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 가장해 세금 빼돌리는 부유층에 경종”
‘선박왕’ 권혁(63) 시도상선 회장과 2년을 끌어온 소송전에서 국세청이 승리함으로써 ‘역외 탈세와의 전쟁’이 탄력을 받게 됐다.국세청은 카자흐스탄에서 구리 채광·제력 사업으로 1조원대의 수익을 올린 ‘구리왕’ 차용규(57)씨에 게 1천600억원의 과세를 통보했다가 작년 1월 과세전적부심에서 졌다.
다른 악재도 뒤따랐다.
’완구왕’ 박종완(64) ㈜에드벤트엔터프라이즈 대표가 같은해 2월 법원에서 무죄선고를 받은 것이다. 박 대표는 봉제인형 수출로 큰돈을 벌고도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해 세금 437억원을 포탈하고 947억원 상당의 재산을 외국에 숨긴 혐의로 기소됐다.
두 사건은 모두 이현동 국세청장이 취임 직후 역점을 두고 추진해온 ‘역외 탈세의 대표 사례였다.
이후 국세청은 ‘성과주의에 쫓겨 무리한 조사를 했다가 큰 코를 다쳤다’는 비아냥거림을 들어야 했다. 국정감사에서는 역외탈세 성과를 의심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 때문에 역외탈세와의 전쟁이 좌초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권 회장과의 소송에서 이겨 역외탈세와의 전쟁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정선재 부장판사)는 12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권 회장에게 징역 4년과 벌금 2천340억원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법인세 포탈로 함께 기소된 시도상선의 홍콩 자회사 CCCS(CIDO Car Carrier Service)에는 벌금 265억원을 선고했다.
이번 소송에서는 ‘역외탈세 혐의자를 어디까지 국내 거주자로 볼 것인가’라는 판단에도 관심을 끌었다.
이 문제를 놓고 법정에서는 치열한 공방이 있었으나 재판부는 국세청의 손을 들어줬다.
소득세법에 규정된 국내 거주자는 ‘국내에 주소를 두거나 1년 이상 거소를 둔 개인’이다. 국외에서 직업을 갖고 1년 이상 계속 거주해도 국내에 가족 및 자산이 있는 등 생활 근거가 국내에 있으면 역시 거주자에 해당한다. 계속 외국에서 거주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비거주자로 본다.
권 회장은 거주지가 국내가 아닌 홍콩이며 시도상선 본사도 홍콩에 있어 한국 국세청에 납세의무가 없다는 주장을 폈다. 권 회장의 국내 체류일수는 연간 104~194일이었다. 국세청의 손을 빠져나간 차 씨의 주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자산 보유현황, 직업활동, 복지혜택 영위 내역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은 국내에 거주했다고 볼 수 있다. CCCS도 핵심적인 의사 결정이 국내에서 이뤄져 법인세법상 국내 법인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 판단은 권 회장과의 4천억원대 행정소송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국세청 관계자는 “이번 소송 결과는 합법을 가장해 세금을 빼돌리는 부유층에 경종을 울릴 것이다”고 평가했다.
세수 확보에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역외탈세 조사에 힘을 쏟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했다.
연합뉴스