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화성돈 공사관/노주석 논설위원

[씨줄날줄] 화성돈 공사관/노주석 논설위원

입력 2012-08-23 00:00
수정 2012-08-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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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돈(華盛頓)은 워싱턴(Washington)의 음역어이다. 음역어란 한자를 이용해 외국어의 음을 나타낸 말이다. 주로 중국이나 일본에서 음역한 말을 한국식 한자음으로 읽기 때문에 원래의 소리와 차이가 나는 게 보통이다. 국명이나 지명, 인명에 음역어가 많다. 구라파(歐羅巴·유럽), 아세아(亞細亞·아시아), 불란서(佛蘭西·프랑스), 독일(獨逸·도이칠란트), 이태리(伊太利·이탈리아), 서반아(西班牙·스페인), 월남(越南·베트남), 인니(印尼·인도네시아), 몽고(蒙古·몽골), 소련(蘇聯·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 희랍(希臘·그리스)은 병행 사용할 정도로 많이 쓰이는 음역어이다.

이 밖에 나성(羅城·로스앤젤레스), 성항(星港·싱가포르), 백림(伯林·베를린), 애급(埃及·이집트), 서전(瑞典·스웨덴)도 빈도수가 높은 편이다. 러시아를 한때 아라사(俄羅斯)라고 불렀는데 아라사국 공관으로 고종이 옮겨갔다는 아관파천(俄館播遷)은 거기서 연유됐다. 기독(基督·그리스도), 야소(耶蘇·예수), 유태(猶太·유대), 구락부(俱部·클럽), 호열자(虎列刺·콜레라) 등도 대표적인 음역어의 범주에 든다.

음역어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개화기의 역사적 산물이다. 맞춤법조차 없던 시절이라 한자음을 이용한 외래어 표기가 불가피했다. 지금도 신문기사나 책에 자주 쓰이다 보니 젊은 사람들이 “알아먹을 수가 없다.”라고 불평하는 것을 자주 듣게 된다. 신세대 활용사례도 있다. ‘석호필’이 그것이다. 미드(미국 드라마) 선풍을 가져온 ‘프리즌 브레이크’의 주인공 스코필드에게 음절 구조와 발음을 고려해 재치 있는 한국식 이름을 붙여준 것이다.

미국 워싱턴 DC에 있던 ‘대조선주차(大朝鮮駐箚) 미국 화성돈 공사관’을 102년 만에 되찾았다고 한다. 대한제국 때 고종이 내탕금 2만 5000달러를 주고 사들여 1891년부터 외교권을 빼앗긴 1905년까지 공사관으로 쓰던 유서 깊은 건물이다. 일제가 1910년 단돈 5달러에 매입해 10달러에 미국인에게 팔아치운 것을 정부가 이번에 350만 달러를 주고 되사들였다. 한국전통문화 전시공간으로 사용할 예정이라고 하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헐값에 팔고 비싸게 사 준 서울 정동의 러시아 공사관이 생각난다. 1890년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 부지를 2200멕시칸달러(2000년 기준 2억여 원)를 받고 팔았다. 이후 우리 정부는 옛 배재학당 터에 러시아 대사관 건립 부지를 제공하는 등 3000억원 이상의 대가를 치렀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2012-08-2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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