를 필요로 하는 최강희 대표팀 감독이 난감해졌다. 홍 감독은 다음 달 영국에서 그를 만날 요량이었는데 어찌됐건 ‘미운 X 떡 하나 더 주려는 거냐’는 팬들의 분노에 직면하게 됐다.

일부에서는 박주영의 입장 표명을 계기로 ‘욕만 하지 말자’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이 땅에 태어난 남자 선수들이 누구나 받게 되는 병역 기피의 유혹을 원천적으로 없애기 위해 국방 의무와 직업선택의 자유, 그리고 일할 권리의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올림픽 동메달 이상,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딴 이들이 4주간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공익근무요원(34개월)으로 편성돼 군 복무를 대체하도록 한 것도 종목 간 형평성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또 지난해 5월 병무청이 국제대회에서 거둔 성적을 점수화해 병역 대신 사회봉사활동으로 대체하는 대체복무제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을 근거로 내세우며 이를 빨리 제도화하라고 촉구한다. 그런데 이런 논리는 선수나 종목 간 형평성만 문제 삼지, 일반인과 선수 사이의 형평성에는 눈을 감는 치명적 약점을 안고 있다.

박주영이 기여한 점이 있다면 이런 논의에 불을 댕겼다는 점일 텐데, 그렇다면 팬으로서 너무 씁쓸한 대차대조표다.

bsnim@seoul.co.kr

2012-03-2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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