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B vs 모피아…정권 바뀔 때마다 경제 권력 ‘핑퐁게임’

EPB vs 모피아…정권 바뀔 때마다 경제 권력 ‘핑퐁게임’

입력 2013-02-23 00:00
업데이트 2013-02-23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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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기관 출신 ‘영원한 맞수’… 영욕의 주도권 쟁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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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공화국 시절인 1982년 1월 강경식 당시 경제기획원(EPB) 차관보가 재무부 차관으로 승진했다. 이진설 공정거래실장은 재무부 2차관으로 승진했고, 이형구 경제기획국장은 ‘재무부의 꽃’으로 불리던 이재국장으로 옮겼다. 그와 동시에 정영의 재무부 기획관리실장은 ‘한직’인 공정거래실 상임위원으로 밀려났다. 이수휴 이재국장은 부국장(심의관)급인 재무협력관으로 강등됐다.

모피아(옛 재무부 출신을 일컫는 말)들이 지금도 ‘치욕의 날’로 기억하는 날이다. 이때부터 “EPB의 재무부 점령작전이 시작됐다”는 게 경제관료들의 얘기다. 점령작전의 배후에는 김재익(작고) 경제수석이 있었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금융실명제 도입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현실론을 내세운 재무부 관료들의 반대에 부딪혀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정권 입장에서는 재무부 관료들이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EPB와 모피아. 우리나라 경제관료 사회를 양분하고 있는 ‘영원한 맞수’다. 두 진영은 부침을 거듭하며 우리 경제를 이끌어왔다. 정권에 따라 겉으로는 쪼개지고 합쳐지고를 반복해 왔지만 ‘뿌리’에 대한 집착은 매우 강하다.

박근혜 정부의 초대 경제부총리와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EPB 출신인 현오석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과 조원동 조세연구원장이 나란히 내정되면서 라이벌사(史)는 또 한번의 국면 전환을 맞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모피아 시대가 저물고 박정희 정권, 노무현 정권에 이어 제3의 EPB 전성기가 열리고 있는 셈이다.

워낙 두 진영의 라이벌 의식이 치열하다 보니 재미있는 얘기도 많다. 1994년 EPB와 재무부가 합쳐진 재정경제원이 출범했을 때 예산실에서 근무했던 한 공무원은 “재무부 예산을 들여다보고 특근매식비가 거의 없어 깜짝 놀랐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재무부 공무원들이 매일 야근을 하면서도 예산실에 굽신거리는 게 싫어서 특근매식비 요청을 안 했던 것”이라는 설명이다.

거시경제에 강한 EPB 출신들은 개혁적이고 상하관계도 유연하다. 정재석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1993~1994년)이 직원들에게 “생각을 자유롭게 하라”며 핑크색 와이셔츠를 입고 출근했던 일화는 EPB의 조직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현오석 후보자는 1984년 국비로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해 한국형 경제모델 개발을 위한 태스크포스(TF) 팀장도 맡는 등 EPB 전성시대의 최대 수혜자로 꼽힌다.

영원할 것 같았던 ‘EPB 천하’는 김영삼 정부 때 재경원이 들어서면서 막을 내린다. 5명의 재경원 부총리 가운데 EPB 출신은 강경식 부총리가 유일하다. 강 부총리도 원래 출발은 재무부 국고국에서 해 ‘EPB 성골’은 아니다.

모피아들은 끈끈한 인맥으로 유명하다. 후배관료들은 퇴임 선배의 ‘자리’를 살뜰히 챙겨준다. 강만수 산은금융그룹 회장, 신동규 농협금융그룹 회장, 김용환 수출입은행장등 현재 금융계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인사들도 모두 재무부 출신이다. 위계질서가 확실한 탓에 후배가 선배 위에 앉는 ‘발탁인사’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EPB가 경제의 큰 그림을 그린다면, 모피아는 단기 위기 대응에 강하다. ‘EPB는 하늘을 보고 모피아는 땅을 본다’는 말이 나오는 까닭이다. 하지만 모피아에는 환란을 야기했다는 비판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관치금융’이 경제 체질을 허약하게 만들었다는 비판이다. 한 현직 경제관료는 “1994년 재무부와 경제기획원 구분이 없을 때 관료가 된 행정고시 37회가 장·차관이 돼야 경계가 허물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러야 10년 후의 얘기다.

세종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2013-02-23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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